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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머니를 죽이고 피칠갑을 한 채 깨어난 스물여섯 청년 유진. 정유정 작가의 소설 <종의 기원>은 유진이 사이코패스로서 자신을 발견하고 악의 길로 폭주하는 과정을 세밀화로 그려낸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도망칠 구석이 없다. 정유정은 조금도 한눈팔지 않고 유진의 내면과 살인에 집중해 파고든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성향의 ‘포식자’인 유진이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은 단 하나, “나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이다. “남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짓이든 거침없이 하는 순수 악인이다. 유진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겁먹은 것의 축축하고 거친 숨소리” 즉 약자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한국 문화는 지금 악을 탐구 중이다. 한국 영화와 소설에선 사랑이 실종되고 있다.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가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는 사이, 관객들은 <내부자들> <베테랑> 같은 권력형 비리 고발 영화에 환호했고, 산골 마을에서 잇따라 벌어지는 살인과 초현실적 악의 존재를 보여주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질주 중이다.

<곡성>은 156분 상영시간 내내 힘겨운 영화다. 귀신에게 홀려 광기에 휩싸인 이들이 가족을 몰살시키고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사건이 계속되지만, 국가도, 부모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신의 딸까지 귀신들려 끔찍한 모습을 보이자, 경찰인 주인공은 굿을 하고 사람까지 죽이며 악을 막으려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왜 내 딸에게 이런 일이”라고 수없이 묻지만 답은 얻을 수 없다. “아빠가 경찰이잖아, 다 해결해줄게”라고 무기력하게 중얼거리며 죽어갈 뿐이다.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진저리치게 끔찍한 이 지옥도를 보고 있을까, 영화관에 앉아 있는 내내 궁금했다. 오컬트+고어+좀비+스릴러까지 온갖 공포물에 코미디까지 가미한 장르적 재미? 감독의 명성에 걸맞은 만듦새에서 오는 팽팽한 긴장감? 계속되는 죽음과 비극 앞에서 너무나 무력한 국가·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그런 요소들을 두루 갖춘 작품이지만, 우리가 겪는 고통과 폭력, 얽히고설킨 문제들은 이제 인간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왔다고 선언하는 건 아닌지 씁쓸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가장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고통에 빠진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조롱하고 괴물의 낙인을 찍으려는 이들의 뻔뻔함이다.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던 유가족들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으며 ‘폭식투쟁’을 하고, ‘세월호 피해자가 국가유공자냐’며 여론몰이하던 보수단체의 배후에는 청와대 행정관과 전경련의 돈이 있었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제대로 조사하고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참담함이다.

똑같은 구조로, 1980년 5월 국가가 계엄군을 동원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살육한 비극을 부정하고 학살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종북’ 낙인을 찍고 ‘광수’ ‘홍어’ 등으로 조롱하는 극우세력의 행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온한 곡으로 만들어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정치인들, “나는 책임 없다”며 당당한 학살 책임자의 행태가 3박자를 이루며 반복되고 있다.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권력에 위협이 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빨갱이로 낙인찍고 맘대로 짓밟는 데 숙련되어온 권력, 내가 당하지만 않으면 침묵하거나 동조하도록 훈련되어온 우리들의 뒤에서, ‘나에게 이로운가’만이 판단의 기준이 되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며, 약자를 괴롭히는 사이코패스 사회가 거대한 얼굴을 드러낸다. 악의 속성을 직시하려는 문화 현상이 절박한 경고처럼 느껴지는 봄이다.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minggu@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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