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배신. 과연 옳은 말이다. 김대중, 노무현, 다 거기서 거기였다. 샌더스도 마찬가지. 그래도 그를 찍었지만.

by 김원일 posted Jun 09, 2016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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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배신
송제숙 지음, 추선영 옮김/이후·1만8000원

<복지의 배신>이라는 책이 나왔다. 제목부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인데다,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복지를 복음처럼 합창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복지의 배신이라니.

마침 책을 쓴 송제숙 교수(캐나다 토론토대·인류학)가 3년 만에 귀국했다.

- 책 제목이 도발적이다.

“제목에는 두 개 버전이 포괄돼 있다. 우선 1987년 민주화 이후 기대를 모았던 복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건 박근혜 정부 들어 모든 것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뒷걸음질치는 상황에서 더 의미가 있어졌고. 두번째는 복지가 있으면 민주주의라는 생각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복지는 항상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 복지는 복병이다. 그걸 믿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그냥 넘겨서는 곤란하다.”

97년 ‘환란’ 극복과정 분석 통해
신자유주의 복지국가 이행분석

복지 본질은 자본주의 연명 수단
부 위해 존재하는 방편에 불과해

“북유럽 복지·‘기본소득’도 한계
자본주의 전복 꿈꿀 상상력 필요”

송 교수의 방점은 두 번째에 찍혀 있다. 그가 보기에 복지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건,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로서 기능하고 살아남기 위한 기제이며 방책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컨대 복지는 자본주의의 연명수단일 뿐이다. 책에선 그런 입장을 더 강경하고 분명하게 적고 있다. “복지는 부를 위해 존재하고, 부는 복지의 전제조건이다.” 또한 복지는 “자본주의적 국부 축적 과정에 노동을 관장하고, 계급갈등의 적대 세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필연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이 된 것이다.”

책에서 송 교수는 19년 전 졸지에 한국을 덮친 외환위기, 그 와중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와 사상 초유의 평화적 정권 교체, 그 결과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이른바 ‘생산적 복지’가 어떻게 “민주화 이후 복지에 걸었던 (한국민들의) 기대와 염원을 저버렸는지”를 정밀하게 들여다본다. 원래 책 제목이 <외환위기 속 한국 사람들>(South Koreans in The Debt Crisis)이라고 달려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송 교수의 2003년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어 미국 듀크대 출판부가 2009년에 냈다.

1992년 대선 패배 이후 영국에 체류하는 동안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이론에 영향을 받은 김대중은 집권과 동시에 환란 극복이라는 미증유의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때 채택한 것이 ‘생산적 복지’ 노선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제3의 길’로 가고 있다고 믿었는지 모르지만, 나타난 결과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가 그랬듯 “신자유주의 복지국가의 성립”이었다.

당시 복지정책의 초점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재편될 새로운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와 재생산에 맞춰졌다. 취업 가능성이 있고, 가정으로 복귀해 ‘재활’할 여지가 있는 남성 노숙인에겐 복지 혜택이 돌아갔지만, 여성 노숙인과 장기 남성 노숙인은 ‘유령’처럼 취급됐다. 청년실업 대책도 정보통신기술, 이른바 아이티(IT) 적응 능력이 있는 젊은이들에겐 ‘신지식인’이란 호칭과 함께 기회를 부여했지만, ‘백수’에 대한 대접은 달랐다.

이 과정을 송 교수는 ‘현장’에서 경험하고 지켜봤다. 1998년 5월 다른 주제를 연구하러 한국을 찾았다 외환위기의 현실을 접하고는 아예 방향을 바꿨다. 서울시 실업대책위원회 모니터링팀에서 팀원으로 근무한 1년을 포함해 29개월 동안 단속적으로 이뤄진 체험과 조사, 연구는 박사논문에 담겼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는 노동력을 증진하고 착취함으로써 번영을 추구하는 것을 통치전략으로 삼았던 개발 국가의 연장선에 서 있었다”.

그 국면에서 그래도 노사정위원회 구성과 같은, 예전 같으면 기대난망했을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시민운동 지도자, 유력 시민단체가 의외로 ‘수용’과 ‘협조’를 했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김대중이 반독재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구축한 위상과 신뢰 말고 다른 요인도 작용했다.

왜 진보 진영 인사들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협조했을까?

“1987년 민주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 계기였지만 그러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고나 할까.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협조하는 것 이외에 다른 그림을 그릴 에너지가 없었다. 그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거리를 두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딜레마를 경험한 진보 진영은 20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보수와 다른 차원의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고, 자본주의를 돕는 일이라며 발을 빼기는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간 한국 진보 진영에선 스웨덴, 핀란드 등을 이상적 복지국가로 간주하고 답사를 다녀와 책 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관심은 외국 학계에서도 높다. 특히 미국을 공격하면서 다른 선택지로 많이들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부의 축적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려는 선택지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최근엔 ‘기본소득’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스위스의 기본소득보다 남아공 사례를 더 많이 얘기한다. 그 자체로 의미는 있지만, 이 또한 가장 자본주의적인 해결 방식이고 미봉책일 뿐이다.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 축적 과정을 문제삼지 않고 분배에서의 정의만을 따로 떼어놓고 말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송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이뤄지는 복지에 대한 부정과 회의를 반복적으로 표현했다.

- 복지가 고작해야 자본주의의 기만책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나?

“복지의 근원적 한계를 지적한다고 해서 좀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복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복지에 대한 상상이 달라져야 한다. (서구사회에서) 복지가 생성, 변형된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상상을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자크 동즐로의 <사회보장의 발명> 같은 책을 통해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혁명 이후 1세기에 걸쳐 천천히 사회보장이 진전됐다. 혁명 이후 큰 성취였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전복적 성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로따로 출발했던 사회보장과 복지가 나중에 어떻게 합쳐졌는지도 중요하다.”

- 그래도 뜬구름 잡는 얘기라는 느낌이 있다.

“이럴 때 모범적인 답변은, 프레임을 제기하는 것이 (학자로서) 내 몫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 (자본주의) 전복의 가능성은 기존 서구가 아닌 데서, 한국 같은 신흥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상상하고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구에서는 사회주의자들조차 자본주의 전복을 공상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우리는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이뤄낸 경험이 있지 않나.”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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