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軍人’ 육군헌병 황◦◦
“소수의 악행보다 다수의 침묵이 아팠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 황○○ 중령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나는 부조리의 전형이다. 의인(義人)은 보복당하거나 불이익을 겪는다.
- ●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 택했다”
- ● “밥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행복한 삶”
맹자(孟子)는 사람이 타고난 마음은 선하다고 말한다. 측은지심(惻隱之心, 다른 사람의 어려운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미워하고 부끄러워함), 사양지심(辭讓之心,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해냄). 유가(儒家)는, 사람은 이 네 가지 착한 마음을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는 도덕으로 구현한다고 가르친다.
사내는 상관의 명령으로 비위를 저지른 부하(박모 소령)의 어려운 처지를 불쌍히 여겼다. 정의로워야 할 군(軍) 조직에서 벌어진 정의롭지 못한 행위가 부끄러웠다. 옳고 그름을 따졌다. 겸손하고 의연했다. 인·의·예·지를 몸으로 실천한 이 사내의 미담(美談)은 다음과 같다.
첫눈에 이 사내가 ‘그’라는 것을 알았다. 사복 차림인데도 매무새가 딱 군인이다. 골격이 큰 데다 몸도 다부지다. 육군사관학교 45기. 육군 헌병 병과의 선두주자였다. 1989년 소위로 임관한 후 초등군사반·고등군사반을 전(全) 병과 통틀어 수석으로 마쳤다. 장교들이 소령 때 등록하는 육군대학을 전체 차석으로 졸업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그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
이모 전 준장이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 재직 때 저지른 일은 ‘비리 백화점’ 격이다. 병사들이 먹을 빵 구입비마저 횡령했다. 뒤탈을 걱정했는지 부하들에게는 “무조건 현금으로 확보하라”는 지시까지 했다. 이 전 준장이 나랏돈을 횡령할 때 사용한 수법은 비용 부풀려 지급한 후 되돌려받기, 리베이트 받기, 장병 격려금 가로채기, 헌병 수사관 활동비 빼돌리기 등이다.
황 중령은 이모 전 준장의 비리를 문제 삼은 내부고발자(whistle-blower)다. △△부대 헌병대장은 진급이 누락된 헌병 장교가 맡는 한직(閒職)이다. 청와대를 경호하는 33헌병대 제대장, 육군참모총장 경호대장, 국방부 조사본부 범죄정보1과장, 3군사령부 헌병대 수사과장, 51사단 헌병대장을 지낸 촉망받던 헌병장교가 불이익을 겪은 이유는 단 하나다. 정의롭지 못한 일에 눈감지 못하고 정의로운 길을 택해서다.
‘신동아’ 2013년 8월호는 ‘정의는 처벌, 부도덕은 면죄부’라는 제목으로 ‘황 중령 사건’을 보도했다. 신동아 보도 이후 “의인을 보호해야 군이 산다”는 제목의 칼럼(‘경향신문’ 2014년 10월 28일자) 등 다수의 기사가 황 중령 사건을 보도했으나 정의는 아직도 부정의에 밀려나 있다.
대학교수 지인에게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그의 목소리’로 정의가 핍박받고 부정의가 득세한 목불인견의 사건을 ‘날것 그대로’ 알리고 싶어서다. 그는 ‘그 사건’으로 언론인을 만난 적이 없다. 그간 나온 기사들은 재판에 제출된 기록과 변호사의 증언을 토대로 삼았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면서 “한풀이할 생각 없다” “명예롭게 전역하겠다”고 했다. 밤늦도록 그와 정의와 부정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와 헤어진 뒤 그의 많은 얘기 중 딱 세 문장만 취재수첩에 적었다. 그중 하나가 “소수 악인(惡人)의 악행보다 다수 선인(善人)의 침묵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는 문장이다. 다수의 선인이 침묵하지 않고 행동할 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고발을 음해로 몰아붙이던 헌병 수사와 다르게 군 검찰은 “의혹이 제기된 횡령 부분에 대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으나 대부분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면서 “범죄 혐의가 드러난 이 전 준장은 민간 검찰에 이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 검찰이 확인한 횡령액만 4700만 원이었다.
이 전 준장이 군복을 벗으면서 사건은 검찰로 이첩됐으나 증거 불충분 등으로 내사 종결됐다. 비리 행위 관련자 대부분이 군에 있는 데다 자료가 불충분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 군 검찰이 이원화한 탓에 벌어진 일이다.
사내는 상관의 명령으로 비위를 저지른 부하(박모 소령)의 어려운 처지를 불쌍히 여겼다. 정의로워야 할 군(軍) 조직에서 벌어진 정의롭지 못한 행위가 부끄러웠다. 옳고 그름을 따졌다. 겸손하고 의연했다. 인·의·예·지를 몸으로 실천한 이 사내의 미담(美談)은 다음과 같다.
첫눈에 이 사내가 ‘그’라는 것을 알았다. 사복 차림인데도 매무새가 딱 군인이다. 골격이 큰 데다 몸도 다부지다. 육군사관학교 45기. 육군 헌병 병과의 선두주자였다. 1989년 소위로 임관한 후 초등군사반·고등군사반을 전(全) 병과 통틀어 수석으로 마쳤다. 장교들이 소령 때 등록하는 육군대학을 전체 차석으로 졸업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그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
부정의에 밀려난 정의
수은주가 영하 14℃로 급강하한 지난 1월 19일 서울의 한 골목길에서 ‘그’와 마주쳤다. 그와 나는 저녁식사 장소로 가던 길이었다. 대학교수로 일하는, 기자와 그의 겹치는 지인이 밥자리를 주선했다. 그는 내가 나오는 걸 몰랐다. 명함을 받았다. ‘육군헌병 황◦◦.’ 부대 이름도 계급도 적혀 있지 않았다. △△부대 헌병대장. 계급은 중령이다. 올해 50세. 동기들이 ‘별’을 달기 시작했다.이모 전 준장이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 재직 때 저지른 일은 ‘비리 백화점’ 격이다. 병사들이 먹을 빵 구입비마저 횡령했다. 뒤탈을 걱정했는지 부하들에게는 “무조건 현금으로 확보하라”는 지시까지 했다. 이 전 준장이 나랏돈을 횡령할 때 사용한 수법은 비용 부풀려 지급한 후 되돌려받기, 리베이트 받기, 장병 격려금 가로채기, 헌병 수사관 활동비 빼돌리기 등이다.
황 중령은 이모 전 준장의 비리를 문제 삼은 내부고발자(whistle-blower)다. △△부대 헌병대장은 진급이 누락된 헌병 장교가 맡는 한직(閒職)이다. 청와대를 경호하는 33헌병대 제대장, 육군참모총장 경호대장, 국방부 조사본부 범죄정보1과장, 3군사령부 헌병대 수사과장, 51사단 헌병대장을 지낸 촉망받던 헌병장교가 불이익을 겪은 이유는 단 하나다. 정의롭지 못한 일에 눈감지 못하고 정의로운 길을 택해서다.
‘신동아’ 2013년 8월호는 ‘정의는 처벌, 부도덕은 면죄부’라는 제목으로 ‘황 중령 사건’을 보도했다. 신동아 보도 이후 “의인을 보호해야 군이 산다”는 제목의 칼럼(‘경향신문’ 2014년 10월 28일자) 등 다수의 기사가 황 중령 사건을 보도했으나 정의는 아직도 부정의에 밀려나 있다.
대학교수 지인에게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그의 목소리’로 정의가 핍박받고 부정의가 득세한 목불인견의 사건을 ‘날것 그대로’ 알리고 싶어서다. 그는 ‘그 사건’으로 언론인을 만난 적이 없다. 그간 나온 기사들은 재판에 제출된 기록과 변호사의 증언을 토대로 삼았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면서 “한풀이할 생각 없다” “명예롭게 전역하겠다”고 했다. 밤늦도록 그와 정의와 부정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와 헤어진 뒤 그의 많은 얘기 중 딱 세 문장만 취재수첩에 적었다. 그중 하나가 “소수 악인(惡人)의 악행보다 다수 선인(善人)의 침묵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는 문장이다. 다수의 선인이 침묵하지 않고 행동할 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범의 눈빛으로 소처럼 걷다
이◦◦ 전 준장 :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대령)으로 복무할 때 비리를 저지른 황 중령 사건 장본인. 비리가 고발됐는데도 육군 중앙수사단장으로 진급했다. 축소 수사 의혹이 불거진 후 육군 지휘부는 이 전 준장의 옷을 벗기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고발을 음해로 몰아붙이던 헌병 수사와 다르게 군 검찰은 “의혹이 제기된 횡령 부분에 대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으나 대부분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면서 “범죄 혐의가 드러난 이 전 준장은 민간 검찰에 이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 검찰이 확인한 횡령액만 4700만 원이었다.
이 전 준장이 군복을 벗으면서 사건은 검찰로 이첩됐으나 증거 불충분 등으로 내사 종결됐다. 비리 행위 관련자 대부분이 군에 있는 데다 자료가 불충분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 군 검찰이 이원화한 탓에 벌어진 일이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