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들의 소수자됨은...

by 집사 posted Jul 04, 2016 Likes 0 Replies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우리 재림교인들은 특히   소수자의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 minority complex ;  평생을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그런 컴플렉스를 느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안에서 그들이 항상 메이져 였으니까...)

재림교인이 세상적으로 소수자에 동지애를 갖는 것은  성서적인 어려운 이웃을 돌보라는 명령과 무관하게 동질성을 느끼기에 그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약자는 약자의 편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항상 소수였고 소수에 속한 것이 우리들에게 불행이었는가? 

대한 민국은 60년대 70년대 세계 무대에서 소수자, 약자 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고.  멸시받고 차별 받았습니다. 지금은 필리핀이나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받듯이 말입니다. 조금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민족은 일본에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세계에서 수모를 당할 수준은 넘어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원1세기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는 비하의 언어였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급격이 늘어나면서 기독교인이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졌다. 소수자에서 주류로 변했습니다. 그리스도인 세력이 커졌다는 것이 항상 축복만은 아니였습니다. 교회의 부정과 부패로 인해 그리스도교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소수가 대수가 된 것의 반대로 LSK 박사님은 재림교회 내에서 주류였다가  소수자로 변화된 케이스가 될 겁니다. 


소수자, 약자가 차별을 받고 멸시를 받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시련이라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이겨낼 힘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수자, 약자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며 '야멸차게' 투쟁하는 것 보다  예수님의 방법,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방법이 더 성서적이고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IS 들이 자신들의 소주자 피해의식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투쟁을 택한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의문이 남습니다.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인식을 개선시키는 방법은 투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포용하고 너그러워 짐에 있습니다. 

우리 재림교회에서 최근 연합회를 중심으로 '이단'을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것을 보고,  참 안타깝다 조금 현명하지 못하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실력 행사하고 외치고 투쟁한다고 바뀔 것이 없습니다.  소수자는 소수자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조용 히 최선을 다하고 그러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큰 변화가 일어나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소수자의 소수자됨은 오히려 행복이며 축복이다. 이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는 길인데, 오히려 이를 극복하려는 인간적인 노력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당신은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 마태복음 7:13,14



Articles

4 5 6 7 8 9 10 11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