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사람들의 슬픔의 낟가리가 물레소리로 울리는 사원

by 박훈 posted May 07, 2011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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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 읽기

브로부도르 사원의 부처님  / 고정희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절간

인도네시아 브로부도르 대사원에는

부처님의 오백다섯 모습이

팔만사천 번뇌를 물레질하고 있는데요,

 

지붕을 가리지 않은 채

수만년 비바람 광야를 펼쳐놓고

억만년 삼라만상 여래와 함께

하늘 난간에서 맨몸으로 고뇌를 잣고 계시는

돌부처님의 물레질 소리 속에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부처님 음성을 들었습니다

 

꿈인가 싶어 부처님의

가슴을 진맥했습니다 부처님의

어깻죽지와 등짝을 진맥했습니다 부처님의

잘생긴 코와 입과 눈과 귀, 그리고 부처님의

너른 이마와 곱슬머리도 만져봤습니다 그때

 

내 맥박을 타고 흘러들어온 부처님의

따스한 슬픔 한 자락이

부처님을 진맥하는 손마디 사이에서

빗물로 뚝... 뚝 ... 아롱지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 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절간

브로부도르 사원의

오백다섯 돌부처님 무르팍에는

저마다 사람들이 몰래 뿌려 놓고 간 슬픔의 낟가리가

물레 소리로 물레 소리로 물레 소리로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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