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 6대 DNA 교리들의 명암을 뚫어본다 (7) 예신문제 3

by 민초1 posted Aug 09, 2016 Likes 0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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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를 들어본다. 쌀 한 말의 자루에 밥 먹다 잘못 씹으면 이빨 부러뜨릴 만한 쌀 크기 만한 돌 조각이 100개 들어 있다고 하자. 돌 맹이가 100개라고 하지만 수 만개에 쌀과 섞어 놓으면 보이지도 않고 양으로 따져도 백분의 일도 안 된다.


핵심 잇슈는 것은 90%의 쌀이 아니라 일부분인 돌이다. 이렇다면 먹기 곤란한 쌀 자루다.


대머리는 온통 대머리여야만 대머리가 아니라 귀팅이만 휑하니 벗거져도 대머리 소리를 듣는 것이다. 대머리 아닌 곳만 뱅글 뱅글 돌며 촬영하면 아무도 대머리 아니다.


정통요소를 다소 포함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치명적 요소를 가지고 있느냐가 이단의 관건이다. 덜 믿는 것도 문제(빼는 것)지만 믿지 말하야 할 것을 더 믿는 것(더하는 것)도 문제다.

 

김상래 교수가 재림교 성경관에 대하여 다음의 진술을 했다. 일단 보자.


1) 재림교회가 진정으로 성경을 높인다.


2) 오직 성경만이 그리스도인의 품성과 경험을 시험하는 표준이다.


3)엘렌지 화잇도 철저히 성경을 높이고 있다.


4)재림교회가 화잇 저서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성경을 대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높이고 있

기 때문이다.


4)재림 교회는 오직 성경 정말 성경을 사랑하는 교회이다


5)재림 교회는 다른 경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이 성경에 대한 재림교회의 진실한 고백이고 전부의 고백이라면 계시관에 있어서 이단 여부는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계시관에 이단 시비가 일어나는가? 이런 총론적 사실들이 각론에서도 사실이고 시종일관 진실이려면

 

1) 화잇의 책도 자유롭게 비판(비난 아님) 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고전이라 불리는 책도 그렇고 칼빈의 책은 한편 존경도 받고 한편 멸시를 동시에 받는다. 기독교 강요를 존경하는 사람도 그것이 비판 할 수 없는 책이라고는 언감생심 생각하지 않는다. 재림교회 내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서 화잇의 책에 대하여 비판을 허락하는가? 생애의 빛 측에서 언젠가 발행한 책 화잇이 무너지면 재림교회 무너진다는 진실 아닌가? 재림 교회가 예수교이고 화잇교가 아니라면 화잇이 무너져도 예수님만으로 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2)화잇의 책을 두고 성경 저자들이 받은 영감과 같다라는 인상을 주는 암시를 하지 말아야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령의 영감은 오직 66권 정경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여타 다른 책이 명성을 아무리 떨친다 해도 그것은 성령의 조명이나 감화아래 쓰여진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에 대한 예의이고 독보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림 교회는 "성경과 예언의 신"이라는 말을 아주 상투적으로 쓴다. 성경통독표와 나란히 예언의 신 통독표를 나란히 놓지 않는가? 예언의 신 강조 주간도 있지 않는가? 말은 아니라고 하면서 화잇의 책들은 성경의 권위와 같게 여기거나 마음으로는 예언의 신이라는 책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화잇의 렌즈로 성경을 보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 진실이다

 

3)그리고 화잇이 초기 문집에서 일인칭을 주어로 하여 "나는 혹은 내가.......보았다"라고 하는 계시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2000번 이상 보았다고 하는 계시는 에스겔이나 사도 요한의 본 환상 경험과 같은 레벨이 아닐 수 없다. 이 계시성을 인정하면 성경만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고 유일한 경전이라는 것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로 인정하면 화잇의 책들은 사실상 계시록 후편인 셈이고 최근 200년 전의 최신판 계시요 실질적으로 경전인 셈이다. 왜 이 뻔한 사실을 외면하는 것인가? 이것을 계시로 인정하지 않으려면 내가 보았다는 화잇의 말을 그저 하나의 문학적 수사적 표현 기법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재림교회가 그럴 수 있는가?

 

화잇이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고 하는 것 까지도 양보할 수 있다. 대단한 통찰력이 있다고 하는 것 까지도 동의 한다. 필자는 그의 책을 읽을 필요나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읽을 것이다. 그러나 계시 운운 명백한 오버다. 화잇의 계시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성경만이 가진 독보적인 위치는 누구도 흔들어서는 안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재림 교회 내에서는 그의 저서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는 점이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이슈를 논의 하다가도 그녀가 언급한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않는가?

 

화잇의 책을 명실공히 한 종교가의 저술로 인정하든지 아니면 주님을 사랑한 한 그리스도인의 책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밖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안으로는 화잇의 책에 대하여 성경과 같은 수준의 계시성을 가진 책으로 인정하도록 선택을 요구한다면 표리부동한 모습이 아닐까? 성경의 영감성을 믿고 또 화잇의 영감성을 또 믿어야 참 신자이라는 구도로 몰지 말아야 한다. 성경만의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에 화잇의 선지성을 인정하지 않고도 재림 교회이 될 수 있는가?를 진실하게 물어본다.

 

정작 문제가 되는 이런 깊은 내막들이 다뤄졌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엘렌 G. 화잇 저술의 영감성과 권위성에 대하여 대총회 특별위원회가 작성한 성명서(2005년)일부 내용을 고찰해 본다.

 

A: 우리는 성경의 경전이 오직 신구약 66권으로 구성되었다고 믿는다. 우리는 성경이 신앙의 기초가 되며 모든 교리와 실천의 최종적 권위를 지닌 것으로 믿는다.

 

B:우리는 엘렌 화잇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왔으며 그의 저술들이 영감의 소산물이 되어 특히 재림교인들에게 적용이 되는 권위성을 지녔다고 믿는다. 우리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의 영감의 질과 등급이 성경의 영감성의 질과 등급과는 다르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이 단지 경건한 그리스도인 작품에 불과하다고 믿지 않는다.

 

C: 우리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이 성경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의 종국적 기초가 된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이 교리의 기초로 사용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에 관한 연구가 성경 연구를 대치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이 엘렌 화잇의 저술들을 통하여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이 성경의 의미를 다 들어 낸 것으로 믿지 않는다.

 

A만의 주장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B의 주장은 아무리 읽어도 애매모호한 소리이고 이는 결국  A의 주장을 무효화 시킨다. C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엘렌지 화잇 저술의 심오한 영적 질 때문에 화잇을 참된 선지자라고 주장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성경의 경전이 오직 신구약 66권으로 구성되었고 오직 성경만이 모든 교리와 실천의 최종적 권위를 지닌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가 참된 선지자면 그는 말한 것은 성경 계시록 (주후 100) 보다 약 1800년이나 업데이트된 최신 계시이기 때문에 성경은 자연히 밀려나는 것이다.

 

그녀를 참 선지자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성경만이 기준이라는 하는 주장은 이것은 지금 더워 죽을 8월에 한강이 꽁꽁 얼었다고 하는 말과 같은 말이다. 재림교회는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바른 계시관에 인식론에 근본적인 붕괴가 있다고 보는 것이 정직하지 않은가?

 

이것이 무지 속에 일어난 단순한 오해이거나 곡해인가? 아니면 재림교회 정통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스스로가 자초하는 모순인가? 대답해 보시라.

 

이러한 핵심 본질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표피적인 A 주장들만 되풀이 하는 것으로는 재림교회의 이단시비 진실 규명 작업이 실효가 있을까


재림교 목사님들 대답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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