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나의 생각을 요한복음이 온통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전 남편이 다섯이라고 하는 한 여자가 날마다 길어도 다시 목이
마르는 우물가에서 물을 길으려고 하는데 그 물을 달라고 하는
사실 다른 복음에 없는 기록들만 가져다가 쓰는 독특한 요한의 패턴같이
구약의 기록에도 없는 야곱의 우물을 여기에 뜬금없이 소개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우리 조상 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과거의 남자는 다섯 (오경) 이며 지금의 남자는 오경을 짜서 맞춘
은근히 내가 여자의 미래의 남자 즉 일곱번째의 남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뜻을 내 비치며.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저산에서도 말고 너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함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성경에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두 인물이 나온다.
먼저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고 한 육의 이스라엘 조상 야곱이고
남자를 잃어버린 여자가 남자를 찾아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말씀의 예배이다. 로고스의 예배이다.
종이되어 주인이 하라고 하는대로 드리는 그런 예배가 아니고
이제는 아들이 되어 아버지를 찾아가는 살아있느 예배를 드리자고 하는 말이며
신령 (성령) 과 진정 (진리) 으로 믿음의 예배를 드리자는 말이다.
아니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고 한
당신들의 남자는 기록의 남자인가 아니면 말씀의 남자인가?
우리도
"성경에 기록된 그 남자를 만났다"고고 소리지르자.
다시 그 말씀 (로고스)은 이방을 위하여 또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