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한사람이 그것을 보고 땡겼다고 말했다.
미신같은 이야기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한 사람은 아이작 뉴턴이
유사 이래 처음이었다.
또 한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지구는 평평하고 평평한 그 위로 태양이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구는 둥글고 태양을 향해 지구가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의 형편을 기록에 이렇게 남아있다.
"1611년에 갈릴레오는 로마로 여행하여 고위층 교직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망원경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자신의 천문학적 발견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일은 그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1616년에 갈릴레오는 당국의 조사를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로마 종교 재판소의 신학자들은 태양 중심설을
“많은 부분에서 성경에 있는 문장들의 문자적 의미, 성경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
교황들과 교회 학자들이 이해하는 바와 명백히 모순되므로
철학적으로 어리석고 이치에 맞지 않으며 공식적으로 이단인” 이론으로
낙인찍었습니다.
갈릴레오는 로베르트 벨라르미네 추기경을 만났는데,
그는 당시에 가장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로 여겨졌으며
“이단을 내리치는 망치”로 통했습니다.
벨라르미네는 갈릴레오에게 태양 중심설에 대한 그의 견해를 퍼뜨리는 일을
중단할 것을 공식적으로 권고하였습니다."
아무튼 갈릴레오는 1633년 6월 22일에 냉랭한 분위기가 흐르는 법정에서
종교 재판관들 앞에서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거룩하고 신성한 성경에 반하는 거짓 교리
즉 태양이 ···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교리를 고수하고 믿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해설자가 그 당시를 이렇게 말합니다.
모순은 과학과 명백히 잘못된 성경의 해석 사이에 있었습니다.
갈릴레오도 문제를 그런 식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한 제자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지만,
성경을 해석하거나 설명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부문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네.
오류가 자주 발생하는 한 가지 매우 심각한 부문은 그러한 사람들이
성서를 언제나 오로지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하고 싶어할 때 나타난다네.”
진지한 성서 연구생이라면 누구나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는 선출된 지 약 1년 후인 1979년 11월에 갈릴레오의 지위에 대한재검토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했는데,
교황은 갈릴레오가 “교회에 속한 사람들과 기관들의 손에 ···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 했다”고 시인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1992년에는 그 교황이 임명한 위원회도
다음과 같이 인정하였습니다.
“갈릴레오와 동시대 사람들인 일부 신학자들은 ··· 창조된 우주의
물리적 구조에 대해 묘사하는 성경의 심오하면서도
문자적이 아닌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현대에 와서 그 위원회가 갈릴레오 재판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한 뒤에,
교황은 갈릴레오에게 내린 유죄 판결을 일컬어
“성급히 내린 유감스러운 결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과학자의 명예가 회복된 것이었습니까? 한 저술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갈릴레오의 명예 회복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역사의 단죄를 받고 있는 것은 갈릴레오가 아니라 교회 법정이기 때문이다.
” 역사가인 루이지 피르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은 박해자가 할 일이 아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말씀을 놓고 이제는 율법주의자들이 지동설 (사람이 지켜야 할)로
몰아가고 은혜와 사랑이라고 보는 자들의 관점에는 천동설 (하나님의
아들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보는 견해로 밤과낮이 조용하게
흐르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십자가는 첫째 아담에게 주었던 다스림의 나라 (천지)를 허물고
둘째 아담에게 다스림의 또 다른 나라 (천지)를 주는 대관식이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 없다" 는 말은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분이 돌아가신 십자가는 하늘의 보좌가 내려온 시간이며
다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것" 은 그것의 확인이다.
그것을 요한이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어지는 아들과 아버지의 역사라고
말했다.
십자가도 영광이고 보좌에 앉음도 영광이라는 말이다.
그가 십자가에서 입었던 통으로 짠 고운 베옷의 속옷은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고 한 약속으로
짠 완성의 옷이었다.
처음 아담에게 주었던 천지도 다 이룬후에 안식일이 오고
십자가에서 둘째 아담에게 주었던 새로운 천지도 다 이룬후에
"여호수아의 안식" 이 왔다고 말한다.
그속에 들어간 자들은 처음것의 모든 것을 쉰다고 하는 것이다.
"다 이루었다" 가 없이 어찌 새로운 천지가 시작할 것인가?
성경이 무오하다면 왜 "다 이루었다" 고 하시고 벌써 시작이 된
돌나라를 지금 믿음으로 살고 있지 못하는가?
십자가에서
의(단번에 드린 제사)는 표현이 되었고
이세상 (처음 천지의) 임금도 심판을 받았으며
율법의 모든 죄들이 영속되었으며
이제 남은 것은 "나를 믿지 않는죄"
"내가 새 천지의 새로운 임금"임을 믿지 않는 죄
"성령을 훼방하는 그 죄" 만 남아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이다.
율법으로 왔던 처음 천지의 어두움을 허물고
사랑으로 시작한 새로운 천지의 밝음을 보지 못하는가?
의문의 율법은 떨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은 땡겼다고 하는 것이다.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떨어질 것이고
땡겼다고 믿는 분들은 땡겨감을 당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처절한 신학적 불행은
십자가에서 마쳐지지 않은 일들이 남아있다고 보는
문자적 그리고 예언적 견해 때문이다.
두개의 믿음이 있다.
아직도 이루어야 할 약속들이 있다고 믿는 떨어지는 믿음이 있고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이 되었다고 믿는 (요한복음적) 땡기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갈릴레오는
유죄는 받았을 지언정
그는 죽을 때까지 가택연금상태였습니다
십자가에서 화형도 안 당했습니다
그건 저들도 갈릴레오가 옳다는 것을 알았지만
저들의 습관적 성경연구가 용서하지 못했기에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걸 오늘 와서 사면 운운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다음
만유인력을 거스리려면
위로 솟는 공기층에 사과를 달아 놓으면
사과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ㅋㅋ
사는 게 재미 있으라고
인터넷 안 되는 곳으로
낼부터 2박 3일 캠핑 떠납니다
새로산 스마트폰이 와이파이가 안 되는 지역에서는
민초만 열리지 않습니다
와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