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 신자信者

by 빈배 오 강 남 posted May 13, 2011 Likes 0 Replies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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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지 않는그리스도인  신자"라면 모순입니다. 

"신자"란 믿는 사람인데 믿지 않는 신자는 있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도 믿지 않는 신자, 혹은 믿는다는 불신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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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그리스도인이 자기는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 그리스도인에게 섭섭한 일을 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자기에게 섭섭한 일을 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는 그 사람을 법에 고소하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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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 그리스도인이라는 분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믿음이 아닌가 살펴보고 우리 스스로를 가다듬었으면 해서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는 삶"이라고 했지만,.

사실 "검토되지 않은 믿음"은 가지고 있을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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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십시오.  그 그리스도인이라는 분이 정말로 자기가 공언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자기가 말한대로 하나님이 이 일을 처리할 때까지, 그 분 말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자기가 나서서 고소하겠다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해 하나님을 못믿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좀더 확대해석하면 자기가 직접 하나님 되어 하나님 자리에서 일을 처리하겠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무서운 "자기 우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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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함부로 나설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턱맡기고 그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턱맡김(trust)"이 바로 성경에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믿음"이라는 것이고,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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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도 아니고 동양인도 아닌 사람으로 이런 믿음과 무위를 실천한 사람 한 분을 소개합니다.

(좀 길지만 심심풀이 삼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곧 나올 제 책의 일부입니다.)

 

에픽테토스Epiktetos(50년경~138년경)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마워하는 ‘수용의 철학’ 주창

“그대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하는 것이 그대의 의무”

 

그리스 사상 중 후대 그리스도교에 많은 영향을 준 사상 체계로 스토아학파가 있다. 이 학파의 사상가들 중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에픽테토스는 네로 황제 시대였던 서기 50년 프리기아에 있는 히에라폴리스(현재 터키 남서쪽 파묵칼레)에서 태어났다. 그의 모국어는 그리스어였다. 본명은 알 길이 없고, 에픽테스라고만 알려져 오는데, 이는 ‘구해온 자’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노예로 데려다 길러졌기에 붙여진 이름이리라. 그는 그의 주인과 함께 로마에서 살았는데, 그의 주인 역시 네로 황제의 부하로서 경호를 맡거나 행정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에픽테토스의 주인은 나중에 큰 부호가 되었다. 그는 에픽테토스가 노예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당시 가장 유명하던 스토아학파의 거장 무소니우스 루푸스에게 보내  철학 강의를 청강하도록 했다.

 

에픽테토스는 평생 다리를 절었다. 그의 주인이 심심풀이로 그의 다리를 비틀고 있는데, 에픽테토스는 미소만 지으면서 차분히, “계속 비트시면 다리가 부러지겠는데요”라고만 했다. 다리가 부러지자 그는 “제가 그럴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라고 했다. 이것은 “참고 견디라Bear and forbear”라는 그의 기본자세를 말해주는 일화라 볼 수 있다.

기원후 89년 이전 어느 때, 그의 주인이 죽고 나서 에픽테토스는 자유인이 되어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90년경 공화제를 주장했다는 혐의를 받고 다른 철학자들과 함께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에 의해 로마와 이탈리아를 떠나라는 추방 명령을 받았다. 그리스 동서부에 있는 니코폴리스(‘승리의 도시’라는 뜻으로 아우구스티누스 황제의 전승 기념으로 세워진 도시)로 가서, 거기서 자신의 학교를 열고 논리학, 물리학, 스토아철학 등을 연구하며 가르쳤다.

 

그의 강의는 로마의 상류층 학생들을 비롯하여 로마제국 여러 곳에서 많은 학생들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 있는 명강이었다. 노예의 신분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까지 이른 그의 입지전적 삶은 그에게 사물을 보는 특별한 안목과 통찰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는 80세 정도의 장수를 누리다가 135년경 죽었다. 죽기까지 ‘땅과 하늘과 옷 한 벌만’ 가지고 살았던 청빈의 삶이었다.

 

에픽테토스 본인은 아무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문하에 플라비우스 아리아누스( 86~160년경)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나중에 하드리아누스 황제 밑에서 집정관으로 일하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기 작가가 된 인물이었다. 그는 에픽테토스의 강의를 들으면서 꼼꼼히 적었다가『강화』이라는 책을 냈다. 『강화』 서문에서 그는 이 책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에픽테토스가 사용한 말 그대로를 적은 것’이라고 했다. 『강화』는 8권으로 되었는데, 처음 4권만 현존하고 있다. 그는 또 그가 적어둔 강의 노트에서 에픽테토스의 기본 가르침이라 생각되는 것을 뽑아『엔키리디온』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요람要覽’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에픽테토스는 스토아학파에 속한 사상가였다. 이 학파는 기원전 3세기 경 사이프러스섬 키티온 출신 제논Zenon(기원전 335?~263?)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는 자연은 물질과 로고스로 이루어져 있기에 자연을 연구하여 그 속에 있는 로고스를 알고 그것에 순응해 사는 것이 윤리적 삶의 목적이라 보았다. 또 인간은 모두 이처럼 로고스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평등하다는 사해동포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사물은 기氣와 이理로 구성되었고,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라 주장한 중국 신유학의 정호程顥를 연상시키는 말이다. 제논의 사상은 로마로 건너가 세네카Seneca,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황제 같은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했다.

 

이제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보기로 한다. 첫째는 ‘받아들임’이다. 스토아학파의 기본 가르침대로 에픽테토스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의 열쇠라는 ‘수용受容’의 철학을 강조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면 행복해지고, 거기에 대항해서 싸우면 더욱 비참하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비극적 사건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는 것은 그 비극적 사건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그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우주의 원리를 깨닫고 거기에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때 우리의 마음은 평정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에픽테토스에 의하면 “다리를 저는 것은 다리에 장애가 되는 것이지 우리의 의지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불편한 다리 때문에 걸을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불행해져야만 하는가? 아니라고 한다. 어떤 사건에도 단 한 가지 반응만 있으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인간도 먹고 마시고 성생활을 하고 잠을 잔다는 면에서 동물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만물에 내재하는 ‘섭리’를 깨닫고 무슨 일이 닥치든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 했다. 무엇이든 참고 견디기 어렵다고 여기게 되는 것은 그 뒤에 반드시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물에 관통하는 이런 이치와 합리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참을 수 있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자발적으로 감옥에 가고,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몸부림치지 않은 것 또한 자기에게 닥치는 일이 무슨 일인가를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기의 운명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 정신적 자유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에픽테토스의 말을 인용한다.

 

<그대는 작가가 선택하는 대로의 연극에 나오는 배우임을 기억하라.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하고, 그가 그대에게 가난한 사람의 배역을 맡겼다면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관리 역이나 사사로운 개인의 역을 맡겼더라도 그렇게 하라. 그대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하는 것이 그대의 의무이고, 무슨 역을 선택할까 하는 것은 그대의 소관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했다는 ‘운명을 사랑함amor fati’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둘째는 ‘고마워함’이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겪는 어려움들을 권투할 때 링에서 치고받으며 싸워야 하는 ‘거친 젊은이’와 같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런 싸움을 통해 올림픽 선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자제심이나 지구력이나 인내심을 키우는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고마워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일어나는 일들이 그대가 원하는 대로 일어나길 바라지 말고, 일어나는 일이 그냥 순리대로 일어나길 바라라. 그리하면 평정한 삶의 흐름을 보게 될 것이다.>

 

느려터진 엘리베이터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불평만 하면서 스스로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대신, 그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시간을 인내심을 함양하는 기회로 삼아 고마워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과 같다.

 

셋째는 ‘더 큰 시각에서 바라봄’이다. 에픽테토스에 의하면 사물들 중에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우리를 위해 삶의 주사위가 어떻게 던져질지를 우리로서는 조종할 수가 없다.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주사위가 던져졌을 때 그 결과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질병이나 죽음이나 가난을 피하려고 하면 더욱 비참하게 살 수밖에 없다. 이 중의 어느 것도, 특히 죽음의 경우 우리가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것들을 잘하는 데서 생겨난다. 행복은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다스릴 때, 욕망과 싫어함을 최소한으로 줄인 단순한 삶을 살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무엇이다. 이를 수학 공식으로 표현해보면 행복(H)은 성취(A) 나누기 욕망(D), 즉 H=A÷D라는 것이다. 성취(A)를 크게 하면 물론 행복이 커질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그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즉 욕망(D)을 점차 줄여 행복을 점점 더 키우는 데 중점을 둔다. 욕망을 최소한으로 하면 행복이 그만큼 더 크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불행이 닥쳐올 때,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일일 경우에는 “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하면서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이가 죽거나 하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며 슬퍼한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나에게 적용하는 판단 기준이 다르다. 에픽테토스에 의하면 깨달은 사람은 “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라는 말을 ‘자신’의 인생사에 적용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불행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물을 더 큰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뜻이다.

 

스토아 철학이나 에픽테토스의 사상은 요즘 유행하는 것과 같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과 거의 정반대라 볼 수 있다. 사물을 함부로 뜯어고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차분히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은 억지로 하는 행동이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 자유를 누리라고 가르치는 노자 『도덕경』의 ‘무위無爲’ 사상과 비슷하다. 운명을 받아들이되 숙명론으로 빠지지 않고 자기의 운명을 끌어안음으로 그 운명을 극복하라는 『장자』의 안명安命 사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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