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문제를 저는 이런 관점에서 봅니다

by 지경야인 posted May 13, 2011 Likes 0 Repli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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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의 추억

 

우리 집 앞마당에 배나무 한그루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 배나무는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주고 매미의 아름다운 노래가 들리고 나뭇가지에 그네를 만들어 그네를 타는 고마운 나무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시원하고 향긋한 배를 마지막 한 개의 과일까지 다 줄때까지 너무나 좋은 나무였습니다.

 

옆집에는 똑같은 배나무가 더 맛이 있고 더 많이 열리고 더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집 배나무의 과일을 따먹는 습관이 전혀 달랐습니다.

옆집 배나무는 맛이 들기 시작하면 제일 크고 제일 맛있는 배 부터 따먹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그 집배를 따 먹을 때는 항상 가장 맛있는 배만 따먹더군요.

 

저희 집은 아까워서 언제나 볼품없는 벌레 먹은 것이나 볼품없는 것부터 따먹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집은 언제나 가장 안 좋은 것부터 없어집니다.

결국 끝날 때까지 우리 집 배나무의 배중에 가장 맛없는 것을 따먹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과는 맛있고 향긋한 맛있는 배가 마지막을 장식할 때는 추석에 이웃과 친척에게 제사상에 놓으시라고 몇 개씩 나누어 드렸는데

 

옆집은 언제나 그 많은 배가 별로 크지도 못하고 일찍 떨어지고 동내 누구와도 나누어 먹지 않고 욕심만 많은 그런 사람이었고 가까이하거나 친하게 지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밥 먹는 저를 위하여 병어와 갈치를 늘 준비하셨는데 뼈를 발라내기가 쉬워서였습니다.

밥 한 수저를 떠서 들고 있으면 잔불에 구운 생선살을 발라서 얹어주고 저는 그걸 받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나이가 조금씩 더 먹고 어느날인가 밥상에서 밥을 먹는데 맛있는 생선 반찬에 저의 젓가락 만 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들도 다들 젓가락이 맛있는 생선에는 젓가락이 안가고 맛없는 채소에만 젓가락이 가는 겁니다.

그래서 맛없는 채소를 집어 먹어 봤는데 분명히 생선보다는 더 맛이 없더군요.

하지만 분명 생선이 많을 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나들도 잘 먹었었거든요.

아하, 이건 나만 먹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채소를 먹었고 서로 밥그릇위에 생선살을 발라서 얹어 주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우리 밥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밥이 다 떨어질 때에야 마지막 밥을 그릇을 비우는 마지막 숟가락과 함께 떨어졌습니다.

저희 동네는 인심이 어찌나 좋은 동네인지 제사를 모시면 항상 조금씩이라도 떡을 나누어 먹었었는데

어른 손바닥 크기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저희 여덟 식구가 나누어 먹으려면 손가락 굵기 정도였지만 서로 더 먹으려는 것은 저하나라 어머니 몫에서 제 것이 불어납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철이 들면서 어머니께서 밥부터 잡수시고 나중에 저희들을 주시기 위하여 남기시니 저희들도 떡을 먼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의 음식은 언제나 가장 맛있는 것은 가장 나중에 먹는 것이란 인식이 점점 박히게 되고 그게 습관화되고 생활화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괴리감에 사로잡혀 한동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맛있는 떡이 안식일 오후에 나왔는데 저는 당연히 밥 위에 떡이란 상식으로 밥부터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젓가락이 떡으로 먼저 가더군요.

저는 한참을 망설인 다음에야 떡을 먹었습니다.

 

교회에서 감귤이 흔해지면서 감귤을 박스로 사와서 먹는데 왜 교회 귤은 항상 시어서 귤을 먹을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저는 유난히 신 귤은 먹지 못하는데 그래 다른 사람들은 맛있다고 아주 잘 먹는데 교회에서 먹는 귤만은 유독 시단 말인가 교회가 사오는 귤은 교회만 오면 시어 지나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아무튼 그리 신 귤을 그리도 맛있다고 먹는 사람들이 신기했습니다

맛있는 배를 사오면 나도 잘 먹을 수 있는데............

교인들이 귤을 어째 안 먹냐고 하기만 하고 자기들은 잘 먹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교회에서의 귤은 안 먹었고 그 영향으로 집에서도 귤은 잘 안 먹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흐르고 귤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는데 왜 이 맛있는 귤을 안 먹냐고 권하더군요. 그래서 전 신 것은 못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걸 먹어보라고 하더군요.

친구가 권하는 귤을 먹어보니 아주 달고 맛이 있었습니다.

아니 교회에서 먹는 귤도 시지 않고 맛이 있네?

이친구야 신 귤과 단 귤이 있는데 사람들이 신 귤은 안 먹고 단 귤만 먼저 골라 먹으니 그렇지

저는 신 귤과 단 귤이 모양이 다르단 걸 몰랐습니다.

언제나 먼저는 안 좋은 것부터 먹던 습성이 몸에 뵈어서

여전히 교회에서 교인들은 더더욱 당연히 그러는 줄 알고 있었는데 교회의 교인들은 맛있는 단 귤부터 추려 먹었으니......................

그걸 모르는 저는 먼저 양보하는 습성대로 남들이 항상 단 귤을 골라 먹은 후의 신 귤만 먹었으니 신 귤만 먹었을 수밖에 없었죠.

가장 좋은 것을 가르치고 실천할 것을 이야기하면서 왜 우리의 모습은 항상 이럴까?

 

고기 안 먹고 커피 안 먹고 고춧가루 안 먹고 조미료 설탕 안 먹고 현미 먹고 채식하고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물 먹는다면서 정작 우리의 모습은 언제나 실망 섞인 모습입니다.

 

가장 어려운 자리 먼저 차지하고 힘든 일 먼저하고 교회 와서 주차하기 가장 어려운 곳에 내가 먼저 주차하고

누구에게 목사라고 장로라고 누군가에게 시키기 전에 언제나 솔선수범하면 교인들은 자연히 따라갈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어 교회의 본이 되고 사회의 본이 될 것입니다.

없이 살아서 가난해서 부모님이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모본이 사랑의 행동들이 저의 습성이 되었던 이야기가 교회에서도 이루질수는 없을까요?

언제나 목사나 장로는 특별대접을 교인들이 보는 데서는 절대로 받아서는 안 될 행동이고 항상 맛있는 것이 목사의 상위에 올라오면 그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오늘 처음 교회를 찾은 성도나 웃어른들에게 가져다드리는 모습을 보이고 누군가 맛있고 좋은 것을 주면 누군가 옆에 맛없고 형편없는 것을 받아들고 있는 성도와 바꾸셔야 합니다.

성도중 누군가 명절날 선물을 주면 그걸 고맙다고 덥석 받으시지 말고 고맙게 받으셔서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시면 교회가 달라집니다.

 

저희 부모님 모본이 저희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시절이 풍족한 시대에 태어나서 그런 모본이 아이들에게 전달 되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픕니다.

항상 단칸방의 저희 집은 비좁아도 손님이 항상 넘쳐났고 동내 아낙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지나가는 길손들이 그 비좁은 방에 틈을 만들어 하룻밤을 보내었고 거지가 구걸을 와도 항상 마루에 모시고 대접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나의 삶의 자랑이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음식 절제해도 그마음에 변화가 없으면 울리는 징이요 꽹고리고

아무리 음식 절제해도 그 몸에 변화가 없으면 울리는 징이요 꽹고리고

아무리 음식 절제해도 그 건강에 변화가 없으면 울리는 징이요 꽹고리고

아무리 음식 절제해도 교회에 변화가 없으면 울리는 징이요 꽹고리라

작은 실천에서 변화를 경험하고 감동을 주고 양보하고  감사하게 된다면 참된 절제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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