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울 천국

by 돌베개 posted May 19, 2011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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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 정일근| 시와 음악이 흐르는
차꽃조회 33|추천 0|2009.02.22. 00:14

P1010380.JPG

 

부석사 무량수 / 정일근

어디 한량없는 목숨이 있나요 
저는 그런 것 바라지 않아요 

이승에서의 잠시 잠깐도 좋은 거예요 
사라지니 아름다운 거예요 

꽃도 피었다 지니 아름다운 것이지요 
사시사철 피어있는 꽃이라면 
누가 눈길 한 번 주겠어요 

사람도 사라지니 아름다운 게지요 
무량수를 산다면 
이 사랑도 지겨운 일이어요 

무량수전의 눈으로 본다면 
사람의 평생이란 눈 깜빡할 사이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우리도 무량수전 앞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반짝하다 지는 초저녁별이어요 

그래서 사람이 아름다운 게지요 
사라지는 것들의 사랑이니 
사람의 사랑은 더욱 아름다운 게지요.

 

................................................................

때때로 이 글을 읽으면서 상상해 보곤 합니다.

만약에 사람이 끝없이 살게 된다면 얼마나 끔직한 일일까 하고 말이지요.

천 세를 누리네, 만 세를 누리네 한다면 말이지요.

어느 광고에 200살까지 살거야! 하시는 100살 된 할머니가 나오시는데

처음 그 광고를 보고 깜짝 놀라고 당황했었지요.

200살까지 살아야 한다면 그 자식에 자식까지 다 보내고 말텐데,

그 슬픔을, 그 덧없음을 어찌 감당하시려고 그러나 하고 염려가 되었지요.

광고니까요! 그럴 일은 물론 없겠지요.

이승에서 잠시 잠깐 피었다 사라지니까 좋은게지요.

한량있는 목숨이어서 살아가는게 기쁘고 귀한거지요.

사라지는 것, 짧게 빛나는 것. 그래서 이 생이 아름다운거지요.

별이 또한 그러하지요. 짧게 빛나고 사라져주니 고맙고 우러러 보는거지요.

무량수를 살아야 한다면 사랑도, 애써 살아가는 일도 시들하겠지요.

밥먹는 것도, 자는 것도, 일하는 것도, 시들겠지요. 그뿐인가요 어디?

어쩌면 자식을 낳아 정성껏 키우는 것도 그만이지요.

사람이,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는 것이니 그런거지요.

 

한량없음을 바라지 않는 정일근 시인이 참 맘에 들었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부석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국보 18호.

유홍준은 나의 유산답사기에서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형용사로는 부석사의 장쾌함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하였지요.

그가 부석사의 늦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은행길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 자신은 사과나무 밭 때문이라고 하였지요.

그런 고고함, 그런 기품, 그런 청순함이 사과나무는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사과나무의 힘을 굳게 믿는 그는, 그래서 부석사의 늦가을을 사랑한다고 하여서

제 맘조차 큰 동경으로 여러차례 흔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어쩌다가  대학 시절, 그리도 그 힘들고 먼길을 찾아 소백산에 오르려고 죽령으로 달려갈 줄은 알았으면서

부석사는 돌아볼지 모르고 내려오고 말았는지.

오던 길에 있던 희방사를 겨우 끼웃거리고 말았던 것인지.

그 무지를 지금은 못견디게 아깝고 미련스러워 가슴을 탕탕 치고 마는 겁니다.

 

부석사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 소백산 기슭의 부석사의 아름다운 한 낮을

단 한번이라도 보고 왔더라면 누구라도 그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을

사무치게 고마워한다는 그 마음을 저도 갖을 수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도대체 이제 그 먼길을 언제 갈 수 있다는 말인지요. 참 원통하게 아까운 일입니다.

부디 올 늦가을엔 그곳에 서서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산마루를 눈길 가는데까지

하염없이 사무치게 고맙게 바라보다 왔으면 좋겠습니다.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한 대목으로 제 안타까운 맘을 더해봅니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진다. P101041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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