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에서 배운다 - 제자님께

by 김주영 posted May 22, 2011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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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대로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과 내재하시는 하나님

빛의 파동과 입자 처럼이나 조화하기 힘든 이 개념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뉴에이지 (혹은 하시디즘) 은

전통적 기독교(유대교) 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에 생겨난

반동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주위에 

뉴에이지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 책을 우리 기도력 읽듯이 매일 읽는 사람들 있습니다. 

한때는 이름으로나마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글쎄요

그들이 교회에서

친밀하고 내재하시는 하나님

용서와 자비와 용납의 하나님을 배우고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스스로를 사랑, 용납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구태여 뉴에이지 언저리를 맴돌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 제자님의 신앙도

초월과 내재의 하나님이 적당히 모자이크된 신앙일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때로 그 이름이 달고 오는 예단 때문에

우리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무슨사상이다

저건 어떤 이즘이다

너는 무슨 주의라며?

저 사람 모모주의자야


이름 붙여 놓고 보면

그 칼라풀한 실체가

이름으로 인해 도매금으로 재단될 때가 있습니다. 


-----


인내천

시천주


어느 종교학자나

동학교인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배웠습니다. 


아브라함 죠슈아 헤셸이 하시딕들에 대해 쓴 책이 한 권 있는데 

제 어머니가 몇년 전에 심심하셔서 그 책을 읽으셨습니다. 

참 좋은 책이다  많이 배웠다

그러시더군요. 


신앙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패러독스를

무슨 무슨 신학적 용어나 철학적 정의를 들어 가며 설명하지 않아도

저의 어머니는 충분히 느끼고 있었고


그것을 말 되게 설명해 주는 것을 듣고(읽고)

공감했던 것입니다. 


-----


좀 무리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뉴에지지와 

율법주의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쁩니까?


우리가 우리 중의  율법주의에 대해 참고 관대하고

인내로 교육하고 성숙해지기를 기대하는 바로 그만큼만이라도


뉴에이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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