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심장이 터져 돌아 가셨다. "수치에 수치를 당하니 심장이 터지려고 합니다. 이 기막힌 쓰라림, 가실 길이 없사옵니다. 동정을 바랐으나 허사였고, 위로해 줄 이를 찾았으나 아무도 없었읍니다." (시편 69:20 공동번역).
손과 발을 꿰둟은 못들이 주님을 죽인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죄가 그분에게 "수치에 수치를" 더 하였다. 우리의 죄가 그 분의 심령을 말 할수 없는 무게로 짖눌렀다. 그리고 결국 그 분의 심장을 터트렸다.
죄는 실로 무서운 것이다. 죄는 법을 파괴하는 행위 이다. 그러나 법은 하나님의 품성, 곧 그의 사랑의 마음이 아닌가? 결국 죄는 하나님의 민감하신 마음을 찟는 행위요 그 분을 죽이는 행위 이다. 이 사실은 십자가 위에서 증명 되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시내산에서 처음 만든 것이 결코 아니다. 태초부터 하나님 마음속에 뭍혀있던 원리원칙들을 시내산에서 보여 주신것일 뿐이다. 십자가상 예수님의 고통도 십자가 위에서 시작과 끝을 맺은 것이 결코 아니다. 죄가 시작된 후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죄로 인해 괴로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십자가 위에서 겨우 우리의 무딘 가슴을 뚫고 조금이나마 보여진바 된 것이다.
예수님께선 지금 하늘에 편히 앉아 계신 것이 아니다. 어떻게 이 죄에 찌든 세상을 무감각으로 바라만 보고 계시다고 생각 할수 있겠는가? 그의 자녀가 굶주릴때 그도 함께 굶주리신다! 그의 자녀가 강간 당할때 그 고통을 함께 느끼신다. 자살 하는 자기 자식의 절망을 같이 맛보며 오열 하신다. "그 들의 모든 고통에 동참하사..." (이사야 69:9).
그 분은 말할수 없는 고통과 쓰라림으로 죄악으로 물든 지구의 거민들을 내려다 보고 계신다. 그 분은 죄의 참혹성에 대하여 우리보다 훨씬 더 민감 하시기에 우리가 죄로 인해 괴로워 할때 그분의 고통은 수천 수만배나 더 하시다. 그러나 그분은 끝까지 참고 기다리신다. 우리가 그 분의 사랑을 결국 이해하고 받아드릴 것이라고 믿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더 그 분의 가슴에 못을 박을수 있겠는가? 아무 아낌없이 그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주님께 무었을 더 바라겠는가? 이제 우린 그 분의 터진 가슴을
싸매 드려야 할때가 아닌가?
그동안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우리의 삶은 늘 주님가슴에
대못을 박는 삶이 었음을 고백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답답할 심정일때가
많았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 놀라운 사랑이 조금은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것 같았습니다. 더욱 더 주님께 자신을 맡겨서 죄와 싸워서
이기는 삶을 간구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의 터진 상처를 어루만져줄수 있는 너그러운심성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