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구원관-4-

by 로산 posted Jun 01, 2011 Likes 0 Replies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절대적 구원관-4-

4. 재림전 심판(조사심판)에 관한 재림교회의 입장

구약시대의 성소의 기별은 구원의 기별이다
하나님께서는 표상과 의식을 통하여 복음의 원리를 제시하셨다
모세 성소제도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 제사장으로서의 중보, 및
마지막 심판을 예시한 것이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
마지막 때에 관련된 이 2300년 끝에 시작되는 심판은
그리스도와의 바른 관계를 확인할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그의 대제사장 중보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모든 백성을
의롭다 칭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온 우주 앞에 옹호될 것이다

그러나 재림 전 심판(조사심판)은 성경해석상의 일부이며
구원과 관련된 절대적 교리는 아니다

이상이 재림교회의 재림전 심판에 관한 견해였습니다
이 견해는 내가 만든 것도 아닐뿐더러
재림교회의 유수한 학자가 만든 것으로
구원과 관련된 절대적 교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님들 중 어느 분은 나에게 김균의 7대 불신이라면서
내가 재림교회의 기본이 되는 교리를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분명히 밝히기를
“그러나 재림 전 심판(조사심판)은 성경해석상의 일부이며
구원과 관련된 절대적 교리는 아니다“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성경해석상의 일부입니다
구원과 관련된 절대적 교리가 아닙니다

교단은 구원과 관련 없는 교리일 뿐이라는데
어디서 주워왔는지는 모르지만
이 교리가 구원에 대하여 그리고 교단을 허무는데 대하여
절대적이란 포장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아래 이유로 이런 종류의 조사심판 믿지 않습니다
구원과 관련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성경적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입니다

우리는
초기 재림주의자들이 대 실수 후
2300주야와 조사심판을 복음의 두 기둥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나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가르쳤다
그래서 2300주야 예언의 끝을 1844년이라 말한다
그때부터 조사심판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줄 곳 성소에 계시다가
1844년에야 비로소 지성소로 가셨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해 10월 22일부터
성도들의 행위가 조사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두 기둥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것이 얼마나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성경 어디에도 조사심판이니 재림 전 심판이니 하는 구절 없다
삼위일체가 성경에 없어도 사용하듯이 이것도 그렇다고 말한다
사실로 말하자면
1844년 대 실수를 저지른 후에 남은 무리들이 만들어 낸 걸작품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 즉시 손으로 짓지 않은 성소에 들어가셨다.
여기서 손으로 짓지 않았다는 말은 지은 적이 없다는 말이다
원래부터 있었다는 말이다
원래부터 있었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이신 그분에게 해당되는 언어이다
그런데 인간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았다니까 하나님이 지었다고 건축물로 이야기한다.

하늘은 성소 지성소가 없다
성소이신 예수 지성소이신 예수
즉 그분 자신이 하늘이요 천국이요 성소요 지성소이다
그래서 1844년의 지성소 입소 날짜 책정은 문제가 있다
이 땅에 오신 그 분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원래의 자리인 하늘로 가겼다
그 하늘이란 그분 자신의 거처일 뿐이다
편재하신 그분은 인간의 몸이 아닌 신의 몸으로 계신다
그러나 그분이 입으셨던 외형은 그대로 가지셨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분이 하늘에 가신 것은 성소요 지성소인 그분의 원래 위치를 말하는 것이지
사람 손으로 짓지 않고 하나님 손으로 지었다는 개념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1844년은 문제가 있다

히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 단번에 들어가신 것이 1844년이 아니라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그 때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성소를 하늘 성소의 그림자라 말한다
만약 그림자라면 찢어진 휘장으로 성소 지성소의 구분은 십자가 사건 때 없어졌다.
사실이라면 하늘도 찢어질 것이고 그래서 칸막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으로 찢어진 휘장이 예수께서 하늘에 가시자 다시 만들어지고
그곳 성소에 속죄의 피를 뿌리게 되었을까?
그럼 그 피는 짐승의 필까 아니면 예수의 필까?
말 되는가?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한 번 죽고 심판 받는다
의인이건 악인이건 예수를 믿건 예수를 믿지 않건
1844년 이전에 태어났건 1844년 이후에 태어났건
1844년 이전부터 예수 믿었건 1844년 이후부터 예수 믿었건
그런 건 관계하지 않는다

히 9: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여기 이 말씀을 조사심판이라고 우기는 분들 있다
이 땅의 사람은 한 번 죽는다
그리고 심판 받는다
이의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죽을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러시려고 죽으셨는데 한 번 드리셨다 즉 한 번 죽으셨다
이젠 그분께서 두 번째 오실 것인데 그 때는
죄와 상관없는 자를 데리려 오신다
초림은 죄인을 위해서
재림은 죄와 상관없는 사람을 위해서이다.
이 죄와 상관없다는 말은 죄인이지만
죄와 상관없이 해 주신 분을 믿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즉 죄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덮임을 받은 사람들이란 말이다

1844년 이후부터 구원 얻을 죄인들을 위해서 조사한다는 이론은 성경적이 않다
이게 재림교회의 교리라면 믿을 만한 사람들은 믿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반신반의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 하면 개도 안 물어 간다

몇 달 전 남해 어느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 동네 주인 없는 고양이가 개만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고기를 낚아서 방파제에 내려놓으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물고 가버렸다
그러다가 독이 있는 복어나 독가시치를 낚아 던져 놓으면 절대로 안 물고 갔다
짐승도 자기 죽을 것 알더라 이 말이다

내가 이 게시판에서 곰보배추 이야기 한 적 있다
그것 독초라서 사람은 적절히 먹으면 감기에 좋은데
소는 절대로 그 풀 뜯어 먹지 않는다
독초를 알기 때문이다

1844년 이후 녹명책에 기록된 모든 사람을 조사심판한다.
즉 심판해서 하늘 데려가려고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성경적이라 하자
그러면 어제까지 교회 나오던 사람이
변절해서 오늘부터 나오지 않으면 조사심판에서 제외되는가?
그런 사람들 명단을 조사심판 대상 책에서 지우는가?
그러다가 몇 년 후 다시 나오면 이름 다시 올리는가?
죽기 직전까지 셋째천사의 기별 모르던 사람이
어찌어찌해서 요양원에서 기별을 받았다면
죽기 전에 그 이름 조사심판 명단에 적어 넣는가?
우리 좀 실질적으로 생각해 보자
개도 안 물어 갈 조사심판 고양이도 안 물어갈 조사심판
소도 안 물어 갈 조사심판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난 그렇다고 확신한다.
난 절대로 물고 갈 마음이 없다
그것 안 물고 가도 먹고 살 이름 성경에 늘려있다
난 언제나 나를 풍성히 감싸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 얻고 싶다.

다음 글이다

밀러주의자들은
다니엘 7장의 심판 장면, 다니엘 8장 14의 성소정결과
계시록 14장 7절의 심판 등은 재림 때 일어날 것으로 보았다
그 말은 1844년에 조사심판이 마친다는 뜻이다
안식일 준수자들에게 그 심판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한 것에 따라
상급을 주시는 시간인 집행심판이었다
찰스 피치는 요한 계시록 14장 7절의 심판은 세상의 멸망을 언급하였다

심판에 관한 수년간의 연구 끝에 안식일 준수자들은 이러한 심판을
재림 전 심판 또는 결국 그들이 부르게 될 조사심판이라고 보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해석은 그들의 질서에 분열을 초래하였다....

20세기의 어떤 비평가들은 재림교회가 대실망의 변명으로
1844년 이후 재빨리 재림 전 심판을 끼워 넣었다고 가르친다.
상당히 그럴듯한 해석 같지만 역사적인 사실과는 다르다

단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재림 전 심판이란 개념은
1844년 10월의 대 실망 전에 있었다.
이 조사심판은 조사이어 리치가 1830년대 후반에 발전시킨 개념으로
심판은 부활 전에 필요하다는 것이 당시 그의 주요한 주요 사상이었다.

1841년 리치는
“어떤 세상 재판정에서도 죄수가 재판 받기 전에 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러실 수 있겠는가!“라고 기고하였다
상당수의 밀러주의자들은 1844년 10월 전에 리치의 개념을 채택했다
구름타고 오시는 예수께서 백성들에게 상급을 주신다는 성경의 가르침이
재림에 앞서 누가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할지 하나님이 결정하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리치의 개념은 쉽게 받아 들여졌다

리치는 재림 전 심판-조사심판-이 다니엘 7장 25절의 예언적 기간인
1260일이 끝나는 1798년에 시작해서 2300주야의 끝인
재림 전에 마쳐질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다
1845년 1월 아폴로스 헤일과 조셉 터너가
또 다시 결혼 예식 비유에 대하여 더 깊은 이해를 요구했다
그들은 누가복음 12장의 혼인 비유가 그리스도께서 결혼식에서부터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마태복음 22장의 결혼식 비유는 임금이 자신의 하객들이 결혼 예복을 입었는지
입지 않았는지를 조사하는 심판의 장면이라고 묘사하였다
그들은 다니엘 7장의 심판을 혼인예식과 연결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10월 22일에 들어서서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새로운 봉사를 시작하셨다고 결론 내렸다
지금이 심판 기간이란 단어는 그들이 먼저 사용했었다
1845년 3월에 밀러는 다니엘서 7장의 심판과 계시록 14장의 심판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조셉 베이츠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이 문제를 보았다 그리고는 1848년 후반에 들어서
“죽은 성도는 지금 심판 받고 있다”라고 주장했었다
그래서 조셉 베이츠는 안식일 준수자로서는 제일 처음 재림 전 심판을 가르친
첫 번째 지도자였다

1849년 1월 5일 엘렌 화잇은 조셉 베이츠의 의견을 같이 한다
그 당시 엘렌은 초기문집 36쪽에서 그 문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각 사람의 구원이나 멸망에 대하여 결정하기 전까지는
지성소를 떠나지 않을 것임을 보았다“

그러면 불같은 성격의 제임스 화잇은 어떤 견해를 가졌을까?
1850년 9월 말 제임스는 재림 전 심판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베이츠와 의견을 달리하고 이렇게 기록했다
베이츠와 다른 견해라는 것은 바로 엘렌 화잇과도 다른 견해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심판에 관하여 출판되었던 상반된 견해들에 의해 혼란을 겪어왔다...
어떤 이(베이츠를 지칭)는 심판 날이 재림에 앞서 온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단정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되어 있지 않다“

제임스의 견해는 심판의 큰 날은 1000년이 걸린다는 것으로 재림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장이 서서히 바뀌었는데
1854년 2월 리뷰지에 J.N. 레프버로우가 쓴 재림 전 심판에 관한 글을 기고하게 함으로
그는 조사심판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 같이 기록했다
“선한 자나 악한 자나 죽음에서부터 끌어올려지기 전에 심판 받을 것이다
집이나 혹 교회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조사심판은 첫 번째 부활 전에 이루어질 것이다
악한 자들의 심판은 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 동안 진행 될 것이며
그들은 그 기간의 마지막에 일어날 것이다“

조사심판이란 용어는 1845년 2월 초 엘론 에버츠가 처음 기록으로 남겼고
1857년 안식일 준수 재림교인들이 재림 전 심판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였다

조사 심판은 재림 때 구원 얻을 사람만을 위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재림하시면 모든 사람은 심판을 받는 것이다
따로 구별해서 심판을 받을 이유가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 심판에 대한 사상은 앞서 말한 것처럼
화잇이 계시로 본 사상도 아니다

마22장의 혼인잔치와 조사심판과의 연관 역시
바로 아폴로스 헤일과 조셉 터너의 작품이었다.
그게 오늘 재림교회 교리화 되어 있다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