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키스가 있었다-퍼온글

by 로산 posted Jun 04, 2011 Likes 0 Replies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태초에 키스가 있었다

창세기부터 아담과 이브, 알렉산더의 키스까지…입맞춤의 의미와 기원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키스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이른바 ‘키스학’(Philematologie)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물음이다. 지그문트 리브로비치라는 학자는 <키스와 키스하기>(1877)에서 키스의 기원을 에덴동산으로 돌렸다. “아담과 이브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최초로 키스를 한 것은 그들이었을 것이다. 남은 물음은, 그들이 키스를 한 것이 선악과를 따먹는 동안의 일인가, 아니면 그 후의 일이었는가 하는 것뿐이다.” 어느 쪽일까? 조지프 콘래드의 말이 옳다면, 키스는 단연 선악과 이전의 현상이리라. “키스는 천국의 언어 중에서 아직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다.”

키스의 기원은 신화인가 동물인가

사실을 말하자면, ‘근원키스’(Urkuss)는 아담과 이브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구약성서 창세기 2장의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최초의 키스는 이렇게 인간과 인간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그것은 구강 대 구강이 아니라 구강 대 비강의 키스였다. 이 히브리의 창조설화가 옳다면, 우리가 가진 생명 자체가 실은 신의 키스의 산물인 셈이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패러프레이즈하자면, 이렇게 “태초에 키스가 있었다”.

이 히브리의 설화는 아마도 BC 4000년 이전의 이집트 신화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텍스트는 근원적 카오스의 인격화인 눈(Nun)에서 모든 신의 아버지가 될 아툼(Atum)이 태어나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때 아툼은 마치 양수 속의 태아처럼 근원적 바다로 표상되는 어머니에 파묻혀 아직 신의 활동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그때 눈이 아툼에게 말했다. 너의 딸 마트(Maat)에게 키스를 해라. 그에게 너의 코를 갖다 대라. 그렇게 하여 그녀가 네게 떨어지지 않으면, 너의 심장은 살아서 뛸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와 이집트의 신화 사이에는 약 3천 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두 텍스트를 비교해보면,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서서히 진행된 관념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먼저 구약성서에서는 야훼가 아들(인간)의 코에 숨을 불어넣는다. 반면에 그보다 더 오래된 이집트의 텍스트에서는 아툼이 딸의 코에서 숨을 빨아들인다. 다시 말하면, 성서에서는 남자가 남자에게 생명을 준다면, 피라미드의 텍스트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모태에서 여자의 숨을 받아 생명을 얻는다. 모계제 사회의 신화가 어느새 가부장제의 신화로 바뀐 셈이다.

창조의 신화와 설화에서 키스는 인간의 신성한 기원을 보장해주는 장치로 등장한다. 물론 오늘날 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기서 봐야 할 것은 외려 인간에 대한 고대인들의 관념, 즉 그들이 자신을 무엇으로 간주하고 싶어했느냐 하는 것이다. ‘키스학’에 이런 방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키스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시도는 인간의 동물적 기원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자가 아닌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기원은 당연히 동물일 것이다.

동물들이 상대의 몸에 코를 비비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어떤 설명에 따르면, 동물들의 이런 행태는 냄새를 통해 면역유전자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영장류에 속하는 동물들 사이에서는 인간의 키스에 근접한 친교의 행동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저 ‘코키스’만이 아니다. 보노보와 오랑우탄의 경우에는 우리가 ‘프렌치키스’라 부르는 구강 대 구강 키스도 관찰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근원적 키스’란 신과 신, 신과 인간 사이가 아니라 동물과 동물 사이에서 이루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신화와 설화에서 키스는 ‘생령’(生靈)을 들이마시거나 불어넣는 행위였다. 하지만 진화론적 설명에 따르면 입키스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에서 유래했다. 실제로 많은 동물이 새끼에게 입에서 입으로 먹이를 전달한다. 동물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 이웃집 할머니가 밤을 씹어 갓 젖을 뗀 어린 손자의 입에 넣어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보는 이들은 눈을 찌푸렸지만,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요놈은 내 침을 먹고 자라”라고 말했다. 여기서 키스가 전달하는 것은 ‘생기’라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라 ‘먹이’라는 물질적 실체다.

» 14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토 디본도네의 <유다의 입맞춤>. 무장한 유대인들에게 누가 예수인지 알려주기 위해 유다(가운데)가 예수에게 입을 맞추고 있다(위). 키스는 쾌락의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의 분비를 평소보다 5배 이상으로 늘린다. 영화 <다정한 입맞춤>.

숭배냐 성애냐

타락 이후의 역사시대로 넘어가자.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는 사실 남자와 여자 사이가 아니라 남자와 남자 사이에서 행해졌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유다의 키스’일 것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따르면, 유다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예수를 잡으러 온 유대인들에게 누가 예수인지 알려주려고 예수에게 키스를 한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마 26:49) 그 뒤로 ‘유다의 키스’는 ‘겉으로 친한 척하면서 실제로 해를 끼치는 행위’를 가리키게 됐다. 유다의 키스는 성애의 표현이 아니라 존경과 숭배의 제스처였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유다의 것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알렉산더의 키스’다. 그의 군대가 목숨을 건 장정이었던 게드로시아 사막 횡단에 성공한 뒤, 그 기념으로 캠프에서 무용 경연이 열렸다고 한다. 경연에서 우승을 한 것은 바고아스. 그는 알렉산더가 다리우스 황제에게 빼앗은 에로메노스(eromenos), 즉 동성애 상대였다. 이때 군대는 알렉산더를 향해 바고아스에게 키스를 해주라고 요구했고, 대왕은 이 요구에 따라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바고아스에게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여기서 알렉산더의 키스는 아주 분명하게 성적 뉘앙스를 띤다.

헤브라이즘에서는 키스가 주로 종교적·제례적·친교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반면에 헬레니즘 문명에서는 키스가 분명하게 성애의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실제로 성행위의 일부, 혹은 성행위의 전희(前戱)로서 키스가 행해진 것은 주로 그리스·로마 지역에서였다고 한다. 물론 성행위 중에 입 맞추는 일이 어디야 없었겠냐마는, 이집트와 같은 근동, 일본이나 중국 같은 동아시아에서는 성행위로서 키스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한 가지 정말 궁금한 게 있다. 과연 조선시대에 우리 조상들도 프렌치키스를 했을까?

키스는 신과 동물이라는 이중의 ‘기원’을 가지며, 또한 신성과 성애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키스에 관한 독일의 어느 방송에서 매매춘하는 여성을 인터뷰했다. ‘손님과 키스도 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손님과 키스를 하는 것은 자기들의 의무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자기들이 받는 돈은 신체의 대가이지, 영혼의 대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손님과 키스를 하느냐 마느냐는 여성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단다. 이는 키스가 여전히 성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키스는 영혼을 전달하는 신성한 행위다.

한국의 키스방, 영혼을 판매하는

한국의 ‘방’ 문화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 바로 키스방이다. 도처에 키스방이 범람하는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경제적 약자인 여성들로 하여금 ‘신체’를 팔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체를 팔 수 없다면 팔아야 할 것은 영혼이리라. 오로지 성기의 삽입에만 주목하는 사회에서는 혀의 삽입은 도덕적 부담도 적다. 이 경우 문제는 ‘영혼을 전달한다’는 키스의 부작용(?)을 없애는 것이다. 키스방의 여성이 종종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그 때문일 게다. 마스크는 영혼의 이탈을 막아 키스를 단순한 육체적 접촉으로 유지시켜준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