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해서
난 재림교회에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관료주의적인 교회에
예수께서 서 계실 곳에 어디겠습니까?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개혁파가 다 생겼을까요?
이들 가지고서는 안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생기지 않았을까요?
내가 그들을 옹호하려는 마음은
하나도 없습니다만
대총회의 결의가 하나님의 결정이라 생각하면서도
세계 일차 대전 때 인간적으로 목숨을 걸어야 할 상항에서조차 옆길로 간
그들(대총회) 행동 때문에 고통당한 사람들이 만든 단체이기에
일말의 연민을 느낍니다
견고한 토대
그들 말 일리 있습니다
개혁파 이야기
그것도 일리 있습니다
그들 틀렸나고요?
아니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들 중 어떤 이들 보다 더 보수적일 뿐입니다
저들은 누구 눈치 보고서 목숨 걸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화잇 여사의 글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그룹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안 되냐고요?
아니요 신앙은 자유입니다
그 자유가 남의 자유를 넘보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내 이런 사고방식이 10년 전보다 많이 변했지요?
내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했던 바울의 글을 기억합니다
사유의 자유가 넘치니 모든 것을 관조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형식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 보기 시작한 겁니다
그것은 내 자유를 위해서 남의 자유를 비참하게 짓밟는 짓을 안 한다는 겁니다
나도 예전에는 한 가닥 하는 재림교회 지계석 지기였습니다.
왜 그러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산운동이 한창일 때는 입산을 생각했고
채식운동이 시작할 때는 그것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교단의 결정사항은 항상 옳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산 때도 있었습니다
지나침은 모자람 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내게는 종교의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남의 그릇은 안 보이고 내 그릇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가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오늘 나는 오직 예수로 인한 즐거움을 가집니다
옛날에는 입으로만 즐거운 안식일이었고 고된 안식일이었지만
요즘은 정말로 즐거운 안식일입니다
율법의 진수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웃 사랑이 뭔지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자랑은 패망의 선봉이란 말씀의 뜻도 새겨듣습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숨기는 법도 조금은 배워 갑니다.
자랑이 아니라 교인들 훈육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도 부끄럽습니다.
관료주의적 체질에서 자유인이 되어 갑니다
종교는 고착될 때 힘을 발휘합니다
자기가 가진 힘을 사용할 헛된 생각을 버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재림교회적 체질에서 나만의 종교인이 되어 갑니다
뽕나무 위의 삭개오를 자주 생각합니다
나음을 받은 10명의 문둥이 중의 하나인 사마리아인 문둥이를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버리려고 아우성치면서
살아 움직이는 나를 발견할 적마다 기가찹니다.
내게 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귓가를 맴돕니다
그런데 내 욕심은 기도보다 재판정을 먼저 생각합니다
한 번 저질러 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게 하신 그분께 감사드려요
그러다가 이젠 이건 아닌데 하는 소리만 남습니다만
차츰 나아 질 것이라 자신을 다독거립니다.
체질적으로 관료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려고요
그래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다
다음에 또 쓰겠습니다.
난 재림교회에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관료주의적인 교회에
예수께서 서 계실 곳에 어디겠습니까?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개혁파가 다 생겼을까요?
이들 가지고서는 안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생기지 않았을까요?
내가 그들을 옹호하려는 마음은
하나도 없습니다만
대총회의 결의가 하나님의 결정이라 생각하면서도
세계 일차 대전 때 인간적으로 목숨을 걸어야 할 상항에서조차 옆길로 간
그들(대총회) 행동 때문에 고통당한 사람들이 만든 단체이기에
일말의 연민을 느낍니다
견고한 토대
그들 말 일리 있습니다
개혁파 이야기
그것도 일리 있습니다
그들 틀렸나고요?
아니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들 중 어떤 이들 보다 더 보수적일 뿐입니다
저들은 누구 눈치 보고서 목숨 걸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화잇 여사의 글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그룹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안 되냐고요?
아니요 신앙은 자유입니다
그 자유가 남의 자유를 넘보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내 이런 사고방식이 10년 전보다 많이 변했지요?
내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했던 바울의 글을 기억합니다
사유의 자유가 넘치니 모든 것을 관조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형식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 보기 시작한 겁니다
그것은 내 자유를 위해서 남의 자유를 비참하게 짓밟는 짓을 안 한다는 겁니다
나도 예전에는 한 가닥 하는 재림교회 지계석 지기였습니다.
왜 그러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산운동이 한창일 때는 입산을 생각했고
채식운동이 시작할 때는 그것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교단의 결정사항은 항상 옳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산 때도 있었습니다
지나침은 모자람 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내게는 종교의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남의 그릇은 안 보이고 내 그릇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가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오늘 나는 오직 예수로 인한 즐거움을 가집니다
옛날에는 입으로만 즐거운 안식일이었고 고된 안식일이었지만
요즘은 정말로 즐거운 안식일입니다
율법의 진수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웃 사랑이 뭔지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자랑은 패망의 선봉이란 말씀의 뜻도 새겨듣습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숨기는 법도 조금은 배워 갑니다.
자랑이 아니라 교인들 훈육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도 부끄럽습니다.
관료주의적 체질에서 자유인이 되어 갑니다
종교는 고착될 때 힘을 발휘합니다
자기가 가진 힘을 사용할 헛된 생각을 버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재림교회적 체질에서 나만의 종교인이 되어 갑니다
뽕나무 위의 삭개오를 자주 생각합니다
나음을 받은 10명의 문둥이 중의 하나인 사마리아인 문둥이를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버리려고 아우성치면서
살아 움직이는 나를 발견할 적마다 기가찹니다.
내게 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귓가를 맴돕니다
그런데 내 욕심은 기도보다 재판정을 먼저 생각합니다
한 번 저질러 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게 하신 그분께 감사드려요
그러다가 이젠 이건 아닌데 하는 소리만 남습니다만
차츰 나아 질 것이라 자신을 다독거립니다.
체질적으로 관료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려고요
그래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다
다음에 또 쓰겠습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일전에 제가 올렸던 빛과 매질의 이야기와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빛이 다른 매질을 통과하게 되면 빛은 굴절을 하게 되지요.
우리는 각기 다른 매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매질은 각 개인의 성서해석학이라고 볼 수 있지요.
즉 지구에는 60억 가지의 성서해석학이 있다는 것이지요.
나의 매질과 너의 매질이 다르다는 것만 인정해도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