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교수님께 질문 - 노자의 무와 전도서의 헤벨

by Rilke posted Jul 07, 2011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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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교수님 책을 사려고 서치를 했더니, 벌써 10년전에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 해설서를 책으로 낸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사서 읽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왕필의 노자주를 보고 있는데 책의 서론에 있는것처럼, 왕필의 노자주는 도덕경을 해석했다고 하기 보다는 왕필의 도덕경이라 해도 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설명을 한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요즘 성경의 동양적해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공부를 하는데, 그 중에서 "전도서"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서 전도서가 기원전 9세기에 쓰여졌다고도 하고 5세기에 쓰여 졌다고 하는데 노자의 도덕경도 기원전 6세기라는 설도 있고 그전에 쓰여졌다고 하는데, 저는 묘하게도 전도서와 도덕경은 서로 영향을 (누가 누구에게 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서론은 여기까지고, 제가 교수님께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것은 도덕경에 나오는 "무"의 개념과 전도서에 나오는 "헤벨"의 개념의 차이와 비슷한점에 대해서 알수 있을까 해서 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도덕경의 "무"는 사물의 근본이요 깨우침의 마침이 되어야 할, 마치 불교의 "해탈" 또는 "공"의 개념같은데, 전도서에서의 "헤벨"은 너무 부정적으로 쓰여진것 같아서 둘을 같은 선상에서 해석하려는 저한테 어려움이 있습니다.

 

혹시 이 둘의 개념을 같은 긍정적인 면 (우리가 도달해야할 "도")으로 해석할수는 없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도덕경의 "무위"의 개념도 교수님께서 이해하시는 바로 알수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신영복교수의 "강의"의 "노자"편에 자세히 나와 있기는 하지만, 아는것과 깨달음의 괴리에서 아직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교수님께서 소개한 틸리히의 책에 나와있는 "믿음은 그것을 아는것 (rationalizing)것이 아니라 살아가는것 (living)"이라는 말과 같겠지만 체험의 폭을 넒히려는 젊은이의 고민이라 여기시고 도움을 주실수 없는지요.

 

교수님을 이곳에서 알고 만날수 있는것은 저에게 커다란 축복이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감사합니다.

 

ps; 김주영 선생님,

혹시 이문제에 (특히 전도서의 헤벨) 도움을 주실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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