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보는 <심층과 표층>

by 심리학 posted Jul 15, 2011 Likes 0 Replies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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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자가 보는 <표층과 심층>에 대한 시선입니다.

 

우선 표층과 심층에서 마주치는 뉘앙스는 가히 지적이고 언어 미학적입니다. 마치 무지한 민중을 계몽하여 심미의 세계로 이끌 듯이 보이는, 도전적이면서도 인텔리한 어구입니다. 그 표층과 심층이란 계몽의 깃발이 심정적 약자들이 모여드는 종교적 판도에서 흔들려질 때에, 그 반응과 여파는 꽤나 위력적이 될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입니다. 착상이 돋보이는 이런 대비적 조합은 종교계뿐 아니라 생존세계의 어떤 계층의 사회이든지 파고들어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자극적이고 또한 상당히 교육적인 표현입니다.

 

논제는 훌륭했습니다. 페이지는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넘어가며 그야말로 심층의 실체를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그러나 기대감으로 들여다 본 심층이라는 심오한 상자 속은 실체없는, 텅빈 이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현자들을 다 불러 모아보지만 거기에는 신앙의 정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각의 표피를 맴도는 철학은 있었지만 의식의 뿌리, 영혼에 다가오는 생래적인 신앙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식의 망에 포착되는, 생각에 자극을 주는 사람의 철학은 있었지만 영혼을 건드리는 손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앎의 자극은 있었지만 생명의 문은 굳게 닫힌, 형상만 있고 숨결이 없는 죽은 사상이었습니다. 잠깐의 갈증을 채워주는 청량음료는 될지언정 사람의 타는 갈증을 채워주는 샘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세속학계에서는 심층이 될지 모르지만 생명을 다루는 신앙세계에서는 말과 지식의 진열인, 표층에 불과한 것입니다.

 

표층은 이론에 치우친 유형을, 심층은 체험을 다루는 도식이어야 함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문화재급 보호를 받는 듯이 보이는 논자의 모든 담론은 현란한 수사적 이론에 머물고 있습니다. 진정한 기독인이 대하고 다루어야 할 신앙의 심층이란 창조적 세계관, 인간의 생래적 평안, 순전한 기쁨, 세파를 이기는 평상심의 유지, 하늘과의 교통에서 오는 원초적 기쁨, 스쳐가는 세계에 대한 통찰, 다음 세계에 대한 소망, 유대의 역사에서 얻는 교훈, 대자연의 신비,상황을 불문한 도움의 손길, 죄된 습속의 대한 이해와 그의 해결방법, 구주의 고통과 희생, 에덴에서 새 예루살렘까지를 보는 안목, 근거리 영적 존재들의 포착과 같은, 천혜적인 심층적 신앙논제들입니다.

 

심층의 세계로 인도하는, 지축을 흔들 듯 한 대단한 명제이지만 한 이론가의 한갓 이론뿐인 담론이었습니다. ‘언어화된 체험이 아니고 체험 없는 탁상이론이었습니다. 표층으로는 나름의 학문적 신념이 내포된, 윤기나는 잘 정돈된 백화점식 진열이었지만 신앙의 생기와 사람을 살리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바른 신앙 담론은 체험=>해석=>언어화로 순차 진행되어야 합니다. 체험 없는, 이론뿐인 신앙을 표층신앙의 부메랑으로 되돌려 드리는 것이 딱, 타당합니다.

 

모세의 체험은 구약의 모세오경으로 예수의 체험은 사복음서로 바울은 바울서로 요한의 기이한 체험은 계시록으로 필사, 언어화되어 죽은 세계를 비추는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풍부한 이론만을 추구하는 학자들의 시선은 새로운 생명을 제공하는 그 보물적 가치를 발굴치 못한 체 그야말로 심층을 겉도는 개관에 머물러있지만, 목마른 야생의 시선들은 필사의 노력으로 그 고릿적, 진부한 책에서 기어이 인생의 모든 것을 얻어내고 맙니다. 그리고 겉은 후패하지만 속은 풍성한 영혼의 세계를 소유한 승리자가 됩니다.

 

신자의 신앙은 심화되어야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론의 반복으로 신념을 강화시키는 표층적 구축이 아니라 영혼을 객체로 한 깊고 깊은 심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새생명으로 이끄는 그러한 심층작업은 산 세계와 접촉하는데서 그 동력이 기인됩니다. 그 접촉은 겉멋에 치중하는 이론가들은 얻을 수 없는 것들이며 죄의 수렁에 갇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겸손히 통회하고 구원을 갈망하는 가난한 심령만이 체험할 수 있는 감추어진 손길입니다.

 

엄선되어 정리된 신학이론은 체험의 신앙세계로 도입되어 학습의 자양분으로 지원이 될 때에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대를 넘어오며 계승되고 구축된 고전적 교리라 할지라도 참된 개인의 신앙경험과 함께 수반되지 않으면 유약한 말쟁이 신앙인을 만들 뿐입니다. 동서양, 고금의 온갖 사상을 섭렵한 현란한 이론가일지라도 이렇다 할 체험이 없다면 무명의 야생을 퇴치할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표층과 심층> 참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에 걸 맞는 뒷심으로 그 테마를 받쳐주지 못하면 그야말로 유약한 땡가리 선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

도심에 걸린 도발적 간판이 상황에 딱 맞게 다가옵니다. 맛보지 않은 자, 함부로 선생되기를 애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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