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all, there's always a dream beyond dream, yea, even God beyond God."
"결국, 꿈 너머 항상 또 하나의 꿈이 있고
아, 심지어는 신 너머에도 또 하나의 신이 있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빈배,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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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배님 쓰심:
저 아래 김원일 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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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일
안식교 각본대로
일요일 휴업령이라는 것이 내리고
그 후 속히 예수가 재림한다면
나는 그에게 따질 것이다.
(중략)
당신이 피 흘려 구원했다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을
그렇게 싱거운 쟁점에 목을 매고
그렇게 싱겁게 끝낼 만큼
당신은 그토록 유치한 신이었나.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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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런 글에 반농 반진이라는 답이 몇 개 올라왔다.
나도 여기서 그의 글에 반농 반진의 글을 하나 달고 싶다.
그 글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좀 더 정확히,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김원일 님이 팔을 걷어 붙이고 따지겠다고 하는 그런 신은 없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을
그렇게 싱거운 쟁점에 목을 매고
그렇게 싱겁게 끝낼만큼
그토록 유치한 신"은 처음부터 실재하는 신이 아니다.
오로지 우리 인간들의 제한된 머리에서 "만들어진 신"일 뿐이다.
절대적인 신은 우리의 상상이나 지성을 초월한다.
이것이 바로 신의 신비적 특성이다.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는 신이란 모두 우리의 지성의 한계내에 갇혀있는
가짜 신일 뿐이다.
있지도 않은 그런 유치한 신을 상대로 따질 일이 없다.
따질 일이 있으면 이런 있지도 않은 신에게 따지겠다고 하는 김원일님에게나 따질 일이다.
(반농 반진이라고 했지만, 신 문제에 관한 한 진에 더 가까울 것이라 믿습니다.)
따지니 금방 효과가 나네요.^^
이렇게 명쾌한 답변이 나오니....
(물론 신께 따진다는 것이 pedagogical metaphor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 우리의 제한된 머리로 마구잡이로 만들어낸 신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신에 대한 상을 씻어내고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네요.
아버지 같은 신, 재판장 같은 신, 편애하는 신, 우리의 이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신,
우리만 구원해주는 신, 등등...
(우리만 구원해준다는 말이 나오니 생각나는데, 보통 공장에서도 불량품의 비율이
5 퍼센트 정도면 큰일이라 생각하는데, 어찌 하느님은 자기가 만든 인간 99.9999%를
불량품으로 파기처분하시려는지, 이런 하느님께는 정말 따져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