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친 딸과 4년째 말을 한마디도 해본 적이 없다.

by 최종오 posted Aug 10, 2011 Likes 0 Replies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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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딸이 세상에 나왔을 때 정말 실망했다.

내가 기대한 만큼 안 예쁘게 태어나서다.

아들 승리가 엄청 예뻤기 때문에 딸이면 훨씬 더 예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딸은 기르는 재미라 했던가!

딸에게서 흐르는 어떤 형용할 수 없는 마력에 나는 홀려버렸다.

그 결과 나는 어디를 다닐 때도 딸을 항상 내 옆자리에 태우고 다녔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수민이 오빠 승리는 수민이에게 꽉 잡혀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십 수 년을 지내던 4년 전 어느 날, 난 평생을 두고 후회할 짓을 하고 말았다.

꾸물거리다 버스를 놓친 수민이를 학교까지 태워다주는 길에서 수민이에게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하며 혼을 낸 것이다.

혼내는 엄마에게 반항하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낯선 외국생활에 적응을 못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그랬을 것인데.

그때 수민이는 너무 큰 상처를 받았고 그렇게 한 나는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단 한 번의 그 일 때문에 난 수민이와 말을 하지 않았다.

4년 동안...

수민이 얼굴도 직접 본적이 없다.

뒷모습은 많이 봤다.

자는 얼굴도 많이 봤다.

 

3년 전, 비가 내리는 어느 날에 한인마켓을 수민이와 둘이 간적이 있었다.

차를 타려고 주차장으로 비 맞으며 가는데 뒤에서 수민이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아빠, 우산 같이 쓰고 가.”

난 놀랬지만 안 놀란척하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차를 향해 걸었다.

그 아이도 나만큼 내성적인 성격이라 절대 먼저 말 걸 아이가 아닌데...

 

마켓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데 차 안에 있던 수민이가 또 말을 걸었다.

“아빠, 이 우산 가져가.”

난 또 모르는 척 하면서 비를 맞으며 마켓 쪽으로 갔다.

 

숨넘어가게 예뻐하던 수민이를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사춘기를 보내는 딸인데... 장장 4년 동안을...

그러던 어느 날 수민이의 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닿을 기회가 있었다.

 

2009년 여름방학 중에 나성으로 온 가족이 여행을 갔었다.

그때 수민이는 그 여행을 위해 거금을 들여 뒷머리를 노랗게 물들였었다.

그런데 여행 중에 큰 사고가 벌어졌다.

아침에 수민이가 롤브러쉬(원통형 빗)로 빗질을 하고 있었는데 물들인 수민이 뒷머리가 통째로 빗에 엉키어버린 것이다.

풀어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던 승리엄마는 너무 속상해서 화를 막 냈다.

수민이도 울상이었다.

 

방법은 단 한 가지, 엉킨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길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의 모근까지 말려들어간 머리카락을 잘라낸다면 그 아이의 불행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거다.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길게 기른 머린데 거기다가 뒷부분에 노랗게 부분염색도 했고...

 

그 예쁜 머리를 그냥 자르게 둘 수 없었다.

나는 나와 수민이 사이에 승리엄마를 세워놓고 엉킨 머리를 풀었다.

내가 수민이에게 할 말이 있으면 승리엄마에게 했다.

그러면 승리엄마가 그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꼭 조선시대에 사는 양반-머슴-양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손톱깎이로 수백 개 되는 빗살의 밑둥치를 다 잘라냈다.

빗살에 뭉친 머리를 한 가락이라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정말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의 머리를 하나하나 세신다는(마 10:30, 31 참조) 하나님의 심정이 절절이 이해가 됐다.

 

빗살을 자르는 두어 시간동안 나는 수민이의 머리를 만질 수 있었다.

가끔가다 목하고 뺨에도 내 손등이 닿았다.

천금 같은 머리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열이 올라있어 그런가 수민이의 체온이 뜨겁게 느껴졌다.

 

빗살이 다 잘려진 앙상한 빗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난 승리엄마 귀에다 대고 물었다.

“쟤가 내 마음이 어떤지 알까?”

 

승리엄마가 수민이에게 묻는다.

“너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지?”

“아니, 아빠가 딸에게 그러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수민이는 짐짓 퉁명스러운척하면서 대답한다.

 

그 이후로 또 우리는 말없이 2011년 8월 10일까지 지내고 있다.

눈도 안 마주치면서...

 

승리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승리아빠, 이제 그만 수민이랑 말 좀 해요.  애는 그렇게 자기랑 말하려고 하는데 아빠가 돼서 왜 그래, 도대체...”

나는 쓸쓸히 돌아선다.

 

우리는 보기 드물게 행복하게 사는 가정이라 수민이랑 나랑 말하지 않는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냥 나를 과묵한 아빠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난 요즘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이제 수민이가 대학생이 되었는데 시집도 곧 가겠지?”하는 생각 때문에 그런다.

그땐 결혼식장에 수민이 손을 잡고 들어가야 하는데 어떡하나?

연필 한 자루를 준비해서 양쪽 끝을 잡고 들어갈까?

그거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내 못생긴 짝꿍 손잡기 싫을 때 쓰던 방법인데...

 

얼마 전, 수민이가 꿈에서 내가 죽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때 꿈속에서 너무 많이 울었다고 한다.

아빠 장례식에 사람들이 하나도 안와서 더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아빠가 사람들 인심을 얼마나 잃었으면 죽었는데도 사람들이 하나도 안 왔을까 하면서...

 

어느 날인가 친한 이웃집 아주머니가 사진 두 장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장에 예쁘장하게 생긴 처녀가 있었다.

 

난 그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 처녀는 누구에요?”

“아이고~~ 목사님, 누구긴 누구에요 수민이지... 어떻게 자기 딸도 못 알아봐요? 세상에나, 정말...”

딸과 눈을 못 마주친 지 4년이나 되었으니 딸이 처녀얼굴로 변한 것을 알 턱이 없지.

 

수민이는 가족끼리 외출하면 항상 앞에서 걸어 다닌다.

내가 자기의 뒷모습은 보는지 알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도 나를 내가 수민이 생각하듯이 생각하는 거 아니실까?

하긴 나를 이 땅에서 이 고생을 시키셨으니 미안하실 수도 있겠지.

당신이 더 후회하실 거면서 괜히 저주를 퍼부으셔 가지고는...

 

그래도 난 하나님을 용서할 마음이 있는데...

어쩌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용서 못하셨는지도 모르지.

나처럼...

 

오늘도 승리엄마와 전화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수민이 목소리가 들린다.

수민이 : “엄마,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아빠는 정말 비호감이야!”

승리엄마 : “승리아빠, 들었어, 수민이 말?”

나 : “......”

 

하나님 :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삿 10:13, 14

 

백성들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 내옵소서 하고” 삿 10:15

 

하나님의 속마음 :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삿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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