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랑님 ① 세상 일반 음악 문외한이라도 가곡과 유행가는 구별합니다. ② 증언이 금지한 노래 ( 1 ) .

by ㅈㅈㄱ posted Nov 24, 2010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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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성가는 고상하지 못하고 천하다는 것 

 

음악사랑님, 세상의 일반인 곧 음악 문외한이라도 가곡과 유행가는 구별합니다    

그것은 가곡은 비교적 음이 고상하고 유행가는 사람으로 흥이 나게 하는 것인데

 

찬미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재래 찬미가는 곡이 고상하고 음이 맑고 깨끗, 단순합니다

그러나 복음성가는 음이 혼탁하고 흥이 나는 것이니까

 

말하자면 복음성가는 교회 안의 성 유행가곡이요, 

재래 찬미가는 교회 안의 가곡과도 비슷하다 하겠지만

 

그러나 찬미가는 가곡과도 다른 점은 가곡은 유행가 같은 대중성이 없다는 것이나

찬미가는 누구나 따라 부르기 좋다는 대중성이 있는 것이 가곡과도 다른 것입니다  

 

복음성가는 말하자면 팦송이나 샹송 기타 서양 유행가 스타일이라서 노래 분위기가

찬미가와 달리 흥이 납니다. 

 

미국 교회에 갔더니 일어나서 복음성가를 부르는 데 앞에 섰던 청년이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흔들 하더군요

그것은 흥이나기 때문인데 그런데 증언은 흥이 나는 노래는 부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  부모 교사 학생 권면 339 ) ----------------------------------------------------

“ 한 사람이 악기 앞에 앉아 있는데 지켜보는 천사들을 통곡시킬 그 같은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거기에는 환락이 있었고 비열한 웃음이 있었고 많은 열광이 있었으며 일종의 ()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이란 사단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러한 기쁨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수치로 여길 열성이요 심취함이었다. 

이러한 것은 여기에 참석한 자들로 거룩하지 못한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준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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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성가는 경박하여, 쾌락적이고, 엄숙한 감화를 주는 위엄이 없습니다

그러나 찬미가는 엄숙한 감화를 주는 것이라야 한다 하였습니다( 아래 인용한 예언의신 참고 )

 

우리 혀가 맛을 분별함 같이 경건한 노래와 복음성가의 차이점을 분별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공해식품을 많이 먹으면 천연식을 싫어하듯이,

우리 귀도 점점 그런 음악에 맛을 들이면, 분별력이 없어지다가 나중에는 락뮤직으로 빠집니다.

 

복음성가는 거룩한 생각, 정숙하고 조용한 기쁨을 일으키기보다 쾌락적이고 사람의 흥을 돋구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말씀은 동시에 말세에 흥()이 나는 노래, 열광이 나는 노래가 교회 안에 들어와 예배 망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위 인용문은 이처럼 흥과 열광이 나는 노래를 가리켜

 

* 천사들이 듣고 통곡(痛哭)하는 노래, * 수준이 비열(卑劣)한 노래, *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룩하지 못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노래,

*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는 수치(羞恥)로 여길 그러한 노래, * 사단이( 사단만이 ) 만들어 내는 노래

 라고 하였다. 고로 흥이 나는 노래인 복음 성가는 사단의 노래이니 예배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이런 흥이 나는 노래가 생기는 것은 말세의 사람들은

 

[ 딤후3:4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기 때문에 말세의 징조가 이루어지느라고  요새 그런 쾌락적인 복음성가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다음 예언의신에서 하나님 사랑보다 쾌락 사랑하는 노래를 언급한 것을 봅시다.

 

[ 원고 82, 1900 ]------------------------------------------

"주님의 일꾼들이 세속적인 여흥(餘興)에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음악 분야에서 세상과 연합하는 것을 어떤 안식일 준수 ( Seventh DAY Adventist )들은 해롭지 않게 본다....

그런 자들은 위험한 자리에 서있........많은 교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 쾌락 >(快樂)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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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재림교인들이 음악 문제에 있어서 쾌락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는데,

우리가 가진 찬미가는 두가지 뿐이니, 쾌락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재래식 찬미가는 아니고 말세에 새로 들어온 복음성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 찬미가가 두 가지 뿐이므로 그것이 복음성가이지 찬미가겠습니까?)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 하셨는데, 그 쾌락적인 노래인 복음 성가를 부르면

교회 예배 분위기가 벌써 겅견한데서부터, 여흥적으로 싹 바뀌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으니,

것이 요새 교회에서 청소년들이 자꾸 줄고 머리 허연 재래 신앙을 하던 노인만 남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박한 음악은 진지하고 경건하게 성경을 연구할 흥미를 잃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 연구를 따분하게 여기게 되고,

진지한 재래식 정숙한 예배를 고리타분하게 여기게 만들어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청소년들 비위를 맞추어 그런 음악으로 교회에 붙잡아 두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할려면야 더욱 타락한 것을 차려놓으면 되겠지만

그러나 일시적으로 사람을 끌어도 그들이 교회에 남아 있습니까?

 

그것은 그곳이 타락한 장소도 아니요, 교회이면서도 교회 답지 않으므로 죽도 밥도 아니니

실패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철저히 교회다워야 합니다.

 

어느 우리 교회는 가보니 장년 예배도 춤추고 소리 지르고 북 치고 전자 키타 두들리고 그러던데,

아무리 축제 예배라도 그런 것은 처음 보았는데, 몇 개월 후 그 교회에 다시 가보니

300명 되던 교인이 다 어디 가고 한 20여명이 남아 역시 전자 키타 두들기면서 예배라고 보더군요.

 

고로 그렇게 해서는 교회가 망합니다. 

어느 감리교 목사 교회들 통계에 의하면 결국은 보수적으로 하는 교회가 지속적으로 교인이 증가하였습니다.

( 영락교회, 충현교회, 소망 교회 )

청소년들도 보수적으로 어려서부터 어른들 하고 같이 예배 드리는 습관을 드려야 교회에 남습니다.

 

신앙 없는 유년 교사에게 맡겨 성경과는거리가 먼 동화 이야기나 해주는 것을 예배랍시고,

어른과 따로 드리고 커서는 청년 예배(?) 라는데 같이 가서 북치고 전자 키타나 두들리고,

 

설교는 신신학적인 소리나 하고 그러니 아이들이 무슨 신앙을 갖겠으며

장년들처럼 엄숙한 예배란 무언지 도무지 알지 못하니, 크면서 거부감을 느끼고 다 떠나 갈 수 밖에요.

 

지금 미주 한국 교회에서 어른들과 따로 예배를 드리는데, 이것은 아주 비정상입니다

구약 시대나 초대 교회, 말세의 교회들까지도, 다 언제나 남녀노소 다 같이 드리는 것이 예배였습니다. 

 

지금도 미국 교회, 한국 교회,유대인 교회,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보아도 어른과 아이들이 다 같이 드리지요.

유독 미국의 한국인 교회만 1980년대 후반부터인가 언어 소통을 문제 삼아

 

따로 드리다 보니 그들의 집회는 예배가 아니라 완전한 < 무당-巫堂- 굿 >입니다.

복음성가를 부르다 보면 결국 지금처럼 북치고 장구치고 춤추고 소리 지르고 그런 방향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 현상이 은혜 기간 끝나기 전에 있을 일이니, 그런 일이 있는 지금이 바로 은혜 기간 끝이 임박한 때입니다.

 

[ 2 SM 36 ]----------------------------------------------------------

“ ..........같은 일들이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 직전에 있을 것에 대비(對備)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셨다온갖 기괴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큰 소리로 외치며 드럼( Drum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리며 춤추는 광경이 재현될 것이다.

이지적인 인간의 감각은 혼란을 일으켜 올바른 결정들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성령의 역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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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교인들을 혼동시킬 거짓 “성령의 역사”가 혼잡한 예배를 통해 나타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화잇은 이런 일들이 " 있을 것에 대비하여 ” 라고 하였습니다.

곧 그 혼잡스런 예배를 대비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셨다.” 라 하셨으니,

이처럼 미리 경고하신 걸 무시하고 그에 휩쓸려 들어가서야 되겠습니까?

 

인디아나 주에서 있었던 굉음악은 우리 정통 교회가 아닌 이단 분파인 "거룩한 육체파"가 처음 시작한 것인데,

온갖 요란한 시끄러운 악기가 다 동원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말세에 다시 나타난다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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