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체험 없습니다.(student님)

by 제자 posted Aug 22, 2011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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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특별 체험 없습니다. 아직 누구나 경험하는 일반적인 기도의 경험만이 있을 뿐입니다. 님의 경험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앙 색체를 바꾸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곳을 찾은 동기도 그런 연유였습니다. 아직은 소망할 뿐이고 그저 보지 않고 믿을 뿐입니다. 교통하기 이전에 선행적으로 해야 할 순차적 진행이 있을 것입니다.

 

실제적 접촉과 교통이기 보다는 우선 인정을 받는다는 확신이 우선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희생과 사랑이 실제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깨달음의 제일보는 예수의 살아있음을 크게 실감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예수를 보는 시선으로 모든 생활 패턴이 자리 잡혀가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사의 길로 들어섰다는 자각만으로도 생애를 지배하는 큰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늘 생애의 곤핍함을 많이 느끼고 늘 우울함을 느꼈지만 이제는 나는 새보다야 못하지만 상당히 생애가 가뿐하여졌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늘과 접붙임이 되어있는 한 저의 상태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며 다음 세계에서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지금 이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늘 실천하려 합니다.

 

지금 제일 아쉽게 생각 드는 것은 왜 믿는 자들의 사회에서 그야말로 예수의 이름이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제법 많이 들리는 곳은 형식과 타성의 기계가 돌아가는 곳이고 진지한 공간은 예수를 빠뜨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패찰만 달은 인본주의에 길들여진 신자사회에선 정말 느끼하고  밥맛 없게 여겨지는 주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실존을 체감하는 자들은 매일 들어도 달콤한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시간과 세월에 대한 관념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창세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고 예수님의 지상생애 시기 또한 유구한 세월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아울러 미래의 소망도 점점 실제화 되어가며 공간과 시간의 초월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저 뵈는 하늘 집” 찬미처럼 저기 저곳으로 가깝게 다가선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단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또한 느낍니다. 아직도 생애 속의 많은 문제를 스스로 짊어지는 본능 때문에 마음에 어두움을 불러들이는 경우를 보곤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을 기어이 배워 나는 새와 같이 생애의 평화와 기상을 맛보려 하는 것이 당면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passer-by님과 student님만 대하면 글에 영감이 생기고 거침없는 글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두 분의 경우가 동일한 동기가 되지 않겠지요. 제가 왜 이런 환장한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문득 있지만 중심 깊은 곳에는 협착한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늘 저를 지지해 주고 있는 것이 비쳐지곤 합니다. 떠난다는 사람이 또 글을 남기게 되네요. 고마워요 student님1  저를 다소라도 이해해 주어서! 정말 닉네임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좀 유아스럽네요. '폴리갑' 같은 거 어떠세요? 요한의 제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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