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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6 18:13

증거를 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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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6 / 주현절 열 번째 주일

증거를 달라고?

요한 20:24-29

곽건용 목사

눈으로 봐도 못 믿는 세상에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훼 하나님께 드린 제사 중에 ‘번제’라는 제사가 있습니다. 번제는 ‘구울 번()’ 자에 ‘제사 제()’자를 쓰니 ‘구워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곧 동물 제물을 태워서 바치는 제사가 번제입니다.

왜 이런 방식으로 제사를 드렸을까를 생각해보셨습니까? 왜 하필 짐승의 기름과 고기를 태워서 제사를 드렸을까요? 학자들은 짐승을 기름과 고기를 태웠을 때 생기는 연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짐승의 기름과 고기를 태우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 모양을 보고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자기들이 드린 제사를 받으신다고 믿었다는 얘기입니다. 제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가 있었으면 했다는 얘기입니다.

눈으로 확인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요즘이 그 옛날보다 훨씬 더 합니다. 요즘은 뭐든지 눈으로 봐야 믿는 세상입니다. 아니, 눈으로 봐도 믿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도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무엇이 됐든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이 뭘 믿는다는 일은 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은 대체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증거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20장의 도마 이야기가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필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 중요한 순간에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를 봤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때 도마가 한 말은 정확하게 현대인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그냥 봐야 믿겠다는 말도 아닙니다. 기어코 자기 손가락은 못 자국에 넣어보고 손을 옆구리에 넣어봐야 믿겠다는 얘기입니다. 이 말 때문에 도마는 ‘의심 많은 도마’(doubting Thomas)라는 유쾌하지 않은 별명을 얻었지만 여러분 같으면 안 그랬겠습니까? 부활과 같은 믿기 어려운 일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직접 확인해보지도 않고 믿을 수 있겠나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도마에게도 자신을 보이셨고 도마가 말했던 그대로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도마는 예수님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보지 않았습니다. 막상 만져볼 수 있게 되었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글쎄요,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실제 세상에는 그와 반대로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현실입니다.

회개의 증거

앞에서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은 대체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증거도 없다고 얘기했는데 오늘 그 중에서 세 가지만 말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회개’입니다. 회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주 예배 서두에 한 주간 세상에서 살면서 지은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순서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교인들도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합니다.

그런데 이 회개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회개하는 것인지, 정말 회개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회개하면 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등을 보여줄 객관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경우에 회개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제가 남이 하는 회개에 대해서만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이 하는 회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한다고는 하지만 내가 하는 회개가 정말 제대로 된 회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회개할 때 흘리는 눈물의 양이 그것의 진정성을 확인해주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문제를 중시했습니다. 그는 요단 강가에서 죄 사함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죄 사함이란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회개해야 죄를 사함 받는 것이 성서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요한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선포했습니다. 요한이라고 해서 사람이 입에 발린 회개를 할 수 있다고 왜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전 인격과 전 존재가 실려 있지 않고 단지 입술만으로도 얼마든지 회개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음을 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회개에는 삶의 무게가 실려야 합니다, 회개에 영혼의 무게가 얹혀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이라고 단언했습니다(누가 3:8). 그는 자기에게 세례를 받겠다고 나온 사람들에게 “오냐, 잘 왔다, 그래야지, 그래야 마땅하고말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지. 암 그래야 하고말고.”라며 기특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들을 보고 “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다가온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고 호통 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속옷 두 벌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세리는 정한 대로만 세금을 거두고 군인은 남을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을 착취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회개를 일순간에 일어나는 점()의 사건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회개는 선()의 사건이고 긴 과정이었습니다. 회개는 매일의 행실로 벽돌을 하나하나 쌓듯이 쌓아가야 할 일상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용서의 증거

두 번째는 ‘용서’입니다. 궁극적으로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셨는지 아닌지를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관적으로 용서를 받았다는, 또는 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말 그대로 주관적일 뿐이므로 객관적인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회개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사람의 마음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회개를 할 때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내가 회개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객관적인 증거일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죄의 용서는 회개하는 내 기분이나 느낌과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내가 아무리 간절하게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바란다 할지라도 그 간절함이 하나님의 용서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용서는 나의 간절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셨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이 문제를 중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여러 번 읽어보셨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내가 하나님께 잘못을 저질렀고 죄를 지었습니다. 이 죄는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죄를 용서받으려면 남이 내게 저지른 잘못과 죄를 용서해줘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하나님께 저지른 죄는 남이 내게 저지른 죄와 동일한 죄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저지르는 죄를 뭉뚱그려서 그냥 ‘죄’라고 말씀했지만 죄가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죄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남이 내게 지은 죄를 용서해주는 일과 내가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해주는 일을 하나로 연결시키셨습니다. 저는 이를 죄가 갖고 있는 공동체적 성격으로 읽습니다. 죄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나와 남이 서로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려면 보이는 남과의 관계를 바로 세워야 하고 이는 남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주는 데서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증거

마지막으로 ‘부활’입니다. 부활이야말로 객관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고 따라서 세상에 내놓을 수도 없습니다. 회개나 용서는 사람과 하나님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이를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관련시켰습니다. 이에 반해서 부활은 역사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복음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고 말하고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졌다고 전합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한꺼번에 5백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났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부활의 객관적인 증거가 됩니까? 복음서의 증언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증언들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부활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에 근거해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믿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나이 많은 노인 한 분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는 남의 심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가 입원한 까닭은 너무 건강이 나빠져서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입원해서 이식할 심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쁘고 착한 딸이 한 명 있습니다. 그녀는 직장도 쉬고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병원도 사람이 있는 곳인지라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이도 많은 노인이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이식할 심장을 기다리느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딸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를 내며 언쟁을 벌입니다. 당신 같으면 살고 싶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그녀는 참으로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그런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실려 왔는데 운전면허증을 보니 사고를 당하면 모든 장기를 기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아버지에게 딸의 심장을 받으라고 권했지만 아버지는 절대 딸의 심장을 받지는 않겠다고 버팁니다. 자기가 어떻게 딸의 심장을 가슴에 담고 살겠냐고,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때마다 딸 생각이 나서 어떻게 살겠냐고 말입니다. 결국 의사들은 그를 설득하기를 포기합니다. 그런데 한 젊은 인턴이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바로 얼마 전에 같은 병원에서 아버지를 잃은 사람입니다. 별것 아닌 병으로 입원한 아버지가 그만 더 중한 병이 발견됐고 의사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그때 그는 할 수만 있으면 아버지에게 자기 심장을 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자기를 비롯해서 형제들을 기르느라 고생하다가 병이 생긴 아버지를 살릴 수만 있다면 자기 심장이라도 꺼내주고 싶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아마 노인의 딸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이 말을 듣고 노인은 수술을 받기로 결심합니다.

저는 예수의 부활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수 부활의 객관적인 증거? 그런 것은 없습니다. 예수 부활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사기꾼’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부활은 증거는 있습니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만일 여러분의 가슴 속에서 예수의 심장이 뛰고 있다면, 여러분의 가슴 속에서 힘차게 박동하는 예수의 심장으로부터 여러분이 피를 공급받고 에너지를 공급받으며 예수의 제자로서 산다면 그것보다 더 훌륭한 부활의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가슴 속에서 쿵쾅거리며 뛰는 예수의 심장이 바로 예수 부활의 증거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당신 가슴의 심장을 우리들의 가슴에 이식해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 부활의 증거라고 믿습니다. 제가 예수를 믿고 나서 의심해본 것이 참으로 많지만 예수 부활은 단 한 순간도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내 가슴 속에 지금도 예수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증거로 믿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럴듯한 백 개의 유신론이 없는 하나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럴듯한 백 개의 무신론이 있는 하나님을 없애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활은 이론이나 논리가 아니라 부활을 사는 사람에 의해서, 예수의 심장을 가슴에 담고 그분께서 주시는 에너지로써 매일의 삶을 뜨겁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증언됩니다. 우리 모두는 그 증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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