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않기
“내가 확신하노니”
이 글은 바울이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롬8:39)
속된 음식물이 없다는 확신(롬14:14)
성령의 역사에 대한 확신(빌1:6) 등등
자기 견해의 확신
자기 신앙의 확신
그런데 그것 좋게 사용할 때는 매우 합리적이지만
남을 향해 칼을 뽑을 때는 살인의 도구가 된다는 것쯤은
기독교 2000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간혹 회자되는 보수적인 이야기들
그것들이 가지는 힘이 현실적으로 강할지 모르지만
미래까지는 담보하지 못합니다
즉 교회가 가진 어떤 힘에 의해서
또는 개인의 성경 연구의 확신이 남의 신앙을 어지럽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성경연구에 대한 확신들이
남의 신앙에 미치는 일은 비일비재 합니다
문제는 내 개인적인 것이 다른 이의 신앙에 대하여 왈가왈부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확신범이란 글자그대로
“도덕적·종교적·정치적 확신이 결정적 동기가 되어 행해지는 범죄”입니다
분단 극복을 위해서 법을 어기고 북으로 간 진보도 확신범입니다
그래서 확신범을 처벌하는 것은 무리라고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확신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교단이 가르친 것들 즉 교의적인 것이나 교리적인 것이나를 막론하고
그것으로 어떤 규율을 강요하는 것은 종교 자유 원칙에 위배됩니다
우리는 한 동안 종교자유라는 대 전제아래
집총 거부운동을 벌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총한 청년은 그 길로 교회와 등졌습니다
내가 아는 선배는 집총문제로 결국은 교회까지 버렸습니다
그게 종교자유를 강요한 것인지 아니면 빌미로 제공한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만
결국을 이야기 하자면 교의적인 것이 종교를 이용한 것이라 봅니다
세상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교회는 확실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확실한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도 확실한 것을 아는지 모릅니다
불확실한 것을 붙들고 그것이 확실하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한 번씩 여러분들의 글에 딴지를 거는 것은
또는 여러분들이 내게 딴지를 거는 것은
서로가 지향하는 길은 같은데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헤겔의 정반합을 이루는 날이 언제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만든 진리라는 오류(?)를 과감히 벗는 날에야 합일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이가 이러더군요
재림이라는 대 전제를 내 시대적 성취로 볼 때
재림교인 모두가 그 길을 서슴없이 가야하는데
그 길을 안내하는 지도자는 그런 내색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은 거짓입니다
이 시대가 다 가기 전에 이루어진다면 어떤 좋은 것도 버려야 하는데
자식 농사는 미래를 위해서 짓고 교인들에게는 피눈물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자식들 “사”자 돌림 직업을 위해서 인생을 버리면서
단상에서는 확실성을 논한다는 자체가 이율배반 아닌가요?
그래서 나는 우리 중의 어떤 이들의 그 개인적인 확실성을
공동의 “참“도 아니라 보는 겁니다
이 공동체가 재림이라는 화두로 모든 것을 희생했다면
인생사 그것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런 십자가는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말론에 확신을 가진 것이라면 그런 사람들답게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입으로만 이야기 하고 돌아서서 단을 내려오면 현실 앞에 안주한다면
그건 절대로 확실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재림교회는 불확실성을 가면으로 덮고
불쌍한 자들만 양산하고 있지 않는지 가끔씩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중세기 시절 지도자의 말 한 마디에 생사를 걸 때처럼
지금도 그런 종류의 미사여구만 남발하고 있지 않는지
정말 돌아 봐야 합니다
나는 우리 예전 교인들이 임박한 재림을 준비한다고 산속으로 들어 간 것에 대하여
그 때 무식했던 지도자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 경멸하고 있습니다
신문과 라디오에 귀 기울이고 거기서 어떤 이상한 모르스부호나 발견한 것처럼
화들짝 놀라면서 백성들 이끌던 그분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일부는 아직까지도 그 버릇 개 못 줘서 떠들고 다니지 않습니까?
요즘 여러 계시록서적을 뒤적입니다
재림교회가 발간하고 재림교회의 대학교수들이 발간한 것들입니다
왜 첫 장을 펼치자마자 새로운 해석들이 난무합니까?
변하지 않은 해석들이 어떤 시대가 지나가면 변할 것이란 생각은 왜 못할까요
그러면서도 그 “수학적 도형기호”속에서만 어떤 답을 찾으려 할까요?
요즘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보다 월등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성구 몇 절로 짜깁기했던 미래에 대한 확신보다 더 발전한 사회를 봅니다
그래서 경험적 판단은 그것이 내 것일 때만 내게 위안이 됩니다
그것이 다른 이에게서 대접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개인적이지만 그 개인적인 것이 광범위하게 타인을 결박할 경우
그것은 중림적인 요소를 상실합니다
나는 내 개인적인 경험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담론처럼 글을 쓰는 겁니다
우리 주위에는 신앙을 대물림하는 사람 보기 더뭅니다
이젠 재림신앙까지도 대물림하던 시대가 지나갑니다
몇몇 분들은 이런 이야기에 수긍하지 않겠지만 세상은 그처럼 변했습니다
지도자들이 자기 자식들 좋은 자리 만들기에만 급급한데
장기판의 졸들을 세울 곳이나 있겠습니까?
재림교회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혹시 그런 하나님 만난 적 있으십니까?
나는 그런 절대적인 하나님을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자기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보편적이 하나님을 나는 믿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나는 남은 자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편파적인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예언의 어떤 시대적 연대를 푸는 일도 지쳤습니다
그게 인간에게는 가당찮은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도식적 논리로 사람들 이목을 집중하던 시대도 지났습니다
서기 2000년이 지나자 내게서 예언은 장난질일 뿐이었습니다
또 얼마의 세월을 더 속으라고요?
아서요
정말 현실적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단에선 재림을 입에 올리고 그자식들은 사자돌림 직장에 올인하는 그런 목사들에게
저는 진정예수의 삶을 살아가야할 진실한 교인이 안식일교인이라면
남은무리라고 그리도 강하게 강조한다면
우리들이 목사님들이 예수라면
예수님도 자식교육을 지금 우리들이 목사들이 하는것처럼 할것인가?
다른 한편으론
목사의 자식이 또 내자식이 예수라면 지금 처럼 키운다면 메시아의 소명은 어떻게 할것인가
실폐한 예수 겠지요'
그저 잘먹고 잘살면서 조금 훌륭한 한사람으로 끝나겠지요
하늘에서 이룬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란 기도를 조금만 생각해도
이건 아닌데 생각합니다.
하늘나라는 부모자식 부부관계가 없는데
내자식만 내혈연만
내지연만
내 학연만 그렇게도 한없이 추구하는
그런모습은
예수를 따른다는 교회에선 아니올시다아닌가요
성공지상주의를 보면서
그렇게 모든정렬을 자식드에게 다쏱아붙고
언제 예수의 생애는 살려는지원
늘 장로님의 글만은 빠짐없이 읽습니다.
왜냐하면 장로님의 글에선 실천적 신앙을 보기때문입니다.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