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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4 18:20

질문입니다^^

조회 수 1455 추천 수 0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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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성의껏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몇일전 친구 상가집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지요

이런저런 얘기

남자들의 덧 없음? 일명 수컷들의 비애 정도 ^^

(다들 아시지만 남자들 죽으면 그만 ^^)

 

종교 얘기 하다가 친구가 이러더라구요,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누가 속시원히 설명좀 해 주면 좋을것 같다고.

 

구약에서는 그 작은 하나까지 꼬치꼬치 이러 저러 해라 하는데

신약에서는 그냥 예수님 혼자 보내놓고 아무런 말이 없으시다고

 

도데체 이걸 어떻게 이해 해야 는지 모르겠다고

누가 속시원히 알려주면 좋을것 같다고 그동안 여러사람이 설명했는데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머 저역시 별다른 이해나 설명을 못했지요

나도 모르는 일, 정확히는 알수 없는 일 이라서 나도 궁금하다고 했지요

 

구약은 신약을 위한 하나님의 표증이니 예언이니 이런것 말구요

왜냐하면 이친구도 삼육출신이라 그런얘기는 한마디로 씨아리가 없습니다.

 

정확히는 몰라도 조금이라고 가능한 이해와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이참에 저두 배워 볼랍니다.

 

쌩~~유~~ 에브리바디.

 

 

  • ?
    산골 2011.09.05 01:30

    기대하신 답변을 드리지 못할 것 같아 죄송합니다. ^^

     

    제가 폴 틸리히, 칼빈, 바르트 등 신학자들의 견해, 재림 교회내외의 유명 신학 교수들의 글등

    나름대로 성경 해석에 관한 글을 읽어봤지만  우리 재림교회에게 주신 '예언의 선물' 만큼

    은혜롭고 확실한 해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좀 식상(?)하시겠지만

    엘렌 G.화잇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구약은 신약에 빛을 비춰 주고 신약은 구약에 빛을 비춰준다.

    이 둘은 각각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이다.  이 둘은 다 간절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항상 새롭고 깊은 의미를 나타내 보여 준다."

     

    "율법은 구체화된 복음이며 복음은 율법을 펼쳐놓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뿌리가 되고 복음은 향기 나는 꽃과 그 꽃이 맺는 열매이다."

     

     

  • ?
    산골 2011.09.05 01:37

    "율법의 모든 예식을 진리에 상응하는 그림자와 상징으로 이해하지 않고 문자적으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은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시기까지 모든 표징들이 그분을 예시하였다"

    ( 칼빈)

     

    "구약에는 많은 그리스도들,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선지자, 제사장, 왕들이 있고, 신약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나,

     이들은 한 분의 독특한 그리스도, 즉 구약과 신약에서 확인된 언약의 주이신 ... 고유한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또 그 사실로부터 유래되는데, 이 분에 대하여 그들은 단지 표상에 불과하다.

    (칼 바르트)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의 위대한 완성 또는 성취이시다. 그분이 없이는 성경이 결코 올바로 이해되거나 완전히 해석될 수가 없다.

    환언하면 그분은 성경의 충만하고도 궁극적인 의미요 목적이시다. 그분은 성경의 해석자이실 뿐만 아니라 해석 그 자체이시다. 이 모든 점을 통털어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 전체의 요체요 총주제이시다."

     

    ----오실자의 표상(남대극 저 19쪽에서)-----

  • ?
    김주영 2011.09.05 03:11

    글쎄요

    칼빈식의 이해는 어려운 숙제를 비껴가기 위한 구실로 느껴지는군요.

    구약이 당시 살던 사람들에게는 표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에 눈 감으면 4천년이 넘는 역사를 잊는 거지요.

    예를 들면

    아가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 같은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어렵다고 문제를 비껴가서는 안됩니다.  

  • ?
    passer-by 2011.09.05 04:41

    구약과 신약이 다른 건 당연합니다. 우선 성서비평학자들이 말하는 설명을 간략히 써 봅니다.

    ======================================================================================================

    구약(히브리성경)은 엄밀히 말하면 유대교 경전이므로 유대인들의 신(神) 이해를 담고 있을 수 밖에 없겠지요.

    여기서 복잡하고 전문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고, 뼈대만 말씀드리면 히브리성경("타나크"라 불림)은 당시 고대

    근동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아우르는, 고대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도시국가들이 만들어지던 당시, 유대인들이

    체험하고 만난 하나님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외부의 호전적 세력들에 의해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족장신이나 전쟁신의 모습으로 그리게 된 것입니다. 즉, 싸움을 벌이는 신

    이라는 거죠. 가나안족속을 가차 없이 멸절시키라는 잔인한 명령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지극히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후 유대인들이 전쟁에서 지고 바벨론의 노예로 끌려가면서 "하나님=승리"라는 등식에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숭배하고 따랐는데 왜 전쟁에서 패배했는가 하는 실존적 물음에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개념에 다른 의미를 추가하게 됩니다. 새로운 모습의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보아도 좋겠지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따라야만 성경이 약속한 축복을 받고 계명을 어기고

    불순종하면 재앙을 받는다는 등식을 세운 겁니다. 이후 히브리성경은 탈무드, 미드라쉬 같은 구전토라들을 통해

    명맥을 이어갔고, 히브리성경의 일관성을 잇는다는 점에서 도리어 구전토라야말로 유대인들에게는 더 신약다운

    거겠지요. 하지만 신약은 기원후 1-2세기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경험한 하나님이

    기술되어 있죠. 한마디로 신약은 구약을 새로운 신관과 사관을 가지고 해석한 것이죠. 신약이 쓰여지던 당시는

    이미 로마제국이 성립했던 시기이므로 구약의 야훼(YHWH)와는 다른 이미지의 신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은

    무한히 사랑을 베풀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투사된 하나님이기도 하죠.

    사실 구약이라는 용어 자체가 신약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말이 되겠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신약이

    구약의 성취라는 이해는 전적으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의미를 지니는 설명일뿐 신약은 구약과 전혀 다른 성격의 책입니다.

    ==========================================================================================================

    이 내용들을 잘 이해하시려면 히브리성경의 경전화와 관련된 책들을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이건 일전에 제자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양반한테 숙제로 내드린 건데 구약의 경전화와 신약의 경전화 과정만 보아도 우리가 쉽게 말버릇처럼

    말하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자의적인 해석을 깔고 말하는 건지 깨닫게 됩니다. 물론 해석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이해야말로 종교 경전의 본질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겠지만요.ㅋㅋㅋㅋ 짧게나마 도움이 되셨나 모르겠습니다.

  • ?
    빠다가이 2011.09.05 12:30

    여러분의 답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솔직히 어렵습니다. (내용들이)

    그러니까 머랄까 내가 이것을 그 친구에게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걱정과

    주신 내용을 그대로 전달 하는게 좋을듯 하기도 하구요.

     

    좀더 솔직히는 저두 한번도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백성을 대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산골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죄송하게도 님의 표현하신대로 좀 식상합니다. ^^ (이해를 바람)

     

    passer-by님

    감사드립니다 (평소에도 님의 글 잘 보고 많은 배움이 됩니다)

    "신약이 구약의 성취라는 이해는 전적으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의미를 지니는 설명일뿐 신약은 구약과 전혀 다른 성격의 책입니다"

     

    음 솔직히 그 친구를 위해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를 고민중 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사실은 저두 궁금합니다.

     

    님께서 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면 다른 책이지만 같은 하나님일 텐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자의적 해석

    자의적 해석

    이 부분을 또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 ?
    passer-by 2011.09.05 12:56

    쉽게 이해하실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요.ㅋㅋ

     

    님의 친구분이라면....

    비슷한 시기에 삼육동을 거쳐간 분이라면.....

    외백을 말하고 중국관을 말하는 세대라면.....

    최종오 목사를 형이라고 부르는 세대라면.....

    아마 butter guy님과 저는 비슷한 연배일 거 같은데요.ㅋㅋ

    만약 그렇다면 그냥 쉽게 접근해 보세요. 교회를 둘러보면

    저의 세대들이 느끼는 신앙 고민과 교회 안에서의 이런저런

    소외감은 비슷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미지에 대한 고민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일 테지요. 님의 신앙을 응원합니다....

  • ?
    고바우 2011.09.05 14:03

    참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버들강아지!!!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딱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누구는 버들강아지를 보고 "어! 버들강아지가 피었네..."하고 맙니다.

    누구는 버들강아지를 보고 "이제 봄이 다 되었구나..."를 생각합니다.

    누구는 버들강아지를 보고 "내 발길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버들강아지를 준비하셨네..."를 생각합니다.

    보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각색입니다.

    누구도 내가 보는 방법이 옳다고 우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산을 오르고 내리고 지쳐서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의 인생살이 힘들고 지쳐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버들강아지 못보고 지니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무엇을 보느냐?"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보여주고 싶으신 것이 있습니다.

    등산 길에 잘 눈에 띄이지 않게 버들강아지를 준비하셨듯이...

     

    저는 구약이 버들강아지 같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잘 보지 못하니 얼릉 눈에 잘 뜨이는 장미와 같은 신약도 준비를 하셨습니다.

    내눈에 나의 안경을 벗어놓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안경으로 구약과 신약을 본다면

    우리의 눈에 오직 사랑이신 하나님만 보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네가 본 것을 증거하라고 하십니다.

    보지 못하면 증거하지 못하고 인용만 하게 됩니다.

     

    친구분께서 꼭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안경을 착용하시면 참 좋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 ?
    빠다가이 2011.09.05 15:37

    고맙습니다.

    버들강아지도 예쁘구요

    어릴적에 즐겁게 만나던 버들강아지 느낌이 기억나네요.

     

    그렀다면

    자의적 해석과 준비하신 안경의 차이가 멀까요?

     

    같은것 같기도 하고 어감에 따라 다른것 같기도 하고

    자의적 해석이 시작과 과정이 이루어지면  준비하신 안경이 되는 것인지?

     

    연장선에서 같은 하나님이지만 다들 다른 해석을 하는것

    신앙의 개념이 다른것 동의 하고 이해 하는데

     

    성경에 나타난 , 묘사된 모습의 차이가 있는지?

    그렇다면 성경을 쓴  대필, 영감으로 기록, 사실에 의한 묘사

    성경 66권으로 모아논 66권으로 결정 또는 선택된 내용들

     

    이 모든것 들이 사람이 한것인데 영감을 받았든 아니든?

    (내가 한것이 아니니 ㅜㅜ)

     

    님께서 말씀 내용은 동의 합니다 마음으로

     

    그런데  "우리의 눈에 오직 사랑이신 하나님만 보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일단 성경 내용에 대한 질문 보다는 경험적인 과정속에서

    먼저 성경에 대한  질문보다 다분히 믿음이 전제된 상태에서 가능한것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여기서 믿음의 전제는 우호적인 관점의 전제를 둔상태라고 여겨 집니다.

     

    어렵네요 준비된 안경과 자의적 해석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그럼 버들 강아지의 부드럽고 포금한 느낌이 님의 영혼에 항상 가득하길 바랍니다.

     

  • ?
    고바우 2011.09.05 17:49

    변변찮은 댓글에 답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안경이 제 경우에는 "십자가"입니다.

    모든 거치는 말씀들을 "십자가"를 통하여 투영하려고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처럼 일견을 통하여 백문을 이해하게 됩니다.

     

    경험은 전제가 맞습니다.

    "십자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없이는 백문이 이해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도 역시 할 수 있는 말과 글은 "십자가"와 그로 인하여 투영된 "사랑"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이 님과 친구분께 역사하기를 기도합니다.

     

  • ?
    빠다가이 2011.09.05 19:16

    그런데요

    그 십자가라는 것이 투영된 사랑을 구약에서

    하나님과 어떻게 연결 시켜야 하나요?

     

    흔히 제사 제도를 통한 속죄와 사랑을 통한 구원의 예증 들 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구약에서 거의 모든 것을  직접적인 언어로 전달하시면서

    왜 신약에서는 직접의 언어가 없으신지

     

    전 이점을 이해하고 친구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내가 신앙을 하는 이유 보다

    나의 일견보다 기왕에 머리로 다가온 친구에게 머리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불가능하겠지요

    그렇치만 적어도 일말의 공감에 단초를 주고 싶은데 그게 않되어서 이렇게 질문을 공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의 진리인양 단정짓고 가능성의 여유를 주지 않는 이 교단의 일반성을 경멸합니다.

    아니면 PASSER-BY님이 제안한 자의적 해석일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교인들을 교육 시키려 하는지

     

    가끔은 이해는 됩니다.

    조직이고 단체 이다 보니 조직과 단체를 이끌 정신과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집중 시켜야 하는데 일사분란 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게 삶과 죽음에 관한 절대적 선택 이겠지요? 강요 이겠지요?

    개인적으론 건강에 관한 모든 것을 죽음도 극복하는 뉴스타트를 반대 하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합니다. 쉬우니까.

     

    곧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분명한 현실과 과학적 정의 앞에서

    산다는데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게 비롯 비과학적이고 비 이성적이든

    우리가 흔히 아는 알라를 받을해 칼을 받을래 머 이런 것이죠

     

    조금 옆길 인가요?

    어떻게 제 자신의 자의적 십자가에 투영된 사랑을 언어로 전달 하지요?

    그리고 십자가의 투영된 사랑을 현실과 비교하여 검증하고 확인하려 할텐데

    그 다음에 어떻게 이야기 하지요...........................

     

    님의 일견을 통한 , 투영된 모든 것을 존중합니다.

     

    다만

     

    정말 이것 밖에는 없을 까요?

    관통하는 일갈의 카타르시스가 없어도

    접근성 정도는 가능한

     

    성경도 이렇게 다르고 다양한데

    방법이 없을까요?

  • ?
    고바우 2011.09.05 23:34

    제가 혹시 선문답을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어릴 때 처마에 제비가 와서 제비집을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입으로 진흙을 게어와서 계속 바르고 또 발라 집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곳에 어린 제비새끼들이 먹이를 달라고 울어댑니다.

     

    무심코 잊혀졌던 제비와 제비의 집짓는 모습에서

    창세기 1장이 마음에 떠오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합니다.

    제비를 통하여 하나님이 투영됩니다.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던 태초의 일이... 새끼를 낳고 기르기위하여 제비집을 짓던 제비의 생각으로 인하여

    이제 제게 상관이 있고 의미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상관이 있고 의미가 있게 된 이유는 "십자가" 때문입니다.

    제게 "십자가"는 모든 이해의 출발점이고 또 종착점입니다.

    끊임없이 추구하시는 님께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
    passer-by 2011.09.06 00:00

    제 말은 구약과 신약은 전혀 다른 책이라는 겁니다. 그걸 하나의 성경(The Holy Bible)로 묶은 건 전적으로 기독교인들의 해석입니다.

    다른 걸 구지 맞추려고 하지 마십시오. 조화되지도 않고 궁색합니다. 수천 년에 걸친 유대인들의 종교적/지식적 소산인 히브리성경을

    "구약(Old Testament)"으로 부른 건 혁명적 사건입니다. 구약이란게 뭡니까? "옛날에 한 약속"이란 말 아닙니까? 유대인들에게 이 명칭만큼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 따로 없겠죠. ㅋㅋ 그들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아직도 살아있는 언약일 테니까요. 제 말씀 이해하실 수 있나요?^^

    "구약(舊約)"이라는 말은 "신약(新約)"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립되지 않는 표현이라는 거죠. 그래서 기독교는 유대교를 극복하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사실 텍스트에 갇히지 않고 텍스트 너머의 의미를 끊임없이 탐색한 사람들은 원래 기독교인들이었죠.

     

    그럼 지금껏 믿어 온 성경이란 게 모두 그 "자의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느냐? 너무 허무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는데요.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대 고대문서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기준으로 "이전 언약"으로 부른 건 우리들만의 자의적

    해석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일찌기 "율법과 선지자(옛 언약)"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새 언약)"으로 바꾸었으니까요.

    이것이야말로 하나의 해석학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신앙고백인 셈이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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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6 예수를 놓아주자 8 허주 2011.09.03 1706
2125 속지 않기 4 로산 2011.09.03 1387
2124 한국스따여, 교회문턱 더 낮추지 않으면 망한다. 탄식 2011.09.03 1482
2123 아이고 방빼님 읽어보시라요 2 로산 2011.09.03 1822
2122 대답할 수 없는 질문 6 김원일 2011.09.03 1656
2121 스다 SDA , 우리는 스따인가 스타인가--헷갈리는 시츄에이숀 김원일 2011.09.03 1733
2120 그녀와 교회에서... 재림 2011.09.03 1448
2119 나도 교단을 옮길까? 재림 2011.09.03 1441
2118 나는 재림교인이다. 재림 2011.09.03 1600
2117 로산 님! 1 방빼 2011.09.03 1295
2116 도대체 뭣들 하자는 얘기인지? 1 강철호 2011.09.02 1515
2115 안식일에 하는 섹스와 수요일에 하는 섹스 김원일 2011.09.02 1951
2114 교회는 적극적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전광훈 목사 2011.09.02 1373
2113 이게 다 예수 때문이다! 1 김원일 2011.09.02 1676
2112 안식일에 성교하는게 죄인가? 2 재림 2011.09.02 2038
2111 곽정환 목사가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우리 송창식의 노래나 한 가닥 부르자. 13 김원일 2011.09.01 3299
2110 중도라는 나태한 정권이 오늘의 사단을 냈다 조갑제 2011.09.01 1417
2109 곽목사 5 김주영 2011.09.01 1807
2108 참! 보수와 진보란? 1 산골 2011.09.01 1323
2107 ....... 2 student 2011.09.01 2092
2106 선지자는 뿌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안하겠다는 사람들은 뭔가? - 산골님께 6 김주영 2011.09.01 1443
2105 Passer -by 님 4 미련한자 2011.09.01 1309
2104 안식교여, 안식교여.. 이걸 어이할꼬.. 2 김 성 진 2011.09.01 3860
2103 문제는 1844년이야, 이 님아 - It's 1844, stupid! 7 김주영 2011.09.01 1537
2102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이단 논쟁에 대한 소고 10 재림 2011.09.01 2392
2101 우리동네 검사께서 2 로산 2011.08.31 1409
2100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4 로산 2011.08.31 1429
2099 19님과 김주영님에게, 대쟁투나 어디에도 사상영감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3 KT 2011.08.31 1669
2098 왜 각 시대의 대쟁투는 뿌려져야 하는가? 4 산골 2011.08.31 1394
2097 방빼님 4 로산 2011.08.31 1618
2096 웃어 봅시다 2 바다 2011.08.30 1508
2095 꼴통의 특징 - 대결구도 (Warlike Mentality) 9 빈배 2011.08.29 1827
2094 모차르트 - 세레나데 13번 G장조 4악장 Rondo Allegro 1 1.5세 2011.08.29 2144
2093 "대쟁투" 를 가을 낙엽처럼 뿌리면 ... 쓰레기 통으로? 40 김주영 2011.08.29 2451
2092 또 다시 고개 드는 시한부종말론, 2018년 재림설 5 file 경계 2011.08.29 2170
2091 모차르트 - 세레나데 13번 G장조 3악장 Menuetto Allegretto 1.5세 2011.08.29 3525
2090 외식하는 자여! 4 빈배 2011.08.28 2137
2089 노현이도 방 빼? 5 방 빼 2011.08.2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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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7 모차르트 - 세레나데 13번 G장조 2악장 Romance Andante 1.5세 2011.08.28 2896
2086 목사라는 게 창피해 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 [주장] '기독교정당' 추진하는 대형교회 목사들, 부끄러운 줄 아시라 사마리아 2011.08.28 2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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