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passer-by 님이 "성경을 어떻게 읽을까"하는 성경 "해석"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신앙생활에서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제가 여기 저기 글을 쓴 것이 있습니다만
<도마복음> 1절을 해설하면서 쓴 것 여기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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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올바르게 풀이하는 사람은
‐ 해석과 깨달음의 중요성
그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올바르게 풀이하는 사람은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가 이르시되, “이 말씀들을 올바로 풀 수 있는 자는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
풀이: 우리에게 주어진 종교적 진술에 대해 어떤 ‘해석(hermenutics)’을 하느냐가 우리의 영적 사활에 관계될 정도로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중차대한 문제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크리스마스와 산타크로스 이야기를 예로 들어본다. 어릴 때는 내가 착한 어린이가 되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 할아버지가 와서 벽난로 옆에 걸린 내 양말에 선물을 잔뜩 집어넣고 간다는 것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 이런 식으로 믿는 산타 이야기는 나에게 기쁨과 희망과 의미의 원천이기도 하다. 일 년 내내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위해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우리 동네에 100 집도 넘는 집이 있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그 많은 집에 밤 열두시 한꺼번에 찾아와 선물을 주고 갈 수 있는가, 우리 집 굴뚝은 특별히 좁은데 그 뚱뚱한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굴뚝을 타고 내려올 수 있는가, 학교에서 배운 것에 의하면 호주는 지금 여름이라 눈이 없다는데 어떻게 눈썰매를 타고 갈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아빠 엄마가 내 양말에 선물을 넣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 크리스마스는 식구들끼리 이렇게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시간이구나. 이제 엄마 아빠에게서 선물 받을 것만 바랄 것이 아니라 나도 엄마 아빠, 동생에게 선물을 해야지.”하는 단계로 심화된다. 산타 이야기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서 가족 간의 사랑과 화목과 평화스러움을 느끼는 계기가 된 것이다.
좀 더 나이가 들어 크리스마스와 산타 이야기는 교회 교인 전부, 혹은 온 동네 사람들 전부가 다 같이 축제에 참여하여 서로 선물이나 카드를 주고받음으로 사랑과 우의를 나누고 공동체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기회가 되고, 그러다가 교회나 동네 뿐 아니라 온 나라, 혹은 세계 여러 곳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까지 생각는 사회적 의미를 깨닫게 된다. 좀 더 장성하면, 혹은 더욱 성숙된 안목을 갖게 되면, 크리스마스 이야기란 어쩌면 신이 땅으로 내려오시고 땅과 인간이 그를 영접한다는 천지합일, 신인합일의 ‘비밀’을 해마다 경축하고 재연한다는 깊은 신비적 의미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것까지 깨닫게 된다.
사실 산타 이야기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적 이야기에는 이처럼 여러 가지 뜻이 다중적(多重的)으로 혹은 중층적(重層的)으로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1세기 전후 심층 차원의 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종교적 진술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네 가지 의미 층이 있다고 한다. 문자적(hylic) 의미가 있고, 나아가 심적(psychic), 영적(pneumatic), 신비적(mystic)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대교 카발라 전통에서도 성경에는 표면적(peshat), 비유적(remez), 미드라쉬적(drash), 신비적(sod)의미가 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종교적 진술을 대할 때 우리는 올바른 풀이를 통해 점점 더 깊은 뜻을 깨달아 나가야만 한다. 그러지 못하고 문자적이고 표피적 뜻에만 매달리면 우리의 영적 삶은 결국 죽어버리고 만다. 바울도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린다.”(고후3:6)고 했다.
이처럼 올바른 풀이를 통해 여기 주어진 메시지의 가장 깊은 차원의 영적·신비적 뜻을 깨달아 아는 사람은 우리 속에 있는 신성(神性)을 발견하게 되므로 새 생명을 찾을 수 있다. 육체가 죽어도, 옛 사람이 죽어도 그 속에 죽지 않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하략)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에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제목만 보면 무시무시하게 느껴져서요.
성경이라면 어떤 성경 무슨 말씀을 의미 하시는 것인지요.
민초 스다에서 강하게 느껴지는것은 모든 성경 해석을 적어도 박사 수준에서 해석하거나 알지 못하면
안될것 같은 느낌 입니다.
새벽 마다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아무 의미도 뜻도 모르신채 음문으로 번역된 두텁고 낡은 성경책을
"뭐 그럴라고?"하시면서 하루도 배놓지 않으시고 읽으시던 저의 할머님을
분명 나의 하나님은 뜻도 모르고 읽어서 혹은 믿지 않고 읽어서...
라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 로 분류 하시지 않으시리라 확신하는데요.
2300주야가 뭔지 성소와 지성소가 뭐하는 곳인지 교수님이 말씀 하시는 표층 심층 이 뭔지도 모르셨지만
하나님을 그저 아버지로 믿고 따르시긴 했지요.
그러면 되는것 아닌지요.
교수님이 말씀 하신 제목의 의미는 아주 훌륭하신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