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적인 반성을 할수 밖에 없는 이유..

by 김 성 진 posted Sep 08, 2011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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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가 쓴 "산골님에게" 라는 글에

산골님이 댓글을 쓰셨다..

 

이 글은 그 댓글에 대한 댓글이다..

 

처음엔 산골님의 댓글 밑에 올렸다가

댓글치곤 너무 글이 길어서

이렇게 원글로 올린다..

 

산골님의 댓글은 아래 베껴놨다..

 

 

===== 

 

 

산골님..

 

댓글에 동의 못하는 점들이 많습니다..

(사실, 많은게 아니라 전부 다 입니다.. ^^)

 

"자아를 변호하고 우리 자신의 위엄을 세우려는 일은 고상한 마음의 증거가 아니다" (2T 426) 란 예신의 글을

산골님 당사자에게만 해당시키는데에 그치지 않고

저에게까지 해당시키셨습니다..

 

산골님이 누구시길래 제가 "자아를 변호하고, 자신의 위엄을 세우려" 한다고

함부로 단정하십니까???

 

제 자신이 "자아를 변호하고 자신의 위엄을 세우려" 고 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한것은

저 스스로 깨달을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산골님이

스스로 그러한 사실을 깨달을수 있는 능력이 있듯이요..

 

그렇다면 2T 426 의 글은

산골님 혼자에게만 해당시켜야 하는것 아닐까요???

 

제가 보기에도 그 글을 제 자신에게 해당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제가 알아서 해당시키도록 하겠으니

정 2T 426 의 글을 누군가에게 해당시키길 원하신다면

산골님 본인에게만 해당시키십시요..

 

그것이 예신을 읽는 올바른 자세 아닐까요???

 

 

=====

 

 

그리고 저의 "참된 신앙적 양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을 생애의 법칙으로 삼고 있다면"

산골님이 아래에 쓴 예신으로 남을 공격하는 글은

저와는 상관없는 글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발언 또한 순전히 산골님을 중심으로 둔 상황속에서만

나올수 있는 발언입니다..

 

김성진의 "참된 신앙적 양심" 과 "하나님을 두려워함" 과 "말씀을 생애의 법칙" 으로 삼는 방법들이

산골님과 똑같다는 전제하에서만 저런 글을 쓸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의 "양심, 두려워함, 법칙" 들이

산골님의 "양심, 두려워함, 법칙" 들과 다를수도 있다는것은 생각해 보지 않으셨나요???

 

무엇을 근거로 산골님이 가지신 "양심, 두려움, 법칙" 들이

제가 가진 "양심, 두려움, 법칙" 들과

똑같다고 생각하시는거죠???

 

같은 재림교인이기 때문에???

같은 한국 사람들이기 때문에???

같은 모태 교인이기 때문에???

 

그게 정말 말이 될까요???

 

자..

 

이렇게 산골님의 "양심, 두려움, 법칙" 과 저의 "양심, 두려움, 법칙" 들이 다른 상태에서

아래 산골님이 쓰신 예언의 신으로 남을 공격하는 글을 제가 읽는다면 

산골님 말대로 산골님의 예신으로 남을 공격하는 글이 정말 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글이 될까요???

 

아이 돈 띵 소..

 

상당히 상관 있는 글이 됩니다..

 

산골님과 다른 "양심, 두려움, 법칙, 신앙, 믿음" 을 가진 저와 같은 사람을

사단의 종으로 연결시켜버리는

아주아주 눈에 거슬리는 글이 됩니다..

 

안 그럴까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셔도

안 그럴까요???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말입니다..

 

일요교회 목사가

안식교가 왜 이단인가를 설명하는 글을 읽으면

산골님은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로 읽혀지시나요???

 

안 그렇지요???

 

그치요???

 

신앙과 종교를 오직 산골님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산골님이 가진 신앙과 종교와 다른 신앙과 종교를 가진 재림교인들이

이 세상에 널려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만에 대한 예신의 글들을 올려드렸더니,

"저에게 그런 교만함이 있다면 반성" 하겠다고 하셨군요..

 

솔직히,

겉으로만 나타내는 가식적인 반성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교만함이 있다면" 이란 말은

"교만함이 있다" 를 인정하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교만함이 있다" 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깊이 반성' 할 필요성은 전혀 없는 겁니다..

 

하지만 산골님은 "교만함이 있다면" 과 "깊이 반성" 이란 문장을

같이 쓰십니다..

 

자신에게 교만함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깊은 반성은 왜 합니까???

 

안 그런가요???

 

한마디로 

성립될수가 없는 반성을 하겠다는 말 밖에 안된다는 겁니다..

 

즉,

가식적인 반성을 하겠다는 말이란 겁니다..

 

그치요.. ???

 

 

그러므로 제가 아래 제 글에서 산골님께 인용한 예언의 신 글들에 대해서도

그다지 감사해 하지도 않으시면서

감사하다는 가식적인 말을 하고 계십니다..

 

 

=====

 

 

예수를 믿기 전에

남과 자신에게 먼저 솔직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경과 예신을 읽고 믿기 전에

남들이 나와 전혀 다른 해석을 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가식적인 반성이 생기지 않습니다..

 

 

 

끝..

 

 

 

=====

 

 

산골님 wrote:

 

먼저 저와 김성진님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 하나

인용합니다.

 

"자아를 변호하고 우리 자신의 위엄을 세우려는 일은 고상한 마음의 증거가 아니다"

(2T 426)

 

김성진님께서 참된 신앙적 양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생애의 법칙으로 삼고 계시다면

아래 님께서 말하신 예언의 신 공격 글은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주신 예언의 신 말씀 감사합니다.

 

저에게 그런 교만함이 있다면 깊이 반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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