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by passer-by posted Sep 08, 2011 Likes 0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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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영민을 통해 알게된 시인 김승희....

소시적에 그녀의 시를 어줍잖이 외우고 다녔지만 이 시만큼은 섬뜩하여 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철학이든, 종교든, 정치든..... you name it! 그게 무엇이든 나는 안주를 꿈꾼다. 그 안주는 제도를 요청한다.

그 제도는 다시금 통제를 낳고, 통제는 독재를 요청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린다. 아래 한 분이 "하나님을 가둔다"는 건

아마 이런 뜻일 게다.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까지는 좋은데 오직 내 마음에"만" 있다는 건 통제고 독재고 자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예수님이 하늘 지성소에 있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하늘에서 조사심판"만"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건 교리 속의 안주고 교단의 제도에 갇힌 것이다.

 

 

 50873292.jpg

 

제도

김승희

 

아이는 하루종일 색칠공부 책을 칠한다.
나비도 있고 꽃도 있고

구름도 있고 강물도 있다.
아이는 금 밖으로 자신의 색칠이 나갈까봐

두려워 한다.

누가 그 두려움을 가르쳤을까?
금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나비도 꽃도 구름도 강물도
모두 색칠하는 선에 갇혀 있다.
엄마, 엄마, 크레파스가 금 밖으로
나가면 안되지? 그렇지?

아이의 상냥한 눈동자엔 겁이 흐른다.
온순하고 우아한 나의 아이는
책머리의 지시대로 종일 금 안에서만 칠한다.

내가 엄마만 아니라면
나, 이렇게, 말해버리겠어.


금을 뭉개버려라.

랄라.

선 밖으로 북북 칠해라.

나비도 강물도 구름도 꽃도 모두 폭발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다.

랄라.
선 밖으로 꿈틀꿈틀 뭉게뭉게 꽃피어나는 것이다.
위반하는 것이다. 범하는 것이다.

랄라.

나 그토록 제도를 증오했건만
엄마는 제도다.
나를 묶었던 그것으로 너를 묶다니!
내가 그 여자이고 총독부다.
엄마를 죽여라!

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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