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9월 15일] '안풍(安風)'의 이면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애초에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다가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한 후 곧바로 유력 주자로 떠오른 과정도 신기하고, 반짝하고 끝날 수도 있었던 인기가 굳어져가는 현상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대중적 희구와 정치 현실의 괴리
안 원장의 인기는 성실하고 올곧은 삶의 행적이 빚은 긍정적 이미지에서 비롯했다. 그는 의사에서 정보기술(IT) 산업의 기수로 전신하는 데 성공했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연구ㆍ개발의 성과를 개인적 부를 축적하는 대신 공공의 이익으로 돌렸다. 중소기업의 열악한 생존 환경을 설파하고, 청년실 업 문제를 풀기 위한 사회적 지혜의 집적에 기여하고, 청년들과의 소통으로 꿈과 희망을 주었다.
많은 사람이 동경하는 의사 직을 과감히 내던진 용기와 결단력, 척박한 환경에서 IT 기업을 일구어 지킨 추진력과 경영능력,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배려, 열린 귀로 소통과 융합에 나서는 포용력 등이 고루 배어난다. 유능하되 도덕적이고, 깨끗하되 따스한 이런 이미지를 정치현실에 대입해보면 그에 쏠린 대중의 열광이 결코 낯설지 않다.
유권자들은 늘 과거와 현재의 정치 지도자들이 빠뜨린 미덕을 미래의 지도자에게 요구한다. 과감하고 유능했지만 도덕성을 결여한 대통령, 유능하고 도덕적이었지만 우유부단했던 대통령, 과감했지만 무능한 대통령, 유능하지만 도덕성 의문을 다 씻지 못한 대통령을 거친 마당이다. 구체적 실현 가능성이야 어찌 됐건, 지금까지 드러난 결점을 빠뜨리고 장점을 고루 갖춘 듯한 지도자상을 유권자가 희구하는 현상은 극히 자연스럽다.
다만 안 원장은 여전히 정치권 밖의 인물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의 무능과 부도덕을 질타하는 정치문화에서 그것은 대중적 인기의 가장 큰 원천일 수도 있다. 무소속으로든, 특정 정당에 속해서든 일단 정치권 안으로 들어갈 경우 마주해야 할 시험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다. 그 문턱을 아예 넘지 못하거나 넘자마자 넘어진 사람들이 숱하다. 다소 이미지의 차이는 있었지만, 고건 전 총리나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정운찬 전 총리 등의 자질과 역량, 참신성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한때 결코 안 원장 못지않았다.
모바일(Mobile) 세대의 정치적 성장이 안풍의 원천이라는 시각도 있다. 제도 언론과 제도 정치권 밖에서 웃자란 그의 영향력이 제도권 내부로 투사되는 듯한 양태에 비추어서는 타당하다. 그러나 모바일 세대에 10년 이상 앞서 떠들썩했던 '유목(Nomad) 세대'가 문화적 수사에 그친 데서 보듯, 한국적 정치현실에서 '모바일 세대'의 독자적 공간은 아직 흐릿하다.
기존 정당의 '관할'에서 벗어난 정치적 유민(流民)이 크게 늘어나는 듯하다가도 선거 때면 자발적으로 '관할'에 귀속해 온 게 현실이다. '모바일 세대'는 기존 정당을 지지하는 정주 집단과 구별되는 별도의 유목 집단이 아니라 정치적 의사소통의 장에 모여들 때만 잠시 집단 정체성을 띠었다가 흩어지는 신기루 같은 세력이다.
재목 양성에 실패한 정당의 책임
정작 '안풍'이 일깨운 것은 한국 정당정치의 허점에 다름 아니다. 정치적 이해ㆍ의사 결집체인 정당이 그 의사 실현에 적합한 재목을 키우기보다 눈앞의 작은 이해다툼에 매달려 오히려 그 싹을 자르기에 바쁜 한 제2, 제3의 안풍은 언제든 불게 마련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기린아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사활을 건다면, 정당이 헌법적 보장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탈(脫) 정당의 정치는 이합집산의 패거리(Mob) 정치나 동원(Mobilization)의 정치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한 가장 큰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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