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님,
고등학교 다닐 때 성질이 불같은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무실에 있는 그분 책상 위에는
"형제들아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는 말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미련님이 passer- by 님과 댓거리 하시는 중에 나온 이 말씀은
제게는 그래서 늘 그 선생님과 함게 기억됩니다.
극기, 자기 성질 죽이기,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에 못박기 등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 말씀은
원래 고전 15장에 쓰여진 대로는 전혀 다른 뜻입니다.
아시는 대로 부활장이지요.
부활이 없다면
매일 죽음을 대면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내가 왜 죽음을 무릅쓰겠느냐고 사도는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매일 죽을 각오 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사표 써서 안주머니에 넣고 출근하는 정신으로
매일 죽는다 치고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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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1844년이야" 라는 글에 댓글을 다시면서
그럼 너의 2300 주야 이해는 뭐냐는 취지의 질문을 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해석은 전문가들의 몫일지 모르지만
우선 성경을 있는 그대로 평이하게 읽어보십시오.
성경읽기 101 은
흰 종이에 까만 글자로 인쇄된 성경을
있는 그대로 그냥 읽는 것입니다.
'나는 매일 죽노라' 는 말씀을
있는 그 자리 문맥에서 그대로 읽을 때
원래 뜻이 나오듯이
다니엘 8장도 그렇게 읽어 보십시오.
중학교 다닐때 고 최명환 목사님께 다니엘서를 배울 때
2300 주야 부분에 오면
그 어린 마음에도 고개가 갸우뚱했었습니다.
왜 갑자기 비약하는 것일까.
전에 제 아이들에게 그 본문을 읽혀 봤습니다.
"성전이 정결하여진다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정결하여진다는 뜻이냐"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작은 뿔이 더럽혀 놨으니까 그걸로부터..."
원어와는 다른 레위기 16장 성소의 '정결' 에 갖다 붙인 건
KJV 를 읽은 밀러의 실수였습니다.
현대의 번역본으로는
우리 전통적 해석 나오지 않습니다.
밀러야 잘 몰랐으니까 그랬다고 치고
그걸 옹호하기 위해
말씀을 이리꼬고 저리 비트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우리 신학자들의 수고는
정말 가상합니다.
세미나리에서는 계시록과 다니엘을
교차구조라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건 신학생들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씀은 진리로서의 보편타당성이 없을 터입니다.
님이 어느 곳에서 말씀한 것처럼
말을 이리 갖다 붙이고 저리 갖다 붙이고
이렇게 구부리고 저리 비틀고
원어를 들이대고
(몇년 전 다니엘서를 다룬 안교교과에 나오던
'하존' 과 '마레' 를 기억하십니까?^^)
교차 구조니 무엇이니 해야 설명될 것이라면
십중팔구 잘못된 해석이기 십상이고
혹시 옳게 해석했다 하더라도
핵심적으로 중요한 사항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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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가야 합니다.
나중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