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증언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이라는 구절로
나는 최소한 5개 이상의 다른 내용의 설교문을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5번 이상 같은 성경절로 다른 뜻으로 풀이해서 성도들과 은혜를 나눌 자신이 있습니다
그처럼 성경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구절들이 너무 많으면
어떤 성경절은 몇 번을 읽은 것인데도 처음 읽은 것처럼 뒷골을 때리기도 합니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골수를 쪼갠다는 구절을 실감합니다
말틴 루터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라는 종교개혁 당시
행위를 주장하는 야고보서가 마음을 눌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라 불렀습니다
차라리 야고보서가 신약에서 빠졌으면 했습니다
그 후 행함을 주장하는 1888년 이전의 재림교인들은
줄기차게 야고보서를 인용했습니다
지금도 인용하고 있고 앞으로 인용하면서 믿음으로의 행함을 주장할 겁니다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럴 겁니다
그렇게 진하게 말하고 있는 사이 저들의 구원은 행함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그런 사고방식에 빠질 겁니다
우리 주위의 선조들이 그랬고 믿음의 친구들도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아래는 박진하목사님이 카스다의 김 정대님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재림마을에서 필리페라는 닉을 가진 어떤 분이 김균님이 주장하는 반재림교회적 주장들을 옹호하면서 화잇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화잇 선지자의 글 내용은 전혀 김균님과 같이 주장하는 허황되고 터무니 없는 그런 주장과는 결코 관계가 없지만, 그 내용이 의미심장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 재림교회가 속시원히 해석하거나 풀지 못한 다니엘과 계시록의 몇 부분들이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성경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살피기를 원하는 성경 학도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안겨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과거에 어디선가 몇 번 읽은듯 한 말씀인데 그 문장들 중 한 두부분의 해석에 조금 의아스러운 표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글의 정확한 출처를 알고 싶습니다.
그런데 채널 21에는 전혀 이 글들이 검색이 안됩니다. 아마 아직 번역이 안된 것이라 그럴 것입니다. 번역이 안 되었을지라도 이처럼 중요한 문장들은 벌써 가려뽑은 기별이나 증언보감 등에 나올 법도 한데요....
혹시 두 분이 이 글의 출처를 살피셔서 원문을 저에게 보내 주시든지 필리페님이 인용한 이 문장들이 정확히 번역이 되어 있는지도 확인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이 질문에 대하여 김 정대님은 첫 문장인 “WMH에게 보내는 서한 1888.12.9 E.G White-”에 대하여는 답변을 했습니다
그 답변은 카스다와 재림마을에 있습니다
1888년 기별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김정대님이 그 글의 내용을 해석한 겁니다
간단합니다
그 기별은 WMH에게 보내는 서한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증언이 가려뽑은 기별 그리고 증언보감 교회에 보내는 기별 등등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 기별들의 주된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게 A형제에게 B형제에게 등등으로
분명한 개인서신인데도 불구하고 선택적인 기별이 아닌
재림교회 미래에 태어날 형제에게까지 다중으로 보내는 기별로 둔갑했습니다
앤드루스 대학원에서는 이런 글들의 출처를 공부시킵니다
그 지극히 개인적이 기별을 다중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가 여부입니다
김정대님도 그런 의미로 이 구절이 개인적인 것이라고 변명하면서 이럽니다
“버틀러나 스미쓰 같은 개인들의 의견에 대한 말이지, 선지자를 통해서 그리고 교회 전체가 조심스럽게 채택한 객관적인 진리를 대상으로 삼고있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이 인용문을 김균님과 같은 사람들이 주장해온 "이설"들에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곳 게시판에서 증언을 인용할 때 그 당시의 모든 것을 알고 해야 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던 분들이 정작 저들에게 불리(?)한 구절이 나오자
내가 염려했던 그것을 저들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필리페님은 어떤 대상을 정하지 않고 그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저들은 지레 겁을 겁고 답을 씁니다 구경할 만합니다
“김균님과 같은 사람들이 주장해온 "이설"들에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필리페님의 어느 구절에서도 나를 옹호하려고 한 말은 없습니다
그저 증언을 퍼 와서 이런 구절도 있다 한 겁니다
내가 전에 말했던 재림교회 교리는 발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겁니다
저들 마음 드는 대로 증언 퍼 와서 마음대로 갈기면서 자신들을 옹호라고 느낄 때는
그 구절이 어떤 경유로 쓰여 졌는지 한 번이라도 밝힌 적 없는 분들이
남이 하면 불륜으로 점찍습니다
그럼 첫 문장인 “MH에게 보내는 서한 1888.12.9 E.G White-”은
원하는 대로 버클리 목사들에게 보낸 기별이라 칩시다
그러면 마지막 구절
“우리의 이해에는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꾸준히 확장할 수 있는 것이며...
진리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아직도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겨우 빛의 몇 줄기만을 보았을 뿐이다.
-E.G. White, Letter to P.T. Magan, January 27, 1903-“ 은 누구에게 보낸 개인 기별입니까?
그것 찾으려면 시간 깨나 걸릴 겁니다
자기 맘에 드는 구절은 침소봉대하며
남이 가지고 온 증언은 박진하 목사의 말처럼
“물론, 화잇 선지자의 글 내용은 전혀 김균님과 같이 주장하는 허황되고 터무니 없는 그런 주장과는 결코 관계가 없지만, 그 내용이 의미심장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기는 이런 태도는 심히 불쾌합니다
박진하/
왜냐하면 아직 우리 재림교회가 속시원히 해석하거나 풀지 못한 다니엘과 계시록의 몇 부분들이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성경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살피기를 원하는 성경 학도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안겨 줄 수 있다고 봅니다.
========================================
내가 전에 우리 교단도 계시록이나 다니엘서를 다 해석하지 못하지 않았느냐
1299일 1335일이나 단 11장의 남방왕 북방왕 같은 것은 아직도
해석을 못한 부분 아닌가 했을 때
박진하 목사는 전에 나에게 이랬습니다
나는 다니엘서를 다 풀었다
듣고 싶으면 우리 교회로 와 봐라 내가 우리 교회에서 모두 설교했다 하는 식으로
이 게시판에 적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글을 적는다는 것은 자기도 해석한 부분에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필리페님이 인용한 그런 구절이 다니엘과 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는 구절이 아님도 아셔야 합니다
귀에 걸다가 안 되면 코에 걸고 코에 걸다가 안 되면 미간에 붙이는
그런 증언 해석이라면 나처럼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습니다
January 27, 1903에 쓴 세 번째 문장은 분명히
Letter to P.T. Magan, 즉 P.T. Magan에게 보낸 기별입니다
그 내용을 다시 씁니다
“우리의 이해에는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꾸준히 확장할 수 있는 것이며...
진리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아직도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겨우 빛의 몇 줄기만을 보았을 뿐이다.“
이 말은 보나마나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의 한계점은
아직도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하나님의 언어를 어떻게 다 알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겨우 빛의 몇 줄기만 보는 것이다 란 말일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안다고 떠들지만 잘 모릅니다
다 해석했다고 떠들지만 그건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맘에 들지 않는 증언 나오면 새로운 해석을 요하든지 아니면
그 시대 개인적인 서신으로 둔갑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이율배반입니다
나는 해도 되는데 님들은 하면 안 된다 하는 식입니다
율법 해석은 율법사의 몫이니 예수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모두들 율법사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오묘한 말씀의 깊이를 알기보다
내 증언에 대한 자랑으로 날밤 셀 경우 우리도 십자가에
다시 예수를 못 막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 골라서 십자가에 못박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 겨우 몇 줄기의 빛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방대한 성경을 어찌 다 안단 말입니까?
그래서 내가 자주 이럽니다
시조사에서 증언을 발행하려면 그 시대적 개인적 서신의 이유라도 밝히면서 발행해라고요
솔직해 말해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더 미운 게 말리는 시누이입니다
누군고 하면 마쯔다께님입니다
그분 퍼 오는 증언 읽으면 실소를 금치 못하겠습니다
완전히 동문서답입니다
그런데 마쯔다께님이 무슨 댓글을 달아도 반응 안 할 겁니다
두번 안 속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