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이 하나님 생각과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하나님이 의분하신다”
우린 흔히 그렇게 말합니다
내가 성경과 증언에 충실하니
내 생각이야 말로 하나님의 생각과 같다 하는
그런 오해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은 의분이라 한다면
하나님의 생각은 도대체 어떤 겁니까?
보수적인 신앙을 하는 분은 물론 그렇게 생각할 것이요
진보적 사고를 하는 분들도 내 생각이 진보된 신앙의 표현이라 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 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대부분의 우리들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우리가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굴 미워할 때
하나님도 나처럼 같이 미워해 주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웃음 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하나님도 좋아하실 것이란 생각도
일종의 망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릴 사랑하십니다
내가 뭘 잘 해서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내가 뭘 잘못 해서 미워하시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식이라서 사랑하십니다
거기다가 사랑의 표시를 하고 싶어서 사랑하십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사랑하시고
내가 무엇을 잘못하면 미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옥시토신이란 물질이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일찍 태어나다'라는 의미로
자궁수축 호르몬이라고도 합니다.
이 물질은 아기를 낳을 때 자궁의 민무늬근을 수축시켜
진통을 유발하고 분만이 쉽게 이루어지게 하며
젖의 분비를 촉진시켜 수유를 준비하게 하는 호르몬입니다.
사람은 기분이 좋으면 절로 이 물질이 분비됩니다
기분 좋은 물질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을 때 산전고통이 심한 임산부에게
그 물질을 만들어서 인공적으로 주사합니다.
기분 좋은 물질을 인공으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인공으로 기분 좋은 물질을 만들듯이
인간은 자기만족에 젖어 삽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기 생각과 같다는 거짓 신앙의 인식이 깔려 있는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듯이 하나님도 같은 것을 생각하신다는
그래서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화형을 당해도 싸다는
중세기적 사고에 젖습니다
중세기 그 험한 세월 어찌 살았을까요?
교회 소유 농지에서 농노로 사는 분들
교회가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하면서 살았을 거고
어거스틴이 정립해 놓은 교리에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며 살았을 거고
그러다가 천동설이니 지동설이니 하는 소리 하다가
교리와 부합하지 않다고 여기면 파문 당하는 그런 세월 살다가
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화형 당하는 그런 세월 지냈습니다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칼빈을 보십시오
마녀사냥으로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종교의 획일성이라는게 그렇게 무서운겁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행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죽 벗기기, 대못 관통하기, 공중 매달기
이단자라고 칭하여 화형하기, 누드로 고문하기
그가 4년간 제네바를 통치하면서 58명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되고 사람 많은 곳이 정통이라는 편견
자신과 다르다면 이상하다는 편견
말씀을 자기가 해석한 것이 옳다는 망상
언론이 진실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진리가 나타나도
그 나타나는 방법이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결코 그 진리를 승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라고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우리처럼 종말론에 젖은 분들이 주류를 이루면
그런 사고방식을 벗어나기 힘들어 집니다
우리 선구자들이 고생해서 만든 교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하고
그런 것에 이의를 달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그런 교회가 되는 겁니다
어떤 장로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교리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다”
나는 그 장로님이 그런 말 할 줄 몰랐습니다.
나는 이런 것이 서로 다름이 서로 같을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백성으로서 우리가 이 책(요한 계시록)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게 될 때, 우리 중에는 큰 부흥이 있게 될 것이다."(목사와 복음교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113)
"계시될 진리가 더 이상 없으며, 우리의 모든 성경 해석이 오류가 없다는 입장을 취할 구실은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 백성이 어떤 교리들을 여러 해 동안 진리로 고수해 왔다고 하여 우리의 사상이 무오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세월이 오류를 진리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진리는 여지가 있어야 하며 공명 정대해야 한다. 참 교리는 면밀히 연구함으로써 어떤 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Review and Herald, Dec. 20. 1892)
위에 언급된 화잇 여사의 두 진술은 우리에게 도전거리이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만일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열심히 연구하여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게 될 때, 우리 중에 큰 부흥이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부정적 측면으로는, 지금까지 이해되어 온 것에만 안주한다면 더 이상 영적 발전이 없다는 경고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내에서 요한계시록에 관한 여러 주석들이 발간되었다. 고전적인 것도 있고, 최신의 것도 있다. 또한 방송통신 교재도 있다. 우리는 이런 주석들에서 소개된 내용들을 거의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에 길들여져 있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해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거의 타부시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화잇여사는 바로 이런 자세를 경고한다.....이제는 진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포용적이어야 할 것이다. 정로를 지향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하겠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더 넓고 완전한 진리의 광장에 이르게 될 것이다.
2007년 5월 역자 하홍팔,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랑코 스테파노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