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에 대한 나의 자세...

by 고바우 posted Sep 22, 2011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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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입니다.

확실하게 예언이 성취되기까지는 옳으니 틀리니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예언이 성취되면

"봐라 너는 믿지 않았지? 이제 너는 큰일났어" 라는 자세도 우스운 것입니다.

예언이 성취되면 말씀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면 될 일입니다.

예언을 믿지 않는다고 너와 나를 가르는 현실에 서글픔을 느낍니다.

 

2300주야, 1844년, 일요일휴업령, 야곱의 환란...

이미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하는 2300주야나 1844년에 대하여도

사실 아주 적은 무리들(안식일교인들)을 빼고는 잘 모릅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예언이라면 그것은 전 세계적인 예언이 아닌 아주 적은 무리를 위한 예언이 되어버립니다.

예언의 성취에 대한 객관적인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성취조차 확실한 증거로 나타남이 아닌 믿어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되어야 하는

예언성취의 힘이라면 그 예언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과거의 예언은 그 성취가 확실하고 전세계적이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신봉하는 예언들은 왜 그렇게 힘이 약한 것일까요?

 

이런 마당에 아직도 예언을 우리 교회가 가져야 할 고유한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있으니

그 이유로 또 다른 예언성취인 일요일휴업령에 어쩔 수 없이 목을 메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예언이란 어제까지 맞았다고 하더라도 오늘과 내일에 대한 것은 이루어져봐야 아는 것입니다.

예언은 성취되었을 때에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굳게할 뿐입니다.

 

많은 믿음의 노독들이 그렇게 믿고 목숨처럼 여겼던 일요일휴업령 예언의 성취는 보지도 못하고 무덤으로 들어갔습니다.

과연 그분들께 일요일휴업령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그분들도 그분들 평생에 보지도 못했고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일요일휴업령의 예언으로 갑론을박 싸우며 서로 등을 지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요일휴업령을 믿었던 자들은 구원을 받고 믿지 않았던 자들은 구원과 상관이 없을까요?

이러한 신앙은 정말 배척하여야 합니다.

 

구원을 어떤 외부적 싸인에서 출발하는 것이나 시점으로 이해하는 한 그 집단은 어쩔 수 없이 폐쇄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에는 꼭 예언들이 판을 칩니다.

한국의 정도령도 그렇고...

마야인들의 예언도 그렇고...

점성술사들의 예언도 그렇고...

천주교의 예언도 그렇고...

우리교회의 예언도 그렇습니다.

다른 것이 과연 있을까요?

세상 거의 전부의 사람들은 이러한 예언들을 모두 같은 범주의 것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저는 우리교회들이 예언에 집착하기보다

실천하는 사랑에 집중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수용하고 베풀며 나누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사도행전 29장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정말 다미선교회와 우리교회는 다른 것일까요?

그들은 틀린 예언을 믿었고 우리는 맞는 예언을 믿는 것일까요?

저는 예언에 집착하면 누구나 모두 다미선교회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뿐 아니라 세상의 시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언의 선포와 그 예언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들의 신념에는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희생하는 사랑을 갈망하고 그 실천에 열광합니다.

 

예언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예언에 목숨걸지 말고 사랑에 목숨걸면 좋겠습니다. 

 

이미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에 우리가 신봉한다고하는 예언은 책[예언의 신이란..]으로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루어진 다음에 그 예언이 참이었다는 것을 검증하기는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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