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아! 1844년을 알아야 해!

by 제자 posted Sep 28, 2011 Likes 0 Replies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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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교회가 가진 빛나는 교리 가운데 하나는 소위 조사심판이다. 나그네 인생에게 큰 흥미와 원기를 주는, 이 종말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야말로 교리라는 의미가 지닌 소극적 신념에 머무는, 다분히 관념적인 이해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비감하고 애석한 현실은 비단 현대교회에서 중추를 이루고 있어야 할 이 조사심판에 대한 교리뿐 아니라 기독교의 속성자체에 대한 근본적 몰이해와 아울러 하늘세계에 대한 우물 안 개구리식의 피상적 추측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질곡의 유대나라, 옛 시대의 몽매함을 답습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보며 역사의 반복을 여실히 보게 됩니다. 많은 이가 단순하고 담백한 구원의 길을 떠나 몽롱한 포도주에 취해가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로 점철된 기독교는 지식의 학습과 축적이 아니라 발견과 깨달음으로 가야 합니다. 마음과 생애를 움직이는 참 동력은 기독교의 정석을 배우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참 기독교는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죽음을 박찬 예수의 현현에 기독교의 출발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를 눈으로 목도한 여인들은 전통 유전과 교리를 단숨에 초월하며 인간이 배우고 알아야 할 최고의 종교적 단초를 얻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과한 예수의 실존은 누적되어 왔던 여인들의 모호한 혼란을 모두 거두어갔습니다.

 

단순무식한 촌 동네의 여인들이 수천 년 내려온 양의 죽음영원한 삶의 현장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들이 혼란스런 랍비에게서 종교의 길을 배우는 것은 새 술을 헌 부대에 담는우매한, 이성을 마취 시키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변함없는 동네 아낙이었지만 그들의 내면은 차근차근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자연히 그들은 생명의 도를 가르치는 위력적인 선생으로 바뀌어져 갔습니다. 지금도 구원의 길과 참 기독교는 예수를 아는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많은 이들이 믿음에 관하여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입니다. 겉멋들은 신학용어들과 학자들에 대한 장식으로 신앙을 꼴 지워 가면 반드시 빗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눈 먼 자신을 발견하고 아이의 단순함과 소경의 간절함으로 예수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의 실존에 대한 믿음이 공고해질 때 조사심판과 재림교회의 위대한 초석들과 선각자들의 비범한 행적에 대하여 찬탄과 감사를 금치 못할 것입니다.

 

조사심판을 한시적인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납득이 불가할 것이나 예수를 사실적으로 감지하게 되면 흐릿한 교리는 선명한 현실로 보이게 될 것이다. 조사심판뿐 아니라 그 외의 기독사상들도 교리와 학습위주로 기독교를 배워가는 자들에게는 불가사의한 모호함으로 남을 것이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적 해석, 나아가 1844년 이후의 지성소 봉사 시기와 같은, 재림교회가 보유한 전통적 교리들을 수호해야 합니다. 우리의 세계는 1844년 이후 끝내기수순으로 들어서야 하는 것은 죄인들도 이해되는 마땅한 수순입니다. 복 있는 자는 신앙을 근본부터 다시 배우게 될 것이고 화있는 자는 태평가를 부르며 그대로 가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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