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용감했다 !

by 김주영 posted Oct 08, 2011 Likes 0 Replies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계 13장 이야기 계속


미련님


SDA 식 해석은 우라이야 스미스 (1832 - 1903) 에게서 나왔습니다. 

스미스와 그의 시대 이야기입니다.


-----


천국에 가면 꼭 만나 보고 싶은 사람 중 하나가

우라이야 스미스의 누이 애니 스미스 (1828-1855) 입니다. 

문학소녀에 시인이었습니다. 

재림기별을 받아들여 

학교 선생이 되는 길을 포기하고 

리뷰사에서 편집하는 일을 했습니다. 


당시 손바닥만한 리뷰사에서

먹고 지내면서

몸이 약해졌고

깐깐한 보스 제임스 화잇 밑에서 속 많이 상했고

같이 일하던 총각 JN 앤드루스를 연모했으나 짝사랑이었고

한살 위이던 엘렌 화잇은 이미 결혼해 있었으나 

독신으로 그렇게 살다가

폐결핵에 걸려 스물 일곱에 세상을 떠납니다. 


죽는 날까지 많은 시를 썼는데

우리 찬미가에 <내 본향 몇리 남았나>  <저 피곤하고 슬픈이> 가 들어 있습니다. 


<내 본향 몇리 남았나>의 

"울지 말고 빨리 가라..." 는 세번째 소절은

"Then weep no more" 이라고 되어 있는데

1, 2, 3 절 모두 똑같은 말입니다. 

"이제 그만 울어라" 가 이 찬미의 키워드 입니다. 


얼마나 울었을까...


오직 한 소망으로 그렇게 살면서 일찍 생을 마감한  처녀 시인 애니 스미스

그의 동생이 우라이야 스미스입니다. 


------


지난 글에 말씀드린 대로

당대에 세상이 끝날 것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던 초기 SDA 는

세상 역사를 예언에 대입했는데

그 예언 해석의 지성적 리더가 우라이야 스미스입니다. 


신생 미국은 짱짱하게 커 가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흉년으로 카톨릭 이민이 대량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이미  들어와 자리잡고 살던 개신교인들 사이에

위기감이 퍼졌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반이민 정서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교황이 이민들을 이용해 미국을 접수하려 한다" 는 소문이 퍼지는등

반캐톨릭 정서가 되살아났습니다. 

폭동과 방화가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유럽에서 새로 이민오는 카톨릭들은

개신교인들이 보기에는 무늬만 교인이었지

일요일에 교회 갔다 와서는

술먹고 노름하고 자기네 나라 말로 떠들고 

빈민가에서 더럽게 사는  이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로부터 미국을 지키자는 의도로

일요일 성수운동이 일어납니다. 

일요일법이 대두됩니다. 


일요일법의 입법 노력은 

엘렌 화잇이 대쟁투를 전면 개정/증보하여 재판으로 출판하던 

1888년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미국 의회에 실제로 일요일을 국가의 법으로 쉬자는 법안이 제출되었습니다!!!!


다행히 SDA 의 빛나는 노력으로

이 법은 좌초되고

그 이후에도 1900년도 초까지 몇번의 입법 노력이 있었으나 실패하여 

일요일법은 미국 입법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지요.


------


같은 시기에

같은 분위기에서

같은 의도로

시작된  법이  금주법 (Prohibition) 입니다. 


금주법은 일요일법과는 달리 

오늘날 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미국 역사 최초의 강력하고 조직적인 로비" 에 힘입어

승승장구했습니다. 


반이민 정서, 반캐톨릭 정서, 사회 개혁에의 충동, 도시와 농촌의 갈등 등의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하고

카톨릭, 루터쿄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 (안식일교 포함) 의 전폭적인 로비에 힘입어

결국 미국 헌법이 개정되어 (1920)

미국은 헌법으로 술을 만들거나 팔지 못하는 나라가 됩니다. 


이런 법이 얼마 못갈 것은 자명했지요.

사회가 혼란에 빠집니다. 

주류 제조 유통 판매 서비스에 종사하던 수많은 인구는 물론

농부들도 일자리를 잃게 되고

밀주판매가 성행하고  알 카폰 같은 마피아가 설치고

지하로 숨은 음주는 오히려 더 많은 중독자를 낳고...

게다가 경제공황까지 덮치고 

그래서 미국 헌법은 다시 개정되어 (1933) 금주령이 폐지됩니다. 


만약 일요일법이 당시에 통과 되었다 하더라도

금주법과 똑같은 운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몰고 올 경제적 사회적 여파는 어찌 금주법에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요즘처럼 경제가 안좋은 때에 어떤 교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경제가 파탄에 빠지면 국가가 일요일을 강제로 지키게 한다구요?

그것은 경제 비지니스 원리상 정 반대의 논리입니다. 

경제공황이 오자 금주법은 폐지됩니다. 

일요일 휴업법은 어떻게 될까요?^^


어쨌든 미국은 도덕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위험한 것인지를 

금주법이라는 엉뚱한 실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앞으로 미국이 헌법을 개정하여 일요일법을 만들 거라고 믿는 것은

미국이 다시 헌법을 개정하여 금주법을 만들 거라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입니다. 


--------


스미스가 본 종말은

그의 세상의 종말이었습니다. 


조사 심판이 시작되었는데

더 다른 세계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유럽 카톨릭 미국 개신교

그것이 그의 세계의 구도였습니다. 


중국이나 아랍권 인디아를 비롯한 제 3 세계는 빠져 있습니다. 


초기에 스미스는 

미국 남북전쟁이 아마겟돈 전쟁이 될 것이라고 믿을 만큼

그렇게 절박한 세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계속 되자 

그는 변화되는 세상에 예언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니엘 11장의 북방 왕을

초기에는 교황으로 해석하다가 

나중에 갑자기 터키라고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단 지도자들은 북방왕이 교황이냐 터키냐를 놓고

박터지게 싸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잊혀진 이야기입니다만 당시는 그랬습니다. 


--------


어쨌든

우리의 소위 '역사주의' 는 

일어나는 사건에 예언을 대입하는 해석입니다. 


그러한 우리 교회식의 해석이

말해주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음에 또...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