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밑에 "왜 끝까지 거짓말을 할까" 에서 소개된
셜리 메이슨에 관한 글입니다.
1970년대 Sybil 이라는 베스트/스테디 셀러 책과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다중인격장애 라는 정신병을 세상에 널리 알린 셜리 메이슨이
안식일교인이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
최근에 출판된
Sybil Exposed (Sybil 을 폭로함 저자 Debbie Nathan) 이라는 책에서는
셜리의 정신병 진단과 치료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Sybil Exposed 의 제 1장에 나오는 셜리의 가족 이야기를 발췌 번역해 올립니다.
특히 안식일교회와 관련된 이야기들입니다.
인터넷 상에 나오는 책 광고 맛보기로 나오는 부분을 옮긴 것이니까 저작권 문제는 없을 줄 압니다.
급하게 번역하느라 거칠지만
시간을 내서 찬찬히 읽어 보십시오.
이 이야기를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에게 너무 낯익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들 집안의 가족사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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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에 셜리는감수성많고 혼돈되어 있는 5학년 학생이었다.
조용하고, 말랐고... 피부는 우유빛처럼 희어서 팔의 정맥이 파랗게 드러나는 아이였다.
형제가 없어서 늘 혼자 놀았다. 동무는 아기 인형들과 종이 인형들이었다.
자기 방에다가 수십개의 성냥곽을 크기대로 가지런히 쌓아 놓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종잇장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 아이는 크레용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토끼를 물색으로 칠하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명랑하고 말 잘듣는 아이처럼 보였겠지만
어린 셜리는 스스로 가망 없는 죄인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 아이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느낀 이유는 상상놀이를 즐기기 때문이었는데
공상이라고 하는 거짓말은 마귀가 좋아 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부모님의 근본주의적 신앙이 엄금하는 것이어서,
셜리가 좋아하는 소설이나 이야기책들을 읽거나 쓰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이상한 색깔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악한 일이었다.
하지만 셜리는 병아리를 보라색으로 토끼를 초록색으로 그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엄마는 병아리는 노란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상상 속의 친구들과 놀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었다.
그 말을 들은 셜리는 눈이 동그래졌다. 교회에서는 그 눈을 꼭 감고 자신의 고삐 풀린 상상력을 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셜리가 자신의 이야기와 그림, 곧 자신의 죄를 가지고 방황하도록 그냥 놔 두셨다.
셜리의 가족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었다 ... ...
셜리가 어렸을 때 안식일교인들은 토요일을 하루 종일 교회에서 지냈다.
1920, 30년대 미국에는 약 10만명의 안식일교인들이 있었고
셜리의 마을인 미네소타주 다지 쎈터 (Dodge Center) 에는 50여명의 교인들이 있었다. 그 마을 전체 인구는 800명 정도 되었다.
(중략)
다지 센터는 중서부의 다른 소읍들과 마찬가지로... 어디나 교회가 있었고,
어디나 교회 다니는 아줌마들, 교회인들 사이의 까십, 프리 메이슨 모임, 티 파티, 목사들로 넘쳐났다.
세인 폴, 시카고, 뉴욕으로 가는 기차 표를 사려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왕복권이 아닌 일방행이었다.
청년들은 이 고루하고 답답한 마을들을 떠나고 싶어했다.
셜리의 할아버지 닐 메이슨도 안식일교인이었고 그의 어머니 (셜리의 증조모) 도 안식일교인이었다.
실로 안식일교인 개척자의 집안이었다.
(중략... 윌리암 밀러로 시작해서 엘렌 화잇까지 안식일교회 역사가 꽤 길게 소개됨
매우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꽤 괜찮은 저자라고 생각됨: 김주영)
셜리는 자기가 공상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병아리는 실제 아닌가? 비록 병아리색 아닌 다른 색으로 색칠을 해도 적어도 병아리는 실제였다.
그러나 자기가 지어내는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는 사람들과 동행하고 계시다고 했다.
그러나 셜리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친구 비키와 샘 같은 아이들은 셜리하고만 놀 뿐이었다.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해야 할 머리로 거짓말이나 지어 내고 있는 셜리였다.
셜리의 이야기는 단연 허구였다. 거짓말은 하나님이 불쾌히여기시는 것이었다.
셜리는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 두려웠다.
어떻게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셜리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야기를 쓰기는 하되 실제로 쓰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셜리는 비밀리에 그렇게 했다.
실제로 쓴다는 것은 연필이나 펜으로 종이에 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쓰지 않고도 쓰는 방법이 있었다.
그 애가 가진 것이라고는 부모의 오래된 잡지들, 종이 인형들, 성냥곽들이었다.
셜리의 아버지 월터(Walter) 는 일하느라고 늘 밖에 나가 있었다.
엄마 매디 (Mattie) 도 볼일 보러 나가고
식모는 식료품점에 가고 하숙치는 사람들도 다 나가서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셜리는 잡지에서 글자들을 오리기 시작했다.
A, B, C, D 로 시작해서 알파벳의 모든 글자들을 수백개씩 오려 모았다.
마치 유괴범이 협박 편지를 쓸 때 하듯이 글자들을 오렸다.
그 글자들을 알파벳별로 성냥곽에 담고 , 그 위에 종이 인형을 올려 놓았다.
A 가 담긴 박스의 인형들은 애나, 앨리스, 알린 이라고 이름 붙였다.
B 는 바바라, 바니... ...
그래서 어른들은 그 박스를 보더라도 인형의 이름인줄 알지 그 안에 소설을 쓰는 글자들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을 모를 것이었다.
엄마나 다른 어른들이 집에 없을 때 셜리는 그 성냥곽들을 열어 바닥에 글자들을 쏟아 놓았다.
그 글자들을 하나씩 배열해 가면서 그 아이는 상상 속의 비키와 샘의 이야기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문 앞에 발소리가 나기만 하면
그 뱀처럼 길게 배열된 글자들을 황급히 성냥곽에 집어 넣고 그 위에 종이 인형을 덮어 숨겨 놓았다.
나중에 또 다른 이야기를 위해.
그리고는 현관 앞 계단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공상을 했다.
기분이 좋은 날은 오늘도 멋진 스토리를 실제로 쓰지도 않으면서 남모르게 써 냈다는 느낌이 들 때였고,
엄마 아빠도 못보는 것을 천사는 보았겠지 하는 느낌이 드는 날은 기분이 잡치는 날이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신실한 안식일교인들이 승천해 올라갈 때 자기 자신은 홀로 남겨져 영원한 불로 살라져 갈 것이었다.
다지 쎈터의 안식일교회당은 조그만 하얀 건물이었는데 의자들은 거칠었고 벽에는 십자가도,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닐 메이슨 (셜리의 조부)은 30대에 아내 메리와 함게 그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들 월터 (셜리의 아버지) 는 10대때인 1890년대에 그 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다.
메이슨 집안은 토요일에만 교회에 간 것이 아니었다.
수요일 저녁의 "간증 집회" 에도 참석했다.
그 간증 집회란 교인들의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고 최근에 경험한 기적같은 일들을 보고하는 자리였다.
당시 중서부 농촌에 살던 어떤 교인의 회상에 의하면 그 기적들이란
"하루는 콤바인에서 일하고 있는데 방망이를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무릎꿇고 기도했더니 찾았습니다!"
"아멘" "하나님이 놀라우시죠?" 같은 류의 것들이었다.
당시 안식일교인들은 매주 교회에 출석할뿐 아니라 멀리 장막 집회에도 참석했다.
닐은 매우 공격적인 전도자였다.
그는 감리교인 침례교인들인 이웃들에게 이전에 결코 없었던 큰 환란이 올 것이라고 떠들었다.
미국 전국에서 개신교회와 법왕교가 사람들을 토요일에도 일을 하게 만드는 법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 법이 제정되면 재앙들이 일어나고 그 후에 예수 재림이 있을 것이었다.
재앙들이 내리면 악인들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월터 메이슨 (셜리의 아버지) 은 항상 열심있는 신자는 아니었었다.
한 때 그는 교회를 완전히 등지고 떠난 때도 있었다.
월터는 교단 대학에 1년을 다녔는데, 예수 재림이 임박했다고 성화하는 아버지 때문에
재림준비를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두었다. 열 아홉살이었다.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고 그는 아버지와 그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났다.
월터는 스물 여섯살 때 매디 앳킨슨을 만났다. 월터보다 한살 위였던 매디는 아이오와의 농촌 출신이었다.
매디의 가족은 감리교였는데 세상 종말이나 소설의 위험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중략... 매디의 어린 시절, 외모, 성격...
월터와 결혼해서 정착, 그들의 집...)
매디는 여러번 유산했고... 류마티즘이 있었고... 만성 피로 증후군... 신경 쇠약....
(중략)
1923년, 남들은 할머니가 되기도 하는 사십이 다 되어서야, 매디는 출산에 성공했다.
셜리는 1월에 태어났다... ...
기쁘기만 했어야할 매디는 그 반대로 극심한 산후 우울증에 걸렸다.
시부모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매디를 도와주었고 매디는 넉달 만에 회복되었다.
매디는 안식일교회로 개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시작했다.
남편 월터는 4년 전에 교회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그 때까지 매디는 감리교를 떠나 안식일교인이 되는 것에 저항감을 느꼈었다.
셜리가 세살이 될 때 까지 셜리의 부모는 "다른 멍에"를 진 부부였다.
다른 멍에라는 말은 부부가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경우, 특히 한쪽은 안식일교인이고 다른쪽은 아닌 경우를 은근히 비하하고 경계하는 표현으로
안식일교회 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던 말이었다.
결국 매디가 침례를 받고 나자 부부의 연합은 견고해졌다. 월터는 교회 일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고 매디도 여자들 그룹에 참여했다.
매디는 열심을 내기로 작정했다.
셜리는 안식일학교에 다녔다.
토요일 아침 안식일 학교에는 남녀 아이들 여나믄 명이 모였다.
집에서는 월터와 매디가 "Bible Readings For the Home" 을 읽어 주었다.
그 책은 1920년대 안식일교인 가정에 많이 보급된 책이었는데
성경 이야기가 나오고, 부모와 아이들이 질문하고 대답하도록 문항들이 나와 있었다.
"또 내가 바다가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짐승이 나오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더라.
뿔 위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더라"
가족들은 그런 무시무시한 장면들을 읽고,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한 카톨릭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읽었다.
셜리는 잘 집중을 못했다. 꼼지락 거리고 지루해하기 일쑤였다.
엄마는 "똑바로!" "집중해!" 라고 잔소리를 했다.
셜리는 머리 속에서 열 뿔 가진 짐승을 지워 버리고
베드타임 스토리에서 읽은 (저자들이 실제 일어난 일들라고 보증한!) 이야기들을 상기해 냈다.
장난기많은 고양이, 그리고 귀여운 여자아이들 남자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다가 결국은 용서를 받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공상의 친구들이 찾아 오는 것이었다.
상상속의 비키는 집안이 카톨릭인데 상냥하고 정직한 애였다.
샘은 셜리 자신의 이름의 이니셜 S A M 과 같은 이름이었다.
이렇게 공상 속에 파묻혀서 지루한 안식일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공상의 나라에서 놀다가 갑자기 엄마로부터 야단 치는 소리를 들었다.
셜리가 방금 나쁜 일을 했든지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다.
셜리는 자신이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안했어요!"
그러면 엄마는 더 화를 냈다.
"내가 지금 방금 여기서 들었단 말이야. 이 아가씨야!" 엄마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말대답을 한다고 야단을 쳤다.
셜리는 화가 나고 혼동되어 뾰루퉁해졌다.
그러면 부모는 그 모습이 우습다고 웃기도 했다.
그 음침한 안식일교 교회당에서는 가끔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누가 더 경건하고 누구는 죄인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셜리의 할머니 메리에게 대놓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화잇 부인은 재림 신자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몸의 저열한 욕망을 제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세-ㄱ 스는 생식을 위한 것이었고, 심지어 결혼한 부부도 자제를 해야 했다.
화잇 부인이 "은밀한 악" "혼자 하는 악" 이라고 부른 ㅈ ㅏ ㅇ ㅟ 행위는 남자들에게는 끔찍한 죄악이었고
여자들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죄였다.
성적인 유혹을 피하기 위해 재림교인들은 건강개혁운동에 따라 채식을 했다
(중략. 미국의 채식 역사가 소개되고
켈록의 씨리얼, 피넛 버터, 로마린다의 베지버거 등이 소개되고...)
건강개혁의 일부로서 19세기 안식일교인들 중에는 '내부 세척' 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관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비는 남자에게는 과도한 정욕, 여자에게는 음란증의 원인이 된다고 믿었다.
쟌 하비 켈록 자신은 하루에도 몇번씩 관장을 했고
20세기 초반에만 하더라도 여러 종파의 많은 사람들이 관장을 습관으로 하고 살았으며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관장을 시켰다.
매디도 집의 샤워에 관장기를 매달아 놓고 있었다.
(중략: 열심히 믿어보려는 매디의 노력, 그녀의 정신적인 문제들, 우울증, 조울증...
사업에 실패하는 월터... 빚더미...이사...)
1928년에 셜리는 유치원에 들어갔다.
당시 안식일교회는 교회 학교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을 세상의 감화로부터 격리시키고 성경 교육을 시키기 위해 신자들은 자녀들을 교회학교에 보내야 했다.
그러나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셜리의 부모는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냈다
(중략)
집에는 Lady's Home Journal, Good Housekeeping 같은 여성잡지들도 있었다.
그 잡지들에는 실내 장식 뿐 아니라 뉴욕 파리에서 유행하는 최신 패션 사진들도 있었고
연애 소설들도 있었고
할리웃 배우들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표지에는 그런 이야기들을 암시하는 선정적인 문구들이 있었다.
이런 세속적이고 천박한 이야기들은 안식일교인들에게는 독이었다.
매디는 교회가 그런 것들을 금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안식일에도 남 몰래 그런 잡지를 읽곤 했다.
셜리는 엄마가 그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셜리 자신도 비밀이 있었다.
안식일에 셜리는 종이 인형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안식일에 이 인형들에 옷을 입혀도 되나 "
감히 물어볼 수 없었다. 어떻게 안식일에 인형 옷을 만들며 놀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실제로 하지는 않고 상상으로 인형 옷을 입히는 놀이를 했다. 생각만 한 것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생각까지 읽는다고 했다.
안식일교회 신학에 의하면 천사들은 사람들의 나쁜 생각을 하늘로 가지고 가서 기록책에 기록한다고 했다.
셜리는 베드타임 스토리에서 그렇게 읽었다. 무서웠다.
(다음에 계속합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드네요^^)
계속되는 글입니다
(부모가 왜 셜리를 삼육학교로 보내지 않고 공립학교로 보냈는지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시 경제사정이 안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부모들 자신이 안식일교회에 대해 일종의 갈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추측하고 있다)
어린 셜리에게 큰 슬픔을 안겨다준 사건은 할머니 매리의 죽음이었다.
쾌활하고 다정한 할머니는 셜리가 네살에 중풍을 맞았고
자궁경부암에 걸렸다. (김주영: 경건한 안식일교인 부부였는데 어쩌다가 자궁경부암이 걸렸을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셜리 집 2층에 사셨다.
할머니 방에는 그림도 많았고 할머니와 셜리는 찰흙으로 그릇도 만들었다.
소 그림들이 있는 농촌 칼렌더들도 많이 있었다.
할머니의 병세가 심해지자 엄마는 셜리가 할머니 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게 했다.
1931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셜리는 밥을 안먹어 체중이 줄었다.
교실에서는 주의가 산만했다.
선생들은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 어려서 가족의 죽음을 겪었던 사람들이었다.
셜리는 너무 곱게 자라서 부모에 의해 콩나물처럼 길러진다고 생각들을 했다.
당시는 형제 없이 홀로 있는 아이들은 그 자체로 병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자주 공상속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친구관계가 원만치 못하다고 여겼다.
(중략.
엄마 아빠는 셜리를 귀여워하고 사랑했음.
엄마 매디의 주기적인 우울증 발작.
셜리의 몇 안되는 학교 친구들. 그중 한명은 안식일 교인)
1929년 10월 경제 공황이 닥치자 안식일교인들은 재림이 정말 가까워왔다고 느꼈다.
아버지 월터는 자영업을 관두고 철물점 점원으로 취직했고
매디도 교인 환자를 돌보는 일을 했다.
할아버지 닐이 1935년에 사망했다.
할아버지는 사망하기 직전 몇년동안
세계 경제의 몰락과 세상 끝의 예언을 연결시키는데 열심이었다......
경제사정은 더 악화되어 월터는 십일조를 그쳤다.
셜리는 계속 공립학교에 다녔다.
당시 삼육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졸업하면100 마일 이상 떨어져있는 아카데미 기숙사로 보내졌는데
셜리의 부모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셜리는 고등학교까지 공립학교에서 마쳐야 할 것이었다.
그러한 결정은 셜리에게 매우 힘든 결과를 가져왔다. 셜리는 학교에서 심각한 어려움들을 겪게 된다.
학교에서는 늘 겉돌았다.
아이들이 다 다니는 주일학교에 가지 못했고,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저녁에 주로 열리는 급우들의 생일 파티에도 가지 못했다.
평일에 열리는 학교 행사에서도 댄스나, 카드놀이나, 체커 같은 놀이도 못했다.
안식일교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당시 학생들에게 중요한 사교활동이었던 방과후 바베큐에도 가지 못했다.
어떤 아이들은 셜리의 채식과 가짜고기를 놓고 놀렸다.
"소 여물" 이라고 놀렸고, 셜리는 "하얀 유대인"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셜리는 자신의 신앙이 야속할 때가 있었으나 그렇게 느낀다는 자체를 두려워했다.
그것은 사단의 역사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번 아빠에게 그 문제를 얘기해 보고 싶었으나
평소 과묵하고 일중독이었던 아버지는 심각한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했다.
특히 신앙의 문제에 관해서는 더 그랬다.
엄마는 더 문제였다.
학교에서 기분이 상해 집에 오면 엄마는 집요하게 캐물었고
셜리는 결국 토요일에 열리는 무슨 모임에 가지 않게 되었다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 엄마는 역정을 냈다.
"걔네들이 파티를 다른 날 하면 되잖아? 니가 안식일날 못가는 걸 뻔히 알면서... 너에게 물어보지도 않더란 말이야?"
그러고는 갑자기 톤을 바꿔서 부드럽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셜리야, 우리 뭔가 특별한 걸 하자. 너하고 엄마하고만 말이야. 엄마는 너를 사랑해.
너나 엄마는 다른 애들이 무슨 일을 하든 상관 없어. 걔네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고는 셜리를 데리고 가게에 가서 인형을 사주는 것이었다.... ....
셜리는 자신을 학교 친구들에게서 분리시키는 것이 자신의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의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상관 없어" 샐리는 자신에게 그렇게 다짐했다.
"나는 쟤네들 사회에 속하고 싶지 않아."
그러고 셜리는 신앙에 집착하여 "문자 그대로 완전" 하게 되도록 노력하기에 이르렀다.
믿는 이유를 찾기 위해 신앙 서적을 탐독했다. 성경절을 여러절 암송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환상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셜리가 정작 좋아한 것은 그림을 그리고 인형 옷을 만드는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인형은 50개가 넘었다.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공상에 잠겼다. 자신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친척 중에 누군가가 몰래 내 그림들을 다지 카운티 경연대회에 출품한다.
내 그림은 1, 2, 3등 뿐 아니라
장려상까지 다 휩쓴다. 대회에서는 시상식에 와서 상을 받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거절한다.
자부심이라는 건 죗된 것이니까.
셜리가 이런 공상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때는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게 될 정도였다.
6학년 때 되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아마도 대공황 동안 안식일교인들의 강렬한 종말 신앙 분위기에서 연유한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셜리는 시간에 대한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인형 놀이나 그림 그리기를 하다가 갑자기 엄마가 산책을 하자가 불러낼때 까지 이걸 끝마치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게 된다.
집 밖에 나와 있으면 갑자기 집에 불이 나서 인형과 그림들을 다 태울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후략)
제목이 [우리 집안의 가족사] 라는 것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슬퍼집니다.
저와 제 아이들은 어떨까하고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음의 신조들을 생각할 때...
그것이 조금이라도 어둡게 보이거나 생각되는 측면이 느껴진다면
버리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 일을 이루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빛(환함)을 비취라는 멋진 명령에 정말 감사함을 느낍니다. ^ ^
즐독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