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이 내 일생을 뒤집어엎어 버린 사연

by 김민철 posted Oct 31, 2011 Likes 0 Replies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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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 장로님께서 대 쟁투를 끝까지 읽지 않았다고 고백(?)하셨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예언의 신과 접하게 되어 대 쟁투를 두 번, 세 번 반복해 읽은 것은 물론이요,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실물교훈", "증언보감"......등 번역된 책들을 모조리 탐독했었다.

특히 정로의 계단(Steps to Christ)은 영어 원문을 암기하여 지금도 부분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Nature and Revelation alike testify God's love. Look at the wonderful and beautiful things of nature...........)

 

그 때, 나는 예언의 신에 "뻑" 넘어 갔고, "뿅" 가버렸다.

드디어 한삼고로 가기로 마음 먹게 되었는데, 당돌한 꼬마의 무모한 행동이며 학교와 집에서는 난리가 터졌다.

당시에 대학입학은 중학교에서 결정이 나던 상황이었는데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대학이 결정된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졸업생의 절반이상이 좋은 고등학교를 거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입학을 했었다.

나는 수석졸업을 했었기 때문에 대학과 전공학과의 윤곽이 잡혀 있었고 학교에서도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 한삼고는 100명의 학생을 채우지 못하여 2차, 3차 모집을 하던 학교였는데 나는 당당하게 1차 지원을 했다.

중학교 선생님들과 집 식구들의 기대를 무시하고 만용을 부린 이유는 단 하나, "예언의 신"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한삼고에 입학한 다음, 첫 눈에 들어 와서 친해진 유일한 친구가 지금의 김원일교수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외인 것이 "예언의 신"때문에 나는 이 학교에 왔는데, 이 친구 생각은 영 시원치가 않았다.

"야는 모태교인이라면서 예언의 신, 이 엄청난 책에 대해서 이토록 시쿤둥하고 덤덤한 반응을 보이나?"

상당히 의아한 생각이 들면서도 어쨌거나 학교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심각하게 폼 잡고 조잘댄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이어령 교수의 "흙 속에 저 바람속에....", 김형석 교수의 "고독이라는 병" 어쩌구 저쩌구 설 푸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고~~, 이 친구 믿음이 영 엉망이네, 어이할꼬?" 한탄을 했었다. 하하하......^^

물론 그 이후에는 유치하고 웃기는 책들을 가지고 심각하게 주접떨었다고 어려서 그랬던 걸로 돌리고 재미있게 웃었다.

그러나 나이를 감안하면 "예언의 신"과 비교해서 열 배, 백 배는 수준도 있고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이었다.

 

한삼고를 졸업하고 어찌어찌하여 연세대에 입학하였는데, 한삼고 선후배는 한 명도 찾을 수 없었고 중학교 동창들이 널려 있었다.

한삼고에서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를 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내가 원하든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내 일생에서의 진로 방향이 제대로 잡히지 않게 되었고 많은 난관을 겪어야 했다.

"예언의 신"을 읽지 않았더라면 내 일생의 방향이 달라졌을 것이고, 제대로 된 하나님을 찾고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언의 신"이 중학교 2학년 정도의 지적 수준을 충족해 주고, 충분히 매료시킬 만한 이론적 배경이 있는 건 맞다.

그러나 화잇의 "예언의 신"에 기초한 재림교회의 교리와 신학적 이론은 거기까지가 한계이다. 중2 수준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더 이상의 발전적 사고를 요구하지 않을 뿐더러, 더 이상의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신앙과 사고가 필요하지 않은 교회이다.

중학교 2학년의 수준에서 탈피하자는 것이 아래 김원일교수가 쓴 글의 취지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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