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생들에게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강의를 하다가 이곳 민초 여러분에게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나서
제가 쓴 <세계종교 둘러보기>라는 책 중 조로아스터교를 다룬 부분을 퍼 옵니다.
읽으시면 신기하다고 느끼실 부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종교학의 창시자 맥스 뮐러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기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남의 종교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즐독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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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
지금부터 이른바 ‘서양 종교들’을 살펴볼 차례다. 일반적으로 ‘서양 종교’라고 분류되는 것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이다. 그러나 그 근원지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이 종교들도 ‘서양 종교’일 수가 없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지금의 팔레스타인에서 생겼고, 이슬람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나왔다. 모두 서양이 아니라 중동 지역이다. 그러나 유대인이 유럽 여러 나라로 가서 살게 되었고, 그리스도교도 유럽으로 가서 유럽 사람들이 신봉하는 종교가 되었으며, 이슬람도 근본적으로 이 두 종교를 기초로 해서 생긴 종교라는 의미에서 이들을 서양 종교라 분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지금 서양보다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더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이런 문제를 길게 논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머지 않아 그리스도교는 서양 사람들의 종교라기보다 비서양인의 종교가 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세 서양 종교들을 다루기 전에 또 한 종교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고 지나가야 한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이다. 이 종교는 현재 신도수가 고작 25만명 정도에 불과한 아주 작은 종교이지만 세계 종교사에 끼친 영향력 때문에 세계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이 종교에서 가르치는 많은 것들이 유대교로 들어갔고, 유대교를 통하여 그리스도교로, 그리고 그 후 이슬람교로 들어갔다. 그리스도교 마태(마태오)복음에 보면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동방 박사들’(magi)이 아기 예수를 찾아 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동방 박사들’은 바로 조로아스터교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신성시하므로 이 종교를 배화교(拜火敎)라고도 한다. 현재 많은 신도들이 인도 봄베이 지역에 살고 있고 인도에서는 이들이 페르시아에서 왔다고 하여 파르시(Parsis)라 부른다.
창시자 조로아스터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는 조로아스터(Zoroaster)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에 나오는 주인공이 바로 이 조로아스터이다. 그의 출생연대는 극히 불확실하다. 전통적으로 기원전 660년에 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기원전 1000년에서 600년 사이, 심지어는 14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살았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본래 이름은 짜라투스트라 스피타마였다. ‘짜라투스트라’라는 말은 ‘낙타를 가진 이’라는 뜻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여러 전설적인 자료에 의하면, 그가 성인이 되어 여러 가지 삶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그 해답을 얻으려고 방랑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요한 나이 30’에 이르러 어느 날 그 크기가 사람의 아홉 배나 되는 거대한 천사장을 만났다. 그 천사장은 세상에 오로지 한 분 참된 신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바로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이고 조로아스터는 그의 예언자라고 일러주었다 한다. 그 후 8년 동안 아후라 마즈다의 나머지 다섯 천사장들이 하나씩 나타나 그에게 진리의 기별을 전해주었다.
조로아스타는 그 진리를 전파하기 시작했지만, 모두 그가 미친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그의 사촌 중 하나가 그의 말을 믿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조로아스터와 그의 사촌은 왕에게 진리를 전하려 갔다. 투옥으로 2년간을 보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결국 왕과 온 조정이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조로아스터교는 전국으로 급속히 퍼졌다. 어느 경우는 전쟁을 통해서 퍼져나가기도 했는데, 이런 전쟁 도중 적군이 쳐들어와 불의 성전 안 성화(聖火) 앞에 서있는 조로아스터를 발견하고 살해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일흔 일곱이었다.
기본 가르침
조로아스터의 기본 가르침과 그 가르침에 기초한 조로아스터교의 신앙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신관: 이 세상에는 한 분 참신이 있는데, 그가 바로 ‘아후라 마즈다’로서,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라는 것이다. 아후라는 ‘주’(主)라는 뜻이고, 마즈다는 ‘지혜’라는 뜻이므로 아후라 마즈다는 ‘지혜의 주님’이라는 뜻이다. 조로아스터는 아후라 마즈다 이외에 그 당시 사람들이 섬기고 있던 다른 잡신들은 모두 거짓 신들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주위에 있던 모든 종교가 많은 신을 섬기는 다신론(多神論)적 종교였던 사실을 감안하면 그가 이렇게 철저한 유일신관(唯一神觀)을 선포했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중략)
아후라 마즈다는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직접 나타나지 않고, 여섯 가지 불사의 존재(Immortals), 혹은 천사장(archangels)들을 통해 나타나는데, 여섯 중 셋은 남성적이고 다른 세 가지는 여성적이다. 이 여섯 가지 존재는 지혜, 사랑, 봉사, 경건, 완전, 불멸 등 아후라 마즈다의 여섯 가지 속성을 대표하는 존재들인 셈이다.
이런 여섯 천사장들 외에도 아후라 마즈다의 보좌를 둘러 싸고 있는 천군천사의 무리가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잘 알려진 천사들 세 명은 아후라 마즈다의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수호천사인 스로샤(Sraosha), 그의 누이로서 착한 일을 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는 아시 반구히(Ashi Vanguhi), 그리고 가장 힘이 세어 전사(戰士)들의 이상인 미드라(Mithra)이다. 미드라는 나중 로마에서 크게 유행하던 미드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2) 악령: 조로아스터에 의하면 아후라 마즈다에서 두 영들이 나왔는데, 하나는 선한 령 스펜타 마이뉴(Spenta Mainyu)이고 다른 하나는 악령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이다. 마치 태극에서 음양이 나왔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물론 음양 사상에서는 앞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본래 선악 개념이 없었다는 점이 다르기는 하다. 악령 앙그라 마이뉴는 몇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샤이틴(Shaitin) 혹은 사탄(Satan)이다. 그의 주위에는 악마(demons)의 무리들이 있어 그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을 시험하거나 괴롭히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세계에서 최초로 악마에 대한 계보를 체계화한 종교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면에서 조로아스터교는 이른 바 악의 문제에 있어서도 종교사적으로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다.
3) 대쟁투: 조로아스터교에 의하면 세상은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이 싸우는 대쟁투의 현장이다. 인간은 이 두 세력 중에서 어느 한 쪽에 가담해야 한다. 인간은 타고 난 이성과 자유 의지를 활용하여 선한 길을 택하므로 이 생애에서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국 이런 이분법적 양자택일에서 어떤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4) 종말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3일간 몸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자기가 한평생 행한 일을 돌이켜보고, 제4일이 되면 심판대로 나아간다. 거기서 천사 미드라가 우리가 행한 행위를 저울에 올려놓고 심판을 한다. 악 쪽으로 기울어지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가고 약간이라도 선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그 영혼은 낙원으로 가게 된다. 영혼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여진 ‘분리의 다리’를 지나게 되는데, 다리 밑은 지옥이고 다리 저편은 낙원이다. 선한 영혼은 넓고 편안한 다리를 건너서 낙원으로 가고, 악한 영혼은 칼날보다 더 예리한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지옥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다.
낙원과 지옥에 간 영혼은 거기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아후라 마즈다가 예정해 놓은 세상 끝이 이르면 그는 이 세상을 완전히 쓸어서 창조 때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회복해 놓는다. 이 때 영혼들이 부활을 하고, 악한 영혼들은 순화되어 선한 영혼들과 합류한다. 그러나 사탄과 그의 악귀들은 유황불에 완전히 소멸되어 새 세상에는 더 이상 악이나 악의 흔적이 없게 된다. 늙는 일도 죽는 일도 없어, 어른은 40세, 아이들은 15세의 상태를 유지하며, 아후라 마즈다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된다.
조로아스터교의 공헌
기원전 586년 유대 왕국의 멸망으로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 살았다. 기원후 538년 고레스(Cyrus) 왕이 일어나 바벨론을 명망시키고 메도-페르시아 왕국을 건설했다. 히브리 성경에 의하면 고레스 왕은 유대인을 해방시키고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허락한 ‘메시아’였다. 조로아스터교는 바로 고레스 왕과 그의 제국이 신봉하던 종교였다.
자연히 유대인들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 어느 정도로 어떻게 받았을까?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기원전 586년 포로로 가기 전의 유대교와 538년 포로에서 풀려난 이후의 유대교에 엄청난 변화가 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포로 이전에는 천사장이라든가 사탄이라든가 육체 부활이라든가 심판이라든가 낙원이나 지옥이라든가 세상 종말이라든가 하는 개념이 없었는데, 포로 이후에 쓰여지거나 편찬된 문헌에 비로소 이런 것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 당시에는 이런 개념들이 유대교 신학의 근간을 이루게 되고,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개념들을 그대로 도입했다. 이슬람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통해 무리없이 이런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현재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 이런 것들을 빼어놓으면 무엇이 남을까 할 수 있을 정도로 조로아스터교가 이들 종교에 기여한 공로는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과히 획기적인 것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읽으면 좋을 책
Boyce, Mary. Zoroastrians: Their Religious Beliefs and Practices, 3rd ed.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88.
Zaehner, R. C. The Dawn and Twilight of Zoroastrianism. London: Weidenfeld & Nicolson,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