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 재림마을에 올린글인데

by 지경야인 posted Nov 15, 2011 Likes 0 Replies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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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샘물님의 글을 일고 다시 읽고 댓글들을 읽으면서

저와는 너무나 다른 내용에 뱃속에 모든 것을 토해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안식교의 사상이 이런 기복신앙이라니

전안식일이라는 날짜에만 연연하는 안식일교회 보다는 언제나 안식을 주는 교회인 안식교를 더 선호합니다.

안식교라 한다하여 우리교회를 폄하한다.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교회를 떠난 000님에 대한 변명

에서의 이야기는 너무나 저와 반대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록 방위군생활을 했지만

5공의 무시무시한 군사정권하에

그 찌끄러지들이 안하무인으로 온통 짓밟던 시절

1월에 안식일날 입소하게 되어

비 삼육학교에서 학생간부로서 참 어렵게 안식일을 깨닫고 지키며

당시 천주교인 담임의 월요일마다의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지켰던 그 안식일이 입소일 이었습니다.

금요일 이미 집을 나서 훈련소 인근 합회 청소년부장 목사님 댁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함께 기도만 받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안식일이 다하여 해가 저물어 입소하고

군인이 최고의 직업이라고 우리나라 모든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떠버리던

쿠데타의 그 고향 장교에 걸려서

너 왜 이제 입소를 했느냐고 물을 때 안식일 때문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 이렇게 늦었습니다.

 

아주 원 없이 터졌습니다.

몇 날 며칠을 당했습니다.

온 신병 훈련소에서 다 알려졌습니다.

하루는 아침부터 불려가서 저녁 일과가 끝날 때까지 원산폭격을 했습니다.

머리에서 피가 났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아직도 목이 항상 편치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때 그곳에

우리 내무반에 저 외에 3명의 안식일교인이 있더란 말이죠.

뿐만 아니라 같은 중대에 훈련 조교 중에 장로의 아들이며 삼육출신이 또 2명이나 있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군에서의 안식일은 어렵습니다. 란 말만 하고

또 뭐 그렇게 요란하게 안식일을 지킵니까? 이었습니다.

 

방위 생활 내내 특별교육은 빠짐없이 받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군부대에서 행하는 점호에 안식일마다 하는데 안식일날 교회가고

다음 월요일은 어김없이 특별한 교육으로 원 없이 굴렀습니다.

그때 고향 다른 교회에 청년 몇이 같은 방위였는데 특별교육장에서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

하나는 유명한 장로님 아들로 지금 훌륭한 삼육학교 교삽니다

한분은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부모를 잘못만나서 밉상이어서 일까요?

기도가 부족해서 일까요.

 

청년 때는 밤11전에 잠을 자보질 못했습니다.

4km떨어진 교회에 걸어서 갔다 걸어오는데

5시에 교회로 가서 6시에 톱밥난로 피우고

청소하고 아이들 불러다가 어린이 반하고 9시에 장년하고 집에 오면 11시였습니다.

예배가 없는 날은 제가 사는 마을과 분교를 만들어서 어린이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교회 체육대회하면 150명~200명씩 모였습니다.

태풍에 우리 벼는 다쓰러져서 1주일 동안 세워야 했습니다.

농한기에는 쉴 새 없이 평신도신학을 비롯하여

낮에는 봉사활동 밤에는 전도회

전도회 및 뒷수습 활동

결혼 후 양봉을 하면서 또한 지압과 봉침을 무료봉사하니

각지에서 구도자라고 모시고 오셔서 농사일하다가도

멀리서 오신 분들에게 최선 껏 치료해 드리고

그리고 어느 겨울 제가 대장 겸 강사로 수고하여 목사도 전도회 도중 아무도 안 나와서 가버리고 당시 지역 최고 영성 깊은 장로도 전도회하다 포기한 교회

저희가 전도회를 하겠다고 하자 당시 소장님이 극구 사양하던곳에서

그 전도회로 새로 나와서 침례 받아 교회 주축이 되는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때 나온 교인들이 헌신하여 교회가 새롭게 성전을 건축하게 되어 15일 동안 교회 건축 봉사하는 동안 봉군에 막대한 피해를 당하여 몇 천만 원 손실을 당하고

 

전도회에 수없이 초청되니 일이 어긋나기를 많았었지만

하나님의 일이 본업이고 세상일은 부업이라고 늘 말하며

다른 이들은 저녁에만 잠깐 참석하는 분들이지만

저희 부부는 아침부터 밤까지 마사지와 봉침 수치료등으로

양봉으로 얻은 꿀은 지역의 독거노인에게 또 장애인들에게 양노원에 음성 나환자들에게

지역의 목회자들에게 교회를 방문해주신 합회목사님들에게 부흥회오신 목사님들에게

한해에 120병 이상의 꿀을 드렸고

그래서 지역 신문에도 수 차례 나오고

군수 표창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우리 집엔 부모님과 부부 자녀가4명인데

거기에 양딸이 한명 더 있었습니다.

양딸을 키워 결혼시키던 해에

꿀 한 방울 나오지 않고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후 8년째 양봉은 흉작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빚으로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처량하게도 내가 제일 믿었던 친구들이

정말 교회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던 친구들

전도회할 때 나와 손발이 너무 잘 맞아서

우리 전도 팀은 항상 초청하고 싶어 하던 그 전도 팀인데

그 친구들이 그 결혼식에서

내 친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조사에 친구들의 모임 규정대로의 축의금이 아닌

그저 조그마한 성의를 보이는

내용을 보고 아하 교인들도

아니 교회 친구들도 세상 사람보다 더 계산적이구나? 여겼습니다.

어려운 사람 불쌍한 사람 문제가 많은 사람을 더 많이 도와야한다고 그리 말하던 친구들이

 

 

십일조 혹시라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을까

가계부를 작성하여 냈습니다.

월정헌금도 넘치도록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와야할 사람이 있으면 재물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옷을 사서 입지 않고 항상 얻어 입고 아내와 자녀들도 마찬가지 이었습니다.

저야 남자니 괜찮았지만 아내는 항상 몸에 안 맞는 옷이 구질구질하다고 교인들에게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직접 모시고 침례 받게 한분만 40명은 넘을 것이며 그 밖에

성경학교부터 꾸준히 성장하여 침례 받은 사람은 또한 간접 효과로 는 수가 얼마인지 모르지만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가난하여지지 않는다고 한 말씀을 믿었습니다.

지금 저는 파산했습니다.

주님오십니다!

준비합시다!

열심히 외쳤습니다.

그리고 진짜 오실 줄 믿고 살았습니다.

우리아이들은 얻어 입히고 과외하나 안 시키고

결국 별 볼일 없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결국 10평짜리 지하 곰팡이 핀 집에서 살면서 교회 관리인으로 삽니다.

고향에서 12인승 승합차와 더블 캡 화물차는 교인수송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운영비가 많이 듭니다.

모두 제가 냈고 보험료도 모두 제가 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면 차가 미어터지도록 교인들 모시고 다녔습니다.

서울와서 그 교인 중 한명의 자녀가 어려워 지금 이 작은 10평집에서 같이 삽니다.

몇 년 동안 물이 새고 곰팡이 피고 살지 않던 옆집을 그 아이를 위해서 몇 달 동안 시간 나는 대로 고쳤습니다.

교회 직원회의에 기왕 못 쓰는 집이니 제가 고쳐 쓰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그러라고 했습니다. 직원회의 결과로 받아들고 어렵게 고쳐서 몇 달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청소를 안 하느니 전기를 많이 쓰느니 잡음이 들리더니.

교회 장로님이 어려우니 그만 그 집 내놓으라고 합니다.

직원회의도 거치지 않고 일방통보로.

나도 38에 장로를 해서 십 수 년을 장로로 살아서 교회일 을 어떻게 처리하는 줄은 잘 압니다(지금 여기서는 장로 아닌 집삽니다)

냄새나고 썩고 곰팡이가 펴서 도저히 살기 어려울 때 장로님이 고쳐서 들어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냥 말없이 장로가 어려우니 그분이 살도록 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제가 관리인으로 들어와서 교회가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반짝반짝한다고 말하더니

2만원의 전기세가 많다면 2층 젊은 목사 부부에 아이 3명이 5만원은?

주로 채식만하는 제가 그때의 실망으로 알레르기가 생겼습니다.

도대체 채식만하는 제가 알레르기체질이 되다니요

 

하나님 잘 믿고 건강식 잘하고 십일금 잘 내고 봉사 잘하고 그러면

만사가 형통합니까?

저도 교회이야기 한마디 하지 않았어도 목사냐고

교회 다니시냐고 수없이 들었습니다.

봉사 활동할 때 기적 같은 치료 경험 수 없이 많았고

수십 년 산속에서 수도한 전설에 나오는 도사님 같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

온갖 칭찬을 다 들었지만

저의 형편은 지금 현재는 비참합니다.

시골 생활 외치던 교수 목사님 정년 다 채우고 온갖 영화 다 누리고

자녀는 삼육대학 근무하고

종말이 가깝다고 그리 외치던 목사는 아태지회장하고 있고

교인들 자랑하는 소리 듣자하면

몇 평 아파트에 살고 돈을 얼마를 벌고 자녀는 무슨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닌다.

하나님 축복 많이 받았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이교회가 진리교회가 맞습니까?

그럼 왜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표리부동한 일들이 이렇게 많습니까?

말씀대로 살면 부자 되나요

제가 생각한다면 분명 가난해져야 맞습니다.

안식교회는 기복 신앙 하지 않는다면서요?

큰 교회들 기복 신앙으로 교인들 꾄다면서요?

그래서 아무리 큰 교회일지라도 부럽지 않고

진짜 진리를 믿는 교인들만 알곡들만 모이는 교회라면서요

제발 십일조 잘 내서 복 받았다는 이야기 안식일 잘 지켜서 복 받았다는

봉사 잘해서 복 받았다는 이야기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잡신을 섬기는 무당들도 그보다 더 많은 복을 내린다고 말합니다.

조상신이 발복해서 로또에 당첨되고

그런 간증은 교회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평가한다면 우리 하나님은 잡신보다

훨씬 못한 분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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