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서 김균님이 악어눈물속에 숨은 가짜복음을 구별하자고 글을 쓰셨습니다...
전 원글은 되도록 안쓰려고 하는편인데(한글도 잃어 점점 단어가 바로바로 안 떠오르고 영어도 안느는 제 주제를 잘알아서 ㅋ)...
아무도 반응이 없어 다른 분들의 생각이 ... 그렇다는것인지... 아니면 영양가 없어( 김균님 지송) 그냥 제끼자?는 주의 인지...
그 글에서 '아' 다르고 '어' 달라야 하지않을까 해서 글을 남겨봅니다...
그건 그렇고.....
김균님께서 아래 글에,
갈1:7-9 하나만 갖고 그러시는데....
물론 행위의 결과로 구원 얻는 다는것.. 계명을 지켜서 그 결과로 구원을 얻는 다면 틀린말이지요...
그러나
다른성경절도 좀 보시지요
약 2: 21 "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2:22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엤느니라"
약2:24 "사람이 행함으로 의 롭다 하심을 받은것이 아니냐"
약2:26 "영혼업슨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것이니라"
이렇듯 율법과 복음을 분리시키는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아닐겁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것이 아니고 그 믿음이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가 포함되었을때에 믿음의 조상이 된겁니다.
갈라디아서만 보시지마시고 야고보서도 좀 보세요...
야고보서는 믿음과 행함을 잘 묶어? 주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마음으로는 고백하지만 자기를 굴복시키지 않음으로 순종에 이르지못할때 믿음과 행함이 분리되는것입니다..
성화의 경우도 그렇게 자꾸 안티 ㅋㅋ 하시지 마시고 .....
벧후 3:18 " ~ ~ 자라가라 ~~~~"
요17:17 은 영문으로 보세요
롬 8:26, 히2:18 등 등 을 다시 읽어 보세요..
하나님을 믿고 그 백성이 되어 있고 말씀의 씨가 뿌려 졌으면 그 말씀에 따라 점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해 가라는 말로 이해하시면 안되겠어요?
그러나 우리 의지로 되는것아니고 우리힘으로 되는것아니지요...성령께서 도와주셔서 성화되는것이지요... 뭐가 잘 못된 복음 일까요?
인간들이 이해하기좋게 신학적으로 나누어 설명하기 시작했겠지만...
어쨌든 인간의 구원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것이 칭의부터 성화 영화까지로 표현 되건 안 되건).... 오직 믿음으로만 되는것 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되는것...... 이 신앙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마지막 성도의 신앙입니다.
주의해야 할 진짜 가짜복음은,
" 내가 믿씁니다." 라고하는 고백이 자기를 구원해주는 줄 착각하는겁니다....그 고백이 자기를 구우너해 주는 줄 알지만 그 마음속에 예수님이 없는경우 말입니다...
마음속에 예수님을 영접하는것, 그 믿음이 말씀을 받아들여 내안에서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내 영, 혼, 몸을 일깨워서 살게할때 순종이라는 열매가 맺혀지는 것이지요.
이것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글에서도 그 향기를 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코멘트를 않한 이유는 이문제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나중 예수님 인성문제와 묶어서 코멘트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믿음" 구원" "율법" "대속" 등의 근본적인 전제 부터 확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율법과, 믿음, 구원 등을 따로 놓고 아무리 발렌스를 맞추려 발버둥 쳐봐야 결국 한쪽으로
치우칠수 밖에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칼바니즘과 알미니어니즘은 율법주의로 갈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 하지만 그게 "진짜 믿음"인 지 아닌지 알기 위해선
자신의 행위를 볼수밖에 없고...결국 자기 자신의 믿음의 진정성을 "증명" 하기 위해선
행위적인 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왜그너와 죤스가 이 믿음과 율법의 평행성을 너무쉽고 멋있고, 복음적으로 해결을 했고
그걸 본능적으로 (제 생각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깨닭은 화잇은 "세천사의 기별" "큰외침" "늦은비 성령" 등의 미사구를
쓰며 서포트 했지만 그걸 당시에 "신신학" 또는 "범신론" 으로 오해한 재림교 리더들이 강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되고...
아직도 우리 교단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주로 알미니어니즘적이거나, 알미니어니즘과 칼바니즘의 짬뽕적인 견해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나 왜그너와 죤스가 교단과 멀어졌기에 교단 신학자들이 그분들의 사상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 그분들의 사상이 화잇의 "대쟁투" 모델을 확실히 다지는 중요한 insight 라고 생갑합니다.
암튼 우선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케 하는 "법적인 대속" 부터 근본적으로 해결을 봐야 할듯 합니다.
그게 안되면, 결국 구원은 "어떻하면 하늘에 가느냐" 의 공식으로 전락되며 이 공식으론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율법주의로 부터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아무리 "오직 믿음"을 주장 한들 그 믿음이 하늘 들어가는 하나의 방편, "용서 받는" 하나의 방편 이라면
그 믿음은 드러난 행위를 동반 하던 안하던 하나님 사랑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자기의 "구원"을 위한
"욕망"일 뿐, 하나님과 "신뢰 관계"를 맺게 해주는 매개체는 아닐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가요?
약속대로 나중에 더 자세히 말씀 드리겠지만...
일단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