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미련님께 단 댓글이었습니다만,
돌베개님을 비롯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계속 토론이되고 있길래
원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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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종종 말씀하시는 그 십자가의 사랑이 자동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싶게 만드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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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적이십니다. "오직 사랑으로만 사랑이 일깨워 진다" 라고 누가 밀한것 같습니다. ^^
사실 믿음, 행위, 구원등을 너무 세분화해서 생각 하면, 이기주의적 믿음에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제 짧은 소견에는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하면 "믿음"자체도 일종의 "merit" 로 착각할수있습니다.
하나님의 말도 안되는 십자가의 사랑을 깨닭을때 자기 자신은
"자동적으로" 녹아버리고 그 놀라운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살고픈 마음이
꿈틀 거리게됩니다. (사랑이 일깨워 지는 순간이겠죠). 이건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되는 것이지 우리 노력으론 불가능합니다.
노력으로 사랑이 생긴다면, 이세상에 "사랑"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없어지겠죠.
여기서 우리가 하는 "일"이있다면 성령님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것입니다.
resist 하지않는게 우리가 "하는" 유일한 "일" 입니다.
거부만 안한다면 십자가 밑으로 인도될것이고
거부만 안한다면 십자가 그늘 밑에서 자신은 죽고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경험을 할것입니다.
이 경험안에 "믿음" "구원" "행함" 이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자신만을 위해살던 나의 마음에, 이기주의 적이던 나의 마음의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
이타적인 사랑이 마음에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자기자신의 감옥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체험하는 순간이고,
이기적인 죄의 속박으로 부터 "구원"받는 순간이고
이타적인 사랑의 "율법"이 마음에 새겨지는 순간이고,
그 놀라운 사랑을 내게 배푸신 예수님을 신뢰 (믿게되는)하게되는 순간입니다.
이타적인 사랑의 마음에서 이타적인 사랑의 행위가 나오는건 당연지사 일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행위가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의"이지만, 실질적으로 그 "의"가 "의"가 되는 건
마음에 새겨진 이타적인 사랑의 동기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이관점에서 볼땐 믿음 자체도 하니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자기 자신이 경험적 증거도 없이 "덮어 놓고" 믿는건 아무 의미도 없는
"자기확신"에 불과 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진정한 믿음으로 말미암는의 는
덮어놓고 "자기확신" 잘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의롭다고 "쳐"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우리 마음안에서 예수그리스도와 진정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신뢰"관계가 형성될때,
하나님께서 같은 성령의 역사로 우리 마음에 새로운 이타적인 사랑의 씨를 심어주시고, 그것을 "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기확신 적인 "믿음"이 "많다고" 그 사람을 의인으로 "쳐" 주시는건
논리적으로나, 공의관점으로 보나, 또 십자가의 사랑의 관점으로 볼때,
돌배게 님 말씀대로
"말도 안되는 사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죄송합니다, 논리적인 갭이너무많아서...^^
더 자세한 논리는 조사심판 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펴보겠습니다.
글로 인하여 제가 판단을 받고 있다고 느끼니 글쓰기가 조심스럽습니다. ^ ^
(님께서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님의 글중에 [하나님의 말도 안되는 사랑을 깨달을 때....]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정말 아멘!이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사랑을 깨달은 자들은 계속 그 말도 안되는 사랑의 깨달음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합니다.
혹 이하의 글이 행함을 배척하는 것으로 스스로 느껴지더라도...쓰겠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사랑을 맛본자들은 그 사랑을 막는 것에 대하여는 움추러들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안식일을 기다리고 기쁨으로 맞이하나 안식일 준수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나 예배의 형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몸의 건강함을 위하여 스스로 절제하나 절제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계명을 사랑하나 계명준수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나 이웃사랑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오직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를 이야기하며 또 꿈꾸며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남은자손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래서 상기의 이야기(붉은 색 글자들)들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움추러들게 됩니다.
오해가 있을까봐 ( )를 추가하였습니다. ^ ^
저의 시각과 믿음은
"아브라함처럼 순종하고 믿어라" 또는 성경에 나오는 "누구처럼...." 이라는 종류의 말을 들으면 움추러들게 됩니다.
저의 시각과 믿음은 아직
아브라함을 이끄신 하나님, 가인을 이끄시는 하나님, 다니엘을 이끄신 하나님에 촛점이 맞추어지며 또 계속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게는 [아브라함처럼...]과 이미 우리들이 알고 있는 법과 예절과 규칙들이 동일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에 위축되는 것처럼 이미 우리들이 알고 있는 법과 예절과 규칙들에도 위축됨을 경험합니다.
막연히 "그건 아닌데..."하면서 말입니다.
법을 법대로 쓰면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예절과 규칙들도 올바로 쓰면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예언도 올바로 쓰면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법으로, 예절로, 규칙으로, 예언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도 안되는 사랑과 십자가가 투영되고 보인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하나님의 말도 안되는 사랑과 십자가가 보인다고 거기에만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은 또 다른 것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저와 학생님과 이 교회를 점점 더 밝은 진리(하나님의 말도 안되는 사랑과 십자가)로 이끄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