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단의 친일행각 고발

by 가을비 posted Nov 18, 2011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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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단의 친일행각 고발

<<다시 써야할 한국 기독교사>>

발행처: 풀빛목회, 1993년 4월 발행
저자: 이선교/1942년 11월 평양 동산동 출생, 성결교신학교 졸, 서울 신학대학원 졸, 현재 수유리 백운교회 담임목사


1939년 성결교회 이명직 목사는 기독교가 서양종교가 아니라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지지하면서 일본은 로서아보다 기독교를 보호한다고 일본을 찬양하였다. 그는 1940년 9월 10일 성결교회 제9회 이사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였다. 즉 "우리는 성서교훈에 의하여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 난 줄을 믿으며... 국법을 순종한다"로 개정하였다.

1941년 활천 9월호에 그는 "우리는 황국의 신민이다.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세계 어느 곳으로 가든지 일등국민의 대우를 받는 것이다. 만세일계 천황봉대에 천황의 적자이다... 이것은 실제로 영광이다"고 하였다.

1940년 5월 31일 성결교 산하 성서학원이 경성신학교로 승격되어 11월 5일 오후 2시 개교식 때 궁성요배, 황국신민서사제송, 만세삼창 등을 하여 조선총독부에서는 성결교총회에 대해서 굳이 신사참배를 결의해 달라고 요청할 필요가 없었다.

1938년 12월 12일 홍택기, 김길창, 양주삼, 김종우, 이명직 목사 등은 전국 기독교를 대표해서 일본의 이세신궁 가시하라신궁 등에 참배를 하였다. 이때 홍병선 목사는 "황국신민으로서 신사참배는 당연하다"고 하였다. 

1939년 10월 8일, 경성 성서학원 강당에서 일제의 앞잡이 조직인 국민정신총동원 성결교회 연맹 결성식이 관계 당국자들의 축사와 함께 있었다. 궁성요배 황국신민의 서사 제창, 규약선언, 묵도(황군장병과 동양평화 위해) 일제 내빈축사 일황을 위한 축포가 있었다. 규약에는 내선일체 거국일치 국민정신 동원이란 취지를 달성하고 전도보국을 실천하기 위해 각 지방에도 연맹을 조직하였고 이사장에는 이명직 목사였다.(활천 204호 45쪽)
1940년 12월 6일, 국민 총력 성결교회 연맹 이사장 이명직은 전국 성결교회 애국반에 다음과 같이 실시할 것을 요망하였다.
1. 국방헌금 2. 교회내에 일본국기 게양 3. 황성요배 4. 무운 장구기도 5. 전몰영령위해 기도 6. 출전군인 환송에 적극 참여 7. 노무시간외 근로봉사 등이다.
1941년부터 활천의 매호마다 성결교회 신도(神道) 실천보고가 실렸고 십일조헌금을 명하여 총독부에 바쳤다. 설교시간인데도 12시가 되면 전체가 일어나 일본국가를 위해 일분간 묵도를 하였다. 
이명직 목사는 황실은 신성불가침이요 절대요 통치자이므로 공경해야 한다. 신자는 제도에 순응해야 한다.(활천 219호 2-5쪽)
1941년 6월 24일, 일본 기독교단 창립총회에 이명직 목사가 동의하여 성결교회도 참여할 의사였다.(활천 224호) 이명직 목사는 "기독교 신자는 악법이라도 국법으로 인정하고 허락된 자유내에서 신앙하고 전도하는 자세가 될때 신민이되고 보국하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1941년 12월 8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12월 12일 이명직 목사는 경성 성결교회 신도에게 전시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수요일 정기 연합기도회를 시달하면서 "일본 필승의 기도"를 시달하였다.

성결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등골이 오싹하는 해산성명서를 발표하고 교단이 해체되었다.

성결교 해산 성명서
우리 조선야소교 동양선교 성결교회는... 적 미.영 사상의 포로가 되어 상금도기 잔재를 말살키 어려움은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다. 더구나 교리로서 신생.성결.신유.재림의 4중 복음을 고조하여 왔는데 취중 재림의 항은... 근본적으로 국체의 본의에 적합하지 못할 뿐더러, 신관에 대하여도 성서의 해석에 기해 에호바 이외에 신이 없다는 사상을 선포하여 온 것은 현재 아등의 심경으로 보면 실로 국민사상을 혼미에 빠뜨린 것으로 그 죄를 통감하는 바입니다. ...동양선교회 성결교회(일본 기독교 조선 성결교단)을 자발적으로 해체하게 되었다.

우 해체에 제해 중의에 서명함.
조선 야소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일본 기독교 조선 성결교단)

목야명직(이명직) 등 총 7명
소와 18년 12월 29일(1943년)


하나님을 배신하고 민족의 반역자들이 큰 소리를 치는 것은 세계 기독교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기독교였다. 그로인해 신앙과 정의가 혼돈의 세상이 되었다.
어용 그들이 교권을 잡고 있어 정치제도를 개선할 수 없어 교회나 지방회(노회) 총회는 수라장이되어 고등종교가 하등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1959년 44회 장로회 총회 분열후 통합측은 민족반역자 전필순을 용납하고 그를 총회장에 추대하였고 성결교회는 이명직을 서울신대 학장으로 추대하였다. 어떻게 이들이 하나님의 일꾼될 위대한 종들을 교육시킬 수 있단 말인가!

기독교는 해방이 되어 신앙과 정의에 사는 분이 심히도 적어 하나님과 조국을 배신한 무리을 정리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민족의 반역자들이 큰 소리를 치는 것은 세계 기독교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기독교였다. 그로인해 신앙과 정의가 혼돈의 세상이 되었다.
어용 그들이 교권을 잡고 있어 정치제도를 개선할 수 없어 교회나 지방회(노회) 총회는 수라장이되어 고등종교가 하등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한심한 것은 지금도 기독교 목사들은 그런 것을 모르고 오직 자기 과시하는 것밖에 관심이 없다. 이러고서야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지겠는가.
기독교가 역사의식을 상실하게 되면 역사도 언젠가는 기독교를 상실하게 된다. 이유는 윤리를 떠난 기독교는 존재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아모스 5:21)
기독교의 성장과 함께 기독교의 윤리의식도 성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윤리의식은 가면 갈수록 추락하여 기독교의 윤리가 없는지는 오래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가 없다면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마태 7:21) 일반 친목단체이다. 그들은 개인구원에 집착하여 오직 자기 환상에 도취되어 있다.

여기 국보위 종교담당은 신촌성결교회 정진경 목사이며 입법에는 조향록 목사가 관여하였다.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국보위 종교담당 정진경 목사와 영락교회 한경직, 입법부 조향록 목사, 김지길 목사 등 20명의 기독교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호화찬란하게 열렸다.
사회 문만필 목사로 시작된 예배에 조향록 목사의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김지길 목사의 '한국 기독교를 위한 기도'가 이어졌고 국보위 종교담당 정진경 목사는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에서 "구석구석 악을 제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김인득 장로의 '군 장병을 위한 기도'에 이어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의 설교가 있었다. 
배후 주선은 보안사령부 군목 문만필 성결교 목사였다.
이 조찬기도회는 문화방송, 중앙방송에서 여러 번 반복 방영하였고, 일간.중앙신문은 머리기사로 다루어 전두환소장을 국민들에게 부각시켰다.

더욱 기막힌 것은 전두환 집단의 죄를 지적하기는 커녕 찬양을 하고도 그들은 지금껏 큰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인지 선한 일인지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교인들을 가르치겠는가?(에레미아 5:30-31) 그들이 가르친다고 교인들이 감화를 받겠는가? 그들은 자기과시를 위해 허공에 외치고 있지 않은가?

세계 복음주의자들은 1974년 7월 16일 세계복음화 국제대회를 스위스 로잔에서 가졌다. 이 모임의 중요 목적은 전도와 사회책임이다. 이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우리는 전도와 사회적, 정치적 참여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의 두부분인 것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우리가 믿는 신관, 인간관의 표현이며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우리의 신앙의 필연적인 표현들이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지금까지 사회문제에 대하여 등한시 했던 것과 때로는 전도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서로 배타적인 것인양 생각했던 일에 뉘우침을 표명하고" 신학적으로 정리하였다. 이것이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로잔에 모여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다.


맺음말
기독교 목사들이 징병제를 찬양할 때 조선의 젊은이 26만 명이 개끌려 가듯 징병에 끌려가 죽거나 포로가 되었고, 징용으로 50여만 명이, 정신대로 20여만 명이 끌려갔다. 그들은 짐승같은 대접을 받으며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 현재도 그들은 얼마나 많은 비참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친일파 목사들은 죽음의 길로 가는 동족을 찬양하였으니 살인 협조자들이 아닌가! 그들이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일본이 패전하여 해방되었을 때 회개와 반성은 고사하고 그들은 너무나 뻔뻔스러웠다. 처벌받기는 커녕 오히려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과연 이래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골수까지 사무친 친일 반역자들을 철저히 숙청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어용이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국가의 질서와 기강을 바로잡고 도덕성을 회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방된지 42년이 지난 오늘까지 친일 반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하고 어용 천국을 만들었다. 또한 이승만 독재자들을 지지하고 박정희, 전두환을 지지하여 어용들을 애국자로 혼동하는 세상이 되어 대한민국은 부패할대로 부패하였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급하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용을 처단하고 도덕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징병제를 찬양하고 신사참배를 권고하고 황국신민된 것을 감사하고 성경과 하나님을 부인하는 해산성명서에 서명한 이명직 목사가 서울신학대학 학장이 되어 학생을 가르쳤으니 그의 제자들의 사상이 어떠하겠는가! 그러기에 성결교회 역사와 문학연구회에서 출판한 성결교회 인물전을 보면 이들을 대대적으로 칭찬하기를 '사부요 교부'라고 하기까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으며
 성결교가의 작사자가 이명직 목사인데도 누구 한 사람 말하는 목사들이 없다. 이러한 이명직 목사를 칭찬하면 출세하고 나쁘다고 하면 고립되는 교단 풍토가 되었다.

어용 목사들은 독재자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충과 같은 인간들로서 독재자의 죄를 지적하여 바른 길을 가도록 할 용기가 없다면 목회나 할 일이지 범죄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범죄의 협조자가 되어 이땅을 범죄의 소굴이 되게 하고 있다.
어용을 몰아내지 않고는 교회의 화평이나 법의 회복, 질서 회복, 도덕성 회복을 절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법과 질서와 도덕성이 마비된지 오래다.

기독교 목사들은 독재자를 축복해 주고 부자를 우대하고 정직한 생활과 용기 있는 생활 예수님 고난에 동참하는 생활에 대해서는 외면하였다. 의를 위해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처벌로 인식되었고 시민 대중과 근로자의 고통을 믿음이 적은 결과로 돌려버리고 관심조차 없었다. 특히 조용기 목사와 일부 부흥강사라는 자들은 한국 기독교정신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출세를 위한 것이라면 사탄의 앞잡이도 주저하지 않는다(열왕기 상 22: 6, 20-23)
어용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도 도덕성 회복도 절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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