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들의 이야기 (1)

by unfolding posted Nov 20, 2011 Likes 0 Replies 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재림교회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 (1)



먼저 가슴아픈 이야기는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명감같은 충동때문에 하는 것이다. 

1. 그는 여호와 증인이었다. 
하지만 별종이었다. 자기가 확인하고 믿는 별종-여호와증인.
나는 cool한 재림교인이었기 때문에 그와 쉽게 마음을 놓을 터 놓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2년을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고
그들의 습관과 종교 의식들이 그렇게 낯설지 않았으며 그들의 언어도 익숙했다.
그리고 그 c 형제와 나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는 간증을 자주 했다. 
함께 간증을 한적도 있다. 
같이 부둥켜 안고 울기도 했고 밤새 기도하기도 했다.
그는 말에서는 나보다 졸했다.
하지만 말보단 글이 강력했고, 무엇보다 그의 삶
온 몸을 던져 주님을 사랑하던 그의 헌신이 아름다웠다.
그는 마음으로부터 친구였다. 
그 형제덕에 여호와증인 연합집회에도 참석해보고 
여호와증인의 모든 서적의 데이터가 있는 자료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별했다.
그는 재림교회 내에서도 외로워했다.
그는 재림교회를 위해, 재림교회 내에서 간증을 했다. 
천주교회에서 여호와 증인으로 그리고 마침내 "진리 교회"로 개심했다는 그의 간증은 좋은 소재였다.
그것은 그의 생각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를 활용한 논리였다. 
본래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화잇의 글 중에 "시대의 소망"이었다. 
그 책은 예수를 인간으로만 생각했던 그에게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다.
예수는 신이어야만 했고, 그래야 구속은 값진것이 된다. 
구속의 빛이 완전하려면 예수는 하나님이어야만 했다.
그에게 이 사건은 생명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는 자신의 10년 간의 존재기반이 되었던 증인사회를 빠져나온다.
이러한 탈출은 경험해보지 못한 자들은 알 수 없는 큰 사건이다. 
그는 이미 가족내에서도 종교문제 때문에 제껴둔 자식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러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재림교회 내에 존재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던지는 신학적 도전들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왠만한 재림교회 목사들보다 신학적 지식이 풍부했다.
성경지식도 방대했고, 여러 교파들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그리고 재림교회가 행정적으로 성경해석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비춰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빛은 진리로 받아들였었고 그래서
침례에 "순종"했었다. 그는 절대 재림교회를 "진리교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비춰진 진리의 빛을 따랐을 뿐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나도 그런 그의 태도가 맘에 들었다.

그는 청년들 많이 다니는 도시 교회를 다니면 
시골 교회는 어떡하냐면서 자기 집앞의 작은 교회를 다녔다.
또한 집회에는 늘 참석하려 하였고, 특히 성경연구에는 목숨을 건듯 보였다.
그는 사람을 잃어도 하나님은 잃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 분명했다. 
그는 재림교인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안 읽으면서 교만하다는 사실에 많이 아파했다.
누가 그를 정죄하리요!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까?

하지만 돌아보면, 그는 재림교회의 프로파간다용으로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그가 정작 재림교회에게 원하는 것은 아무도 귀기울여 주거나 제시해 주지 않았다.
그는 홀로 만든 전도지를 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전철에서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몇년을 버티지 못하고 곧 재림교회를 떠났다. 
그전 부터 조짐이 보이긴 했다. 

교회문제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다른 교파 서적들을 열독했다.
그는 종종 우리교회로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난제들을 던지곤 했다. 
재밌는 것은 그에게 재림교회 신학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 분은
재림교회 젊은 목회자였다는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 아닌가?
현 재림교회에 회의를 품고있는 목사님의 영향으로 그는 재림교회를 쉽게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도 흡사 그 목사님처럼 교묘한 행동들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 목사님이 원하는 쪽으로도 가지 않았다. 
그도 계속 지성소문제와 구원론, 종말론 등,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로 초신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그는 이미 마음을 먹고 재림교회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교파에 이미 입문해 있는 상태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참, 이상했다. 
나는 화가났다. 혼란스러웠고, 짜증이 났다.
그렇게 인생을 걸고 신앙을 하는 사람을 놓쳤다는 것이 화가났고
그 친구의 이중적인 태도에 짜증이 났다. 
누구도 그 형제를 설득할 수 없었다는 데 분노했다.
모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지만 더 놀라운것은
그런 믿음의 투사를 잃어버리는데 손발 걷어부치고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수십명이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가도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비겁한 정치인들, 군인들처럼...

이런 상황에선 듣기 좋은 잃은 양의 비유도  거짓말에 가깝다.
자기 자식에게는 해당될 지 모르겠지만...
나도 물론, 손쉽게 그 친구를 쳐내버렸다. 
마치 연예인 좋다고 졸졸 좇아 다니다가 무슨 사건에 연루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색을 변하고 배신하는 것 마냥, 우리는 쉽게 포기한다. 
자기 밥그릇 문제가 아니면 열을 잘 안낸다. 
이런게 속물이다.
암만 번드르해도 우린 여전히 속물이다.

몇번의 주고 받는 공방이 있었고 그는 나를 "사단의 대리자"로 선언했다,
나는 그를 "정신병자"라고 반격했던것 같다.
이것이 아마도 끝까지 노력한 나의 자존심을 세울 마지막 멘트였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더이상 친구도 형제도 원수도 아닌 평행선이 되었다.
그리고 1년도 안되서 그는 잊혀졌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종교가 없는 세상에서 만났다면 이보나 낫지 않았을까?

물론, 그의 잘못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사과하고 싶다.
우리의 오만과 우리의 파시즘을 대표해서.

투항한 영웅은 활용가치가 있지만 떠나는 용사는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그 전쟁터 마냥 체제 선전용일 뿐이다. 
구멍난 일회용 모기장 처럼 버려질 뿐이다.
모든게 잘 돌아간다는 허상을 지탱하기 위한 퍼즐조각일 뿐이다.
들어온 이야기들은 많은데, 빠져나간 이야기는 없다.
그래서 나는 속죄처럼  독백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쓸쓸히 떠난 내가 아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Articles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