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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지요.

그런데 안식교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가지고서

산 믿음이라고 벅벅 우기고 있는데 어찌해야 할까요.

 

약 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도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안식교인 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 절이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안식일이 폐하지 아니하고 율법을 지켜야 할 근거로 이 성경 절들을 거론합니다.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행함이 동반된 믿음을 이야기한다.

야고보의 율법은 자유 하는 율법이다.

초대교회에는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유무상통이 가장 핵심적 신앙 표현이었습니다.

야고보서의 모든 내용은 구호봉사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습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말로 떠들지 말고 믿는 다고 말로 떠들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경건하다고

철저한 신앙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경건과 진짜 철저한 신앙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부자와 가난한자를 차별 말고

이웃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하라는 최고의 법을 이야기합니다.

2:12, 개역)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약 2:13, 개역)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약 2:14, 개역)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 2:16, 개역)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 2:17, 개역)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예수의 오신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공생애동안 충실하게 실행하셨던 일이 야고보서의 일입니다

 

(마 11:5, )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눅 4:18,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7:22, )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다 드린 것입니다

전 재산과 바꿀 수 없는 최고를 드린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드린 것을 행함이라 말할 때

명령을 준행함만을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생명만을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야고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리므로 믿음을 행사했다는 이야깁니다

가난하자를 돕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 이라고 말하면서 아브라함은 아들까지 드렸다고 말합니다.

약 2:20, 개역)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약 2:21, 개역)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모든 재물을 다 드릴 수 있는 믿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고 사랑하고 의지하여 주 만 따라 가겠네…….의 믿음 말입니다

여기서 또 다시 나그네를 어려움 당하는 자를 도망자를 숨기고 대접하는 기생 라합을 들먹입니다.

약 2:25, 개역)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6, 개역)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4:17, 개역)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약 5:1, 개역)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약 5:2, 개역)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약 5:3, 개역)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야고보서를 안식교인 들은

야고보서의 주 내용은 팽개치고 엉뚱한 몇 소절로 스스로를 변호하는 데 써먹습니다.

아주 철저하게 잘못된 인용된 성경 절들입니다.

야고보서의 내용은 부자들아 아브라함이 아들을 아낌없이 드림같이

너희도 하나님께 드리라

라합 처럼 나그네를 핍박받고 옥에 갇힌 자를 돌아봐라

이런 글을 쓰니 목사들 옳다꾸나 하고 교인들에게 헌금 많이 내라고 말하는데

착취하는데 써먹으려는 꿍꿍이는 안 꾸는지 모르겠군요?

여기서 하나님께 드렸다함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장애인과 수만은 가난하고 어려운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하지만 교회만 꾸미고 목사만 배불리고 그런 돈은 하나님께서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하실 것입니다

“천천의 수양과 강수 같은 기름이라할지라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내 땅만 더럽힐 뿐이니라. 할 것입니다

(마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도 실천하기 싫어서 애써 외면하는 자들은 억지로 형식적인 것을 찾게 됩니다.

안식일 해지는 시간이나 따지고

 

음식문제 따지고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따집니다.

육식 채식 따집니다.

 

꿀꿀이 죽이라도 없어서 못 먹어 병든 사람들에게 거기 돼지고기 들어있어서 부정하다고 할 겁니다

안식교회가 행함을 강조하는 그 행함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변명일 뿐이고

야고보서의 행함은 자신을 희생하라는 이야깁니다

(마 25:32, 개역)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마 25:33, 개역)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마 25:34, 개역)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 25:35, 개역)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6, 개역)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5:37, 개역)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마 25:38, 개역)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마 25:39, 개역)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마 25:40, 개역)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소망639,640)

그대가 그리스도께 속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에게 그대의 문을 열 때 그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들을 영접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모든 사실을 바라보시면서 배고프고 목말랐던 자는 나였다고 말씀하신다.

나그네였던 자는 나였다 병든 자가 나였으며 옥에 갇힌 자도 나였다 그대가 풍족하게 차린 식탁에서 즐기고 있을 때에 나는 오두막집에서나 행인이 없는 거리에서 굶주리고 있었다.

그대가 호화로운 집에서 쉬고 있을 때에 나는 머리 둘 곳이 없었다.

그대가 옷장에 값진 의복으로 꽉 채우고 있을 때에 나는 헐벗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생애 하시던 장소들을 방문하는 것 즉 그분이 밟으신 곳을 걸어보고 그분이 가르치기를 좋아하시던 호숫가와 그분의 눈이 때때로 머물던 들과 골자기를 바라보는 것이 큰 특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기 위하여 나사렛이나 가버나움이나 베다니에 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병상 곁에서나 빈곤한 오두막집에서나 대도시의 혼잡한 뒷골목 길에서나 인간의 마음에 위안이 필요한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지상계실 때에 예수께서 행한 것처럼 행함으로 우리는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 행 할 수 있다

죽은 예수 찾아가 봐야 뭐합니까?

모래와 사막뿐이요

돈벌이에 상술에 건물뿐인 것을

살아계신 예수 지극히 작은 자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는 외면하고 죽은 예수 찾아 뭐한다고 한심한 일입니다

 

가난하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요12:8)

만일 우리와 그들과 입장이 바뀌었다고 생각해보라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할 것인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7:12)

 

이 사업을 게을리 한 까닭에 매우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경험을 초보 수준 밖에 더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본질적 신앙을 버리고 빼빼마른 짚 건불 같은 형식만 추구하니 아무리 오랜 신앙을 하였을지라도 초보신앙을 벋어나지 못하고 진정한 신앙의 참 맛도 모른 체 탁상공론만 하게 됩니다

딤전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이 연습이 되겠습니까?

처음은 우리가 선행을 할 때 위선처럼 느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하면 연습이 되고 그것이 진실이 되고 참된 경건이 됩니다.

거짓 없는 경건은 지극히 작은 자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야고보서의 삶을 경건을 이루겠죠.

야고보서는 실천적 신앙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안식일을 변명하는 책이 절대 아닙니다!

구호봉사서입니다.

 

 

 

 

 

 

  • ?
    student 2011.11.21 03:21

    감사합니다.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믿음의 "행함" 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변명을 위한 행함 vs 이웃 사랑을 위한 행함....

    근본 적으로 틀리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야고보 = 구호봉사서 !!!  

    아멘 입니다.

    계속 저희 민초들을 일깨우는 좋은 말씀 부탁 드립니다. ^^

  • ?
    미련 곰탱이 2011.11.21 05:19

    공허한 말쟁이, 글쟁이가 아닌, 신학 이론이 아닌 실생활속의, 경험의 신앙글이....이 아침에 선택한 님의 첫 글내용들이....

    마음에 많이 다가오네요^^


    요 몆주째 쌔뱃 스쿨에서, 또 이곳에서 믿음과 행함에 대한 각 자의 이해들로  디베이트가 중이엤는데...탁상공론?ㅋ

    님이 마침표? 를 찍어주는 느낌이 드네요..


    우리교회도  계속 이사람 저사람 디베이트하며 시간 끌다 찝찝?하게 피아노가 시간을 정리해버리는 상황이 계속이라....ㅋ

    저도 엇그제 안식일 교회 가기 전에 갈라다아서 3-6장, 야고보서 몆장을 다시 읽고 갔고 .ㅎ...다시 집에 돌아와서 다시 좀 찾아보기도하고 했지만...


    저 아래 밑에 글에서도제 생각  말씀드렸지만 ...믿음을 받아들였다면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말로 떠드는것보단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을 따르는것이 제일 정확할것같다는 생각에 변함은 없네요....결국'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것이    마음속에 숨겨진  이기적인 생각이 없어지고 이타적인 사랑실천이 자동으로 나오는것, 생각과 행동의 거듭남이겠죠... 이것도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닌 성령님이 내 속에거하셔셔  하게 하시는....내가 거절만 안한다면...


    저는 요 며칠동안 왜 많은 사람들이 몆 성경구절을 편식하여 자꾸 오해?  할까? 또  일부는  과거 우리교단, 몰지각한 지도자, 어리석은 교인 등에 의해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강박적으로 반응하게 된 것아닐까??......그래서 강박적으로 '행함'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행함으로 말미암는의'를 들먹이며 믿음과 행함을 분리시키려는 현상이 아닌가 등등 이생각 저 생각해 봤드랬습니다....^^


    사도 바울의 자기의와 하나님의 의에 대한논증(갈라디아서)이  함부로 아무에게나 율법주의자로 낙인 찍지도 말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제대로  이해해서 성경을 자신의 세속화 된 표준에 맞추어 믿음이라는 단어로 모든죄를 무조건 덮는 여술 방망이로 만들어 버려 이 반쪽짜리 복음에 만족하고 위안 받는 불상사도 없어야 겠습니다...


    아뭏든 신앙경험을 통해 쓰신 글 내용은 구석 구석 옳은 말씀이십니다...님께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자주 경험들을 풀어놔? 주세요.. 글 자랑 신학이론보다 경험신앙이 훨 마음에 적극적으로? 다가옵니다..^^


    '지극히 작은자 하나'....정말이지  자주 자주 까먹네요..아마 제가 너무 이기적이라서 그럴거에요.

    또 한번 일깨워 주셔셔 감사합니다...다시 사복음서를 ㅋ ....겠네요^^

  • ?
    justbecause 2011.11.21 05:27

    학생님,  미련곰탱이님과 똑같은 말씀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냥 아멘이라하면 될 것을 

    이리도 길게 쓰네요.

    지경야인님 화이팅

    우리모두 화이팅

  • ?
    미련 곰탱이 2011.11.21 05:34

    아휴 ~ ` 큭 ... 길게 썼군요.. 길어서 미안해요.^^ 그냥 아멘하면 될텐데 그치요?^^

    늙어 봐요..ㅋㅋ 다 그렇게 되요..

    한말 또 하고 또 하고...용서해 주시와요 ^^


    모두들 즐겁게 일하세요^^.. 좋은 하루들 되세요 ^^.. 어휴 또 길어졌네..ㅋㅋㅋ 못 말려 ~ ~ㅋㅋ


  • ?
    cogito 2011.11.21 09:42

    저도 마음을 담아 아멘!!^^

  • ?
    김주영 2011.11.21 07:46

    그런 바른 깨달음^^ 을 얻으신 것도 아멘!

  • ?
    고바우 2011.11.21 12:11

    저는 다른 견해로 댓글을 답니다. ^ ^

     

    일부 안식교인들의 행함이 계명과 권면, 규칙들에 대한 율법적인 좁은 관점에서의 의미였다면

    지경야인님이 쓰신 글은 또다른 일부 안식교인들의 확대된 계명과 좀더 넓은 관점에서의 행함에 대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둘이 확연히 다르기는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일 수 있습니다.)

     

    촛점이 행함을 언급함으로 부득불 시선이 거기에 맞추어 지는 것을 경계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궁극적으로 그분께서 말씀하신 어떤 것이 아닌 그분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바라봄으로 변화됨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가는지조차 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이미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사랑을 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사랑일 수 있습니다.

    분명 모두가 이타가 된다면 이 세상은 참 아름답고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세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올바른 것과 그것이 내게 즐거운 것이 되는 경험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올바른 것이 즐거운 것인 자들은 올바른 것을 했다고 또는 해야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자기에게서 올바른 것이 즐거워지는 것으로 인하여 자기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같은 글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그 분만이 올바른 것을 즐거운 것으로 바꾸십니다.

    조금 더 확대하면 올바른 것을 몰라도 된다 라는 견해입니다.(무리일까요? ^ ^)

    그러기에 그리스도가 떠난 자리에는 올바른 것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연습하고 습관이 되고 품성이 되야 한다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 승천하시고 오십일 후(오순절)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보면 연습과 습관으로 인한 품성이 무의미함을 보게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거듭남을 과소평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거듭남 후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점진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분께서 다 책임(양육과 보존)진다는 것으로 깨닫습니다.

    굳이 자기 자녀를 다른 사람들의 손에 위탁하는 것은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직무유기(?)입니다.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면 되는데... 그 놀라운 특권을 주장하시고 경험하시면 참 좋겠습니다.

    어떻게든 변화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올바른 것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변화는 굳이 기독교가 아니더라고 세상의 모든 교육과 종교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그래도 완전히 다른 이유는 그런 것(열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오직 예수를 바라보라는 이유인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라는 이유인 때문입니다.

    같은 글이면서 또 다른 글일 수 있다는 생각에 제 견해를 댓글로 달았습니다.

  • ?
    student 2011.11.21 14:12

    기독교도 그래도 완전히 다른 이유는 그런 것(열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오직 예수를 바라보라는 이유인 때문입니다.

    ------------------------------------------------------------------------------------------------------------------

    고바우님,

    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99..99% 동의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 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시는 지요?

    그 분의 한번도 보지 못하고 알수도 없는 얼굴?  가짜 사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얼굴은 그분의 성품이고,

    예수의 얼굴은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분의 성품입니다.

    예수의 "성품" 이야말로 또한 성령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그 열매를 바라고, 추구하고, 명상 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

    바로 님이 말한 예수를 "바라보는" 삶이요, 예수와 동행 하는 삶이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같은 것이지요.


    님이 바라보는 예수안에는 이 우주의 좋은 모든것이 들어있습니다. ("그 안에 만물이 섰느니라.").

    그 중 가장 고귀한것이 바로 그분의 성품(=십자가의 절대적인 사랑=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성령의 열매) 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요 3:16).

    그 주신 예수를 받는게 그 분의 성품을 받는것입니다..


    지인야경님께서 아주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경건이 연습이 되겠습니까?

    처음은 우리가 선행을 할 때 위선처럼 느껴 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하면 연습이 되고 그것이 진실이 되고 참된 경건이 됩니다.

    거짓 없는 경건은 지극히 작은 자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고바우님은 윗글을  "율법주의"로 생각 하시는 듯한 느낌을 주시는데, 전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말로만 하는것이 아닙니다.  영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s"--행동이 말보다 더 큰소리로 말한다.)

    "경건의 연습"이야말로 백마디 말보다 더 간절한 기도가 될수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경건의 연습"이야말로 산에서 혼자 명상하는 것 보다 더욱더 간절히 "예수를 바라보는 삶" 이될수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문제는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를 뒷 바침하는 "동기"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내 이웃에 웃음을 주는  "경건의 연습"을 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그 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기" 자도 모르시는 분들중에서도 오히려 기독교 목사들보다 "예수"를 

    더 잘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기독교인들에게 만한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한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좀더 넓게 보심이 어떠실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그 약속을 "믿고" "느낌"이 올때까지 기다리는 자들에게서 이루어 지는걱이 아니라

    그 약속을 나의 "느낌"보다  더 신뢰하고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들에게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짧은 소견이었습니다.



  • ?
    고바우 2011.11.21 15:09

    원글로 쓰려다가 님의 댓글을 보고 이곳에 원글을 포함한 댓글을 답니다.

    제가 지경야인님의 글을 율법주의로 본다고 말씀하시니 조금 슬프고 답답합니다.

     

    아랫글에 대하여 제가 쓴 글이 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처럼... 이라는 글에 대하여 위축된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처럼은 아브라함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아브라함되게 만드신 하나님이시면 저를 저되게 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의 믿음과 행동이 맞고 옳다고 하여도 아브라함이 저의 모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모델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옳은 믿음과 옳은 행위도 있었고 믿지 않음과 틀린 행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브라함처럼...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직 옳으신 분은 한분이십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변함없이 원수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구요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에 반응합니다.

    그 말씀은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이기에 그래서 그분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믿음이 행위로 열매맺도록 하시는 분을 드러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내고 영광을 돌리는 것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 또는 할 수 없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아래는 님의 글입니다.

    [문제는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를 뒷 바침하는 "동기"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내 이웃에 웃음을 주는  "경건의 연습"을 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그 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변화 시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저의 견해는 다릅니다.

    저는 다음처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선을 기뻐하도록 그 동기를 변화시키고 바꾸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소원을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에 소원으로 두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주시도록 간구하며 또 그 자녀도 함께 간구하게 하십니다."

     

    아래는 저의 경험입니다. 어쩌면 님의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만 싸워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게 하시지 않고 관계(동기)를 바꾸십니다.

    원수를 형제로 바꾸어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우리의 훈련이나 의지, 또는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모르겠습니다.

    혹시 자기의 훈련이나 노력과 의지로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 글이 틀렸으니 잠잠하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좋은 말씀은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1. 원수를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

    2. 원수가 없는 사람

     

    1. 번은 혹시 어떤 사람에게는 쉽지만 제게는 불가능합니다. 저의 촛점이 이 부분에 맞추어진다면 저는 무진장한 노력을 해야할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라면 제게는 율법주의로 읽혀집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저의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기에 그렇습니다.

    2. 번은 제게 너무 쉬운일입니다. 누군가가 그 원수를 내게 형제로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저는 사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힘들게 됩니다.

    저는 형제가 된 이전의 원수를 사랑하노라고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원수를 형제로 만드신 분께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 ^

  • ?
    cogito 2011.11.21 15:13

    원수가 없는 사람....

    와~~생각도 못해본 엄청난 도전입니다...

    역시 고바우님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 ?
    student 2011.11.21 16:24

    고바우님,

     

    님의 경험이 #2 라면 정말 놀랍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은 1번이 2번이 되는 경험이고 (심지어 가족들 사이에서 조차) 그 경험이

    계속 반복 되는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어제만 해도 우리 마누라와 심하게 싸웠습니다.

    별것 아니라 자식 교육문제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자존심을 섬기면 안되는지 알면서 서로 소리를 높히다 보니,

    그 순간 만큼은 "원수"가 되더군요.

    악착같이 고집부리는 마누라가 정말 "미웠 습니다"

    자식들 앞에서 자존심 상하게한 마누라를 도저히 용서할수 없었습니다.

    님 말대로 제 힘으론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만....

    "약 1 시간 정도"  깜깜 무소식 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내가 먼저 사과를 해야함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게 제가 바라던 바였고, 내 마누라도 바라고 있었음을 서로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할수없더군요.  이럴땐 "말로 하는" 기도가 별로 힘이 부족하다는걸 전

    경험상 너무 잘알고 있었읍니다 (최소한 저에게는..).

    다시한번 크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행동"으로도 내가 간절히 바라는 바를 "기도" 했습니다.

    즐거워서 했다고요?  아닙니다.  죽도록 미웠지만, 그 마음이 바뀌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죽도록 하기싫었던 사과를 먼저 할만큼....

    사과를 하는 순간 "변화" 가 왔습니다.

    강하게...

    이때까지 고생만 시킨 마눌님이 불쌍하기도 하고,

    열심히 아이들 교육시키느라 고생하는게 안스럽기도 하고...

    정말 미웠던 마음이 눈 같이 녹더군요.

    그러나 "행동"으로 기도 하기전까진

    변하지 않더군요...

    이게 제가늘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정말 크게 성공할때도 있고,

    크게 실패 할때도 많지만...

    실패 할땐 "말로만" 기도 할때가 대부분이었던것 같습니다.

    제 경험때문에 "진리"를 너무 주관적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 습니다.

     

    님의 경험이 2번 이라니, 님의 말을 믿습니다.^^

    계속 주안에서 정진 하시길 빕니다.

  • ?
    고바우 2011.11.21 17:41

    제 글에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2. 원수가 없는 사람이 계속 원수가 없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님의 경험이 또한 저의 경험입니다.

    님의 적용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존중합니다.

     

    미웠던 마음이 눈녹듯 사라지는 경험!!!! 정말 소중한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에 이르기까지 님의 고군분투와 간절한 기도.... 감히 상상이 됩니다.

     

    한가지만 덧붙입니다.

    님은 원수(미워하던 아내)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게 하실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대신에 원수(미워하던 아내)에서 무엇인가 원수되지 않은 것들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그중에 최고는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변화가 이르러 옵니다. 기적이 이르러 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며,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소경이 눈을 뜹니다.

    원수라는 관계는 그대로 유지되며 원수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고

    원수라는 관계가 변화되어 님의 미워하던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신비를 그리고 기적을 우리는 매일 맛보고 살고 있습니다.

    잠시 언급한 물이 포도주, 앉은뱅이, 소경이 눈을 뜨는 것과 같은 기적을 매일 경험합니다.

    조금 확대하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께 집중하고 그분과 함께 있는 한 그분께서는 이 기적을 매일 이루십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면 그 기적도 멀어집니다.

     

    님의 글을 다른 의미로 반복합니다.

    계속 주안에서 자녀삼으신 하나님의 소원이 님을 통하여 님과 그리고 주변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당분간 글을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

  • ?
    student 2011.11.21 18:59

    고바우님,

     

    전 고바우님의 글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우고 있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혹 제가 한 "오해" 때문에 님의 글을 자제 하는 것이라면,

    그러지 말고 계속 글을 올려 주시기 바람니다.

     

    혹 저를 비롯하여 여러분들이 님의 글을

    계속 "오해"를 하더래도,

    그 걸 풀어가는 과정에서 서로 많이

    배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까짓꺼 "오해"하는야

    이 누리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겠습니까?

     

    혹 제가 조금이라도 맘 상하게 한 것이 있으면

    사과 드립니다.

     

    누차 말씀 드렸지만,

    전 님의 글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피.에스. 님께서 위에한말씀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그러한 "기적"들 때문에 전 하나님의

    파워와 인자하심을 믿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한들 성경의 기적들을 믿을수 밖에 없습니다.

    그보다 더 큰 기적들을 늘 보고 경험하기에...감사합니다. ^^

  • ?
    지경야인 2011.11.21 14:37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 승천하시고 오십일 후(오순절)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보면 연습과 습관으로 인한 품성이 무의미함을 보게 됩니다."

    =================================================================

    오순절에 제자들은 더 이상 변화가 필요 없는 완벽히 성화되었나요?

     

    성령을 받고 용기를 얻고 크게 외치게 되었지만 아직도

    경박하고 외식하고 도망 다니고 차별하고 실수투성이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안보이시나요?

     

    예수를 바라본다는 뜻이 뭔가요?

    예수의 실천적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거듭난다는 뜻이 뭔가요?

    어느 순간 홀연히 변화하나요?

    기도하는 중에 삶과는 전혀 상관없이 변화하나요?

    니고데모에게 정답으로 말씀하신

    바람이 임의로 불어도 어디서인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변화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거듭남 아닌가요?

     

    보이는 사람에게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해봐야 .................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말로 믿씁니다!

    그러면 다인가요

     

    예수께서 본을 보여주신 삶을 살아야죠.

     

    주어진 나의 신앙적 책무는 회피하면서 믿습니다?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 있느뇨?

    주께서 너를 벌할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렘:13:20,21)

     

    “예수께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예수께서 다시 오셨습니다.

    처음 이 땅에 오셨 을 때처럼

    아주 볼품없고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로 항상 우리 주위에 함께 계십니다.

    우린 아는 체도 하지 않고 문 밖에 세워 둔체

    하늘만 쳐다봅니다.

    구름타고 오신다고요

    유대인처럼 우리도 변명만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할 재물이라고요

     

     

    (막 7:10~13)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그래요 사랑 없이 나의 자랑을 위한 칭찬을 듣기위한 위선적인 삶이라고 해도 좋아요

     

    (고전 13:2, 개역)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개역)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러나 예수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기적인 우리들의 삶은 무엇인가요?

    그게 믿음인가요

     

    저는 아무리 아무리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고

    한참을 잊었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더군요.

    누군가 모르게 하려고 해도 내가 알고 받은 사람이 알고 그 주위 사람이 알게 되더군요.

    또 모르게 주고 나면 내 마음 속은 오히려 더욱 뿌듯하더군요.

     

     

     

  • ?
    고바우 2011.11.21 15:40

    학생님의 글에 대한 댓글로 대신합니다.

  • ?
    student 2011.11.21 17:23

    고바우님,

    님의 글을 다시보니

    님이 말한 새로운 "동기"는

    처음 "conversion" 경험을 말씀하신 듯 한데...

    위에 제가 드린 말을 그러한 "동기"를 근본적으로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스트러글 이야기였습니다.

    한번 "다시태어 났다고" 갑자기 모든것이 고투 없이 즐거워기는 현상은 (그럴수 도 있겠습니다만) 현실적이진

    않은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의 경험이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선 더이상 토를 달진 않겠습니다.^^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 ?
    고바우 2011.11.21 18:47

    저는 십자가 밑에서 매일 죽고 또 새롭게 태어납니다.

    동기도 또한 매일 매순간 새로 부여받습니다.

    그럴수록 소원은 더욱 더 강렬해집니다.

     

    여기까지만 답글을 달겠습니다. ^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즐독은 계속하겠습니다.

  • ?
    student 2011.11.21 19:02

    하하 ^^

     

    님이 이기셨습니다.

    글은 계속 올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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