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들의 이야기 (3)

by unfolding posted Nov 23, 2011 Likes 0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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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이들의 이야기 (3)



어쩔 때 우린, 마치 신과 어깨동무를 하고 세상을 관조하는 것 처럼
스스로를 재판장의 자리에 두는 경향이 있다.
뒷담화보다 무서운 신앙인들의 윗담화다.
그 윗담화로 여러 인재들이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아이러니는 이러한 태도가 진리와 가장 먼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진리랍시고 행해진다는 것이다. 


3.

K군은 천성 자유인의 기질을 버릴 수가 없었나보다.

그는 책을 좋아했고, 사색을 좋아했고
뭔가 이국적인 풍모가 있는 사나이였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배울게 많은 듬직한 동지였다.

그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시절, 그의 운동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운동을 무척 좋아했고 매우 잘 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배짱이 있어서 운동 뿐 만 아니라 싸움도 잘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그를 안 것은 다행히도 그가 더 이상 싸움을 하지 않을 만큼
성숙해진 뒤였던 것 같다.
그의 강렬한 에너지는 신앙으로 잘 길들여 졌다.
그래서 그는 조용하면서도 강한 그런 신사가 되었다.
당연히도 그는 여러 여인들의 흠모의 대상이되었다. 
그는 말도 잘했고, 글도 잘 썼고, 무엇보다 리더쉽이 훌륭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내가 
학교에서 늘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멋있어서
자신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그의 독서수준은 나의 그것을 뛰어넘고 있었다. 
체력과 지성, 영성이 구비된 그는 누가 뭐래도 큰 그릇이었다.

내가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 그녀석은 
대학을 쭉 다니다가 천명선교사를 떠났다고 한다.
원래부터 꾼 꿈이기도 했고
천성적으로 모험을 좋아하기도 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학교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아서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선교활동 팀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고
다시 대학에 복학했다. 역시 적응은 잘 되지 않았다.
반면 그는 그 동안에 세계여행을 했던 모양이다.
왜 그가 세계 여행을 떠났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째튼 그 여행은 전혀 다른 K군을 만나게 된 분기점인 듯 보였다.

그가 돌아오고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친구, 후배들이 몇몇 모였다.
모여보니 모두 고등학교 시절 때 열심히 신앙생활하던 친구들이었다.
예전에 교회 학생회장이지만 이제는 교회를 떠난 친구도 있고,
공부하느라 교회를 11:30분에가서 밥만 먹고 오는 친구도 있었다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은 결국 나 혼자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가 앉았다.
한 때는 서로가 서로를 재림교회 미래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걸쭉한 모임이었다.

그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술과 안주들이 놓여있었고
그 친구는 담배를 꺼내 멋스럽게 피어댔다.
나는 그 친구들과 거의 일년간 시간을 내어서 몇시간씩 그렇게 보냈던 것 같다.
그 친구들과 놀아줄 사람, 교회의 마지막 끈은 나 밖에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에게는 불편한 자리였으나 왠만하면 피하지 않고 함께 했다.
물론, 여러 주제가 씹을 거리였지만,
재림교회의 편협성, 교인들의 쪼잔함, 지도자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들...
목사들의 부도덕성, 무지, 오만등이 주요 대상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신학과 수업이나 교회에서의 예배는
이들에게 무슨 의미였던가? 잘 듣는 이들 앞에서
듣기 좋은 소리는 누가 못할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또 이들을 챙기는 목자들은 어디있는가?
정작 돈을 받고 사역을 하는 분들이 이런 상처입은 영혼들을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
산등성이에 흩어진 내 양들을 어찌했는가?라는 그분의 목소릴 듣는 목자들은 없단 말인가?
나는 콧잔등에서 땀이 송글 송글 맺힐 정도로 열이 났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목자가 되기로 했다.
내가 교단에서 써주는 목사가 되는 것을 포기할 지라도.

어쩌면 내가 재림교회 목회자가 되길 포기한 이유는
재정이 없어서 자리가 없는데 나까지 머리를 들이밀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제도권의 목사가 되면 더 이상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챙겨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만연한 집단은 잘 안돌아가는 집단일 것이다.

그들이 교회를 떠난 사정들은 가지 각색이었다.
어떤 친구는 교회 임원 맡아서 학교 공부도 제쳐둘 정도로 열심히 헌신하는데,
어느 안식일 늦잠자서 트레이닝을 입고 교회를 갔더니 목사님께서
심하게 꾸중 을 하면서 갈아입고 오라고 하시길래 그자리에서 따지고 싸우다가,
그 날로 교회를 접었다고 하고..
어떤 친구는 
교회 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이건 일반 사회사람들보다 더 부려먹고
스트레스 줘서 떠났다고 한다.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K군의 이야기였다.

그는 공부를 조금 잘 했고, 굳이 신학과를 가야할 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분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권유로 신학과를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그 분의 역할이 얼마나 컸을까?
헌데, 그가 신학과에 진학한 이후에 그 분의 딸과 그가 교제하게 되자
그분은 그 교제를 결사 반대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께서 왜 그 둘의 만남을 반대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친구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만큼 심각한 문제였던것은 사실이다.

K군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가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자신에게 신학의 길을 가게 하면서
딸과의 교제는 그토록 반대하는 것일까??
자신이 그렇게 믿고 존경하던, 그래서 그분의 말대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던
그 친구가 느꼈을 배신감이 어느정도였을지 나는 짐작만 할 뿐이다.

사실, 나는 놀랍지도 않았다. 이미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 많았기 때문이다.
설교단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게 최고라고 강조하면서도,
자기 딸은 전도사보다는 의사나 좋은 직장 다니는 능력있는 사람에게 보내려는 
인간적인 모습들...이젠 새롭지도 않으니.
어찌보면 그 친구가 순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도들에게 전도하는게 제일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던 분들이
왜 자녀들은 전도만 해야 하는 전도사와는 결혼을 주저하는지, 이젠 우리 다 알지 않는가?
차라리 솔직해지는 게 좋을 텐데, 기대가 크니 절망도 큰 법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문제와 함께 그동안  자신이 봉인해두었던 
철학적 회의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회의에 찬 자신을 이단시하는 교수들의 시선이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자유인은 세계 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지에서
그는 세계의 수 많은 종교, 문화, 삶의 형태들을 보고서,
신은 인간을 모두 구원할 것이라는 만인 구원론으로 돌아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지만,
나는 거기서 그 친구에게 만인 구원론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시비를 걸었던 것 같다.
그러자 그는 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면, 
악과 악마도 만들었으니 그 악에 대한 책임도 신이 져야하고 
그렇다면 모두를 구원해 주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은 조로아스터교나 그렇고 기독교 신앙은 절대선의 신을 믿고
그 신이 모든 것을 정의롭게 판단해 주실것을 겸허히 기다린다고 핏대를 세웠다.
역시 소득없는 썰렁한 분위기만 남겼다.
난 그 때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설득시키는게 뭐가 그리 중요했을까?
그리고 그 친구는 재림교인들 사이에서 거의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전 그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주식을 통해서 큰 돈을 벌어 인생 즐겁게 살아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몇번 수익을 올린 경험도 있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안색도 좋지 않고 살도 쭉 빠져보였다.
돈을 버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버린 그...
아름답고 커다란 그릇에 
벽돌을 담아놓은 듯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신학과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그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신학과 졸업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자존심을 굽히고 신학과에 재입학해서
4년제 대학 졸업장이라도 따라고 권유하고 싶었지만,
그는 제대로 삐뚤어져 버린 듯 했다.

그의 삶을 쭉 돌아보면서,
그릇이 큰 사람일 수록 쓰일 자리를 찾지 못하면
더 크게 방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림교회는 큰 그릇을 담을 만한 찬장이 안된다.
그래서 자기 크기에 맞는 사람을 좋아하지, 그걸 넘으면 배제한다.
이런 생각이 그나마 나의 인지부조화를 조금 완화시켜준다고 할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고 싶다.
그의 인생의 동토에도 부활의 봄이 찾아올 것이라는 걸.
하지만, 이토록 차가운 땅에는 다시는 뿌리를 내리지 않을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찾아오지만
시랑과 승냥이가 어슬렁 거리는 곳에는 민초가 뿌리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역으로 이 민초가 없는 생태계는 파국이다.
역사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이 민초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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