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을 생각하며

by passer-by posted Nov 28, 2011 Likes 0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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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은 지독할 정도로 음식을 가렸다.

재림교회 모태신앙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음식을 아무런 신앙의 부대낌 없이 먹는 나로써는

일년에 한 두 번씩 그와 사적인 만남을 약속할 때면 전날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와 만나 서울 시내에서는 외식다운 외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제공되는 모든 음식은 그가 먹을 수 없는, 아니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들이 최소한 조금씩이라도 들어가 있었다.

 

따라서 그를 만나기 주변 식당들을 전수 조사하거나

예의 직접 여러 식당들을 전전하며 주방에 가서 음식 성분에 대해 일일히 물어 보거나

아니면 인터넷을 이 잡듯 뒤지거나.... 그러기를 반복하다보면 지치고 배도 고파 그만 그를 만나기도 전에 확 짜증을 내게 되는 내가 싫어지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멸치대가리 하나라도 들어간 음식은 아예 입도 대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의 어머니는 극도의 절제된 식습관을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외동아들에게 가르쳤다.

가르치면서 어머니는 끊임없이 부정한 음식에 대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죄악된 이미지들을 금기시된 음식들에 겹겹이 덧붙였다.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으면 조개들이 시체를 파 먹는다더라....

돼지는 온갖 더러운 것들을 먹기 때문에 세포 속에 무서운 촌충들이 살다가 고기를 먹은 사람의 뇌를 파먹고 산다더라.... 등등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위생학적 수사들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아들이 입에 고기 한 점이라도 넣지 않기를 어미로써 열렬히 바랐던 것 같다.

 

그러한 것을 신앙이라고 배운 M은 그래서일까 평생 친구가 거의 없었다. 나를 빼고는....

당연히 피자 토핑에 올라온 살라미 정도는 먹을 재량(?)을 갖춘 요즘의 "타락한" 재림교회 청년들과도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늘 혼자였다. 이제는 그 많던 머리숱 다 빠지고 속알머리가 훤히 보일 정도로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 결혼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그와 시내 A라는 패밀리레스토랑엘 가게 되었다.

그 곳에 간 건 전적인 내 실수였다. 예상과 달리 샐러드바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지 못했던 M은 신경질적으로 돌변했다.

그냥 나가려는 그를 뜯어 말렸다. 스스로를 겨우 진정시키고는 그가 고심고심하여 가져온 음식은 크루동을 올린 양송이스프가 고작이었다.

 

그렇게 오롯히 음식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그에게 나는 그만 몹쓸 짓을 했다.

그가 떠온 양송이스프가 실은 쇠고기 분골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그에게 말해 버리고 만 것이다.

푸짐한 나의 접시 위의 음식을 정죄의 곁눈질로 바라보며 홀짝홀짝 거룩하게 양송이스프를 마시던 그는 순간 급체 수준의 기겁을 했다.

 

뿐만 아니었다.

그가 건강을 위해 개인적으로 복용하는 P라는 철분 제품이 돼지피에서 추출한 것이라는 사실도 말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는 순간 내 앞에서 심한 헛구역질을 했다. 토악질을 한 그는 나에게 그날 음식을 통해 죄를 지었노라고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그의 평소 행동 중에 마음에 걸리는 있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여 기숙사에서 숱한 밤마다 끓여 먹었던 삼양라면과 짜파게티 속에도 돼지분골이 들어가 있는 사실 말이다.

주책맞게도 나는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는 그를 보며 동굴에서 해골바가지물을 마신 것을 깨닫고나자 똑같이 헛구역질을 했던 원효가 떠올랐다.

 

남의 신앙을 평가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첩첩산중에서 홀로 농사를 지으며 고추가루를 뺀 장국에 밥을 말아 백김치와 식사를 하고 있을 M!

그가 생각하고 느끼는 신앙의 모습도 존중하고 지켜주고 싶다. 더불어 그렇게는 곧죽어도 살 수 없는 내 신앙의 모습도 나름 떳떳하게 지키고 싶다.

 

신앙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더군다나 재림교인들에겐....

그 중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더 세련되게, 더 합리적으로, 더 모던(?)하게 단장할 수 있는 교육수준, 생활수준, 지식수준을 갖춘 사람들에겐 더욱 더....
그렇지만 자신의 신앙을 그들만큼 그렇게 세련되게, 체계적으로 교리화해낼 수 없는 수준의 사람들이 믿는 신앙이 과연 모두 "덮어놓고 믿는 믿음"인가?

 

그들의 신앙이 과연 "표층신앙"이란 말로 다 단도리 될 수 있는가?

누구보다도 순결한 마음을 가진, 단순하고 솔직한 신앙을 가진 M이 최첨단 신학의 말단(?)까지 다 돌아본 나보다 더 "표층"에 머물러 있다 할 수 있는가?

M의 신앙은 내가 보기에 "불합리"하다. 그러나 그에게 나의 "합리성"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 "합리성"이 그에게 "불합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호혜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의 "합리성"을 통해 나의 "불합리"가 처절하게 드러나고, 나의 "합리성"을 통해 그 또한 자신의 "불합리"를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일찍이 예수께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했던 가르침의 신선한 속뜻일지도 모른다.

 

 

 

p.s. 이 공간에서 신앙을 주제로, 혹은 문화를 주제로, 심지어 정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저에겐 이런 호혜성에 한 발 다가서는 것입니다.

      나와 생각의 방향이 다르다고, 나와 인식의 결이 맞지 않는다고 불쾌할 일도, 얼굴을 붉힐 일도 아닙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전 좋습니다.

      다만 저의 aggressive한 어투가 거슬리셨다면 여기서 사과드립니다. 김주영님! 이미 아시겠지만 저의 글쓰기는 거의 "전투"에 가깝습니다.^^

      사회과학서를 많이 읽었던 젊은 시절 들인 고약한 버릇인데 잘 안 고쳐집니다. 실은 이것도 저의 "불합리"한 신앙의 일부일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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