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안식일 제 4기 마지막 안교 교과 시간에
갈라디아서 끝부분을 공부했다.
사도가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말을 했고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 (낙인) 이 있다는 말도 했다.
반생 중 한사람은 원래 카톨릭이었는데
어려서 다니던 성당에
실물 크기의 crucifix 가 있었다고 했다.
개신교는 그냥 직선 두개의 십자가를 상징으로 쓰지만
카톨릭은 십자가 위에 예수의 몸이 달린 crucifix 를 모신다.
몇개의 crucifix 사진을 보여 주었다.
기독교인들이야 익숙하니까 별 느낌이 없을지 모르지만
'안믿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morbid (병적인) 느낌이 들 것이다' 라고 어떤 반생이 얘기했다.
교황의 홀 사진을 보면
괴기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떤 반생은
"주님이 살아나셨는데 아직도 저렇게 십자가에 못박아 두고 있는 것은 안된다.
마치 주님이 영원히 십자가위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십자가는 그렇다 치고...
바울이 말한 예수의 흔적은 원어로는 stigma ( 복수 stigmata) 이다.
상처 혹은 낙인이라는 부정적인 단어인데
카톨릭에서는 '성흔' 이 스티그마라고 불린다.
성 프란시스나 혹은 기타 성인들의 거룩함의 최고봉이
그의 몸에 성흔이 새겨지는 것이다.
몇가지 이른바 성흔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반생들은 섬찟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기독교의 전통이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박힌 그 손과 발" 은
미세스 조용기의 찬송가이지만
특히 카톨릭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묵상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깊이를 알고
나아가 자신이 거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거룩함의 길이다.
예수의 고난은 매우 극심하고 매우 깊었다
그 어떤 사람의 고난도 그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가르친다.
몇년 전 멜 깁슨의 영화 Passion of the Christ 는
매우 폭력적인 장면들을 통해
예수의 고통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 가장 끔찍한 고통을 당했으므로
예수님의 희생은 그 가치와 공로가 있다는 것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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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단적인 얘기를 하려고 한다.
고통으로 따지면
예수의 고통보다 더 심한 고통을 더 오래 당한 사람들이 많다.
잘못 없고 의로운데도
그렇게, 혹은 그것보다 더 고난 당한 사람들 많다.
예수는 목요일 밤 늦게 잡혀
금요일 해 지기 전에 운명해서
24시간 채 안되는 동안만 고문을 당했지만
예를 들어 김근태는
남영동 분실 515호 실에서
몇주 동안 내내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죽지도 못하고
그 병으로 오래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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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당한 고통이 가장 극심한 고통이라서
그분이 구주가 된 것 아니다.
그런 식으로 묘사하고 가르치고 묵상하라고 하는 것은
카톨릭의 병적인 새디즘이고 매조키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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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제대로 알려면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예수의 죽음 뿐 아니라
남영동의 고난을 비롯한
이 세상의 수많은 이들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그것을 기리고
그것을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의 죽음만이 아니라
오늘 죽어가는 그 모든 사람의 아들들에 대한
묵상이 있어야 한다.
십가가와 그 고난은
저렇게 crucifix위에서
성흔이라는 이름으로
신비스럽게 우상화 될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세속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