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세가족 (퍼옴 신완식의 목양노트)

by 새소망 posted Jan 23, 2012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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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영국 교회를 출석하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큰 공부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에큐메니컬’ 분야가 아닌가 한다. 책으로야 국내에 있을 때부터 그 의미와 필요성을 대충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운동’ (movement)이나 ‘캠페인’ 차원이 아닌 ‘생활화된’ 그것을 몸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 값어치 면에서 독서나 세미나를 통해 얻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2001년 8월 말 온 식구와 함께 이 곳 런던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은 ‘가급적 한인교회 보다는 현지 교회를 출석하자’라는 것이었다. 한인교회는 한국교회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고 한국교회 목회는 미약하나마 바닥을 기면서 경험해본 적이 있는 지라 기왕 외국 생활하는 데 영국 교회를 더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공부가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 가정은 지금까지 런던 남부에 위치한 써튼(Sutton)이라는 곳에 살면서 집 근처에 있는 <트리니티(Trinity) 교회> (‘연합개혁’과 ‘감리교단’ 교회가 합쳐진 교회)를 출석하고 있는 데 그 교회는 도보로 5분 거리 안에 각각 위치한 <써튼(Sutton) 침례교회>와 영국 성공회 소속 <성 니콜라스(St. Nicholas)>교회와 오래 전부터 에큐메니컬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세 교회가 벌이고 있는 활동들은 이미 교인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조그만 행사에도 세인들이나 언론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는 한국교회와는 상당히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영국에서는 매우 진보적인 교단인 연합개혁 및 감리교단, 대체로 보수적인 침례교단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성공회 이렇게 상호 이질적인 교단 소속의 세 이웃 교회가 펼쳐 나가고 있는 에큐메니컬 활동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1. 정기적인 강단교류: 분기 1회를 기준으로 세 목회자가 정해진 순번에 따라 타교회 예배를 집전한다. 예배순서는 해당 교회의 관례를 대부분 따르되 예배 집전자의 고유한 의식을 배제하지는 않으므로 성공회 사제는 우리 교회에 와서 십자성호를 그으며 축도를 하고 십자가를 향해서 목례도 한다.

2. 연합예배: 중요한 절기나 특별한 경우 세 교회가 연합예배를 드린다. 이것을 주관하는 교회는 이미 정해진 순번에 의한다. 이 예배의 경우 외부 강사를 초청하기도 하고 세 담임 중에 한 분이 예배를 인도하기도 한다. 이때 가끔 성찬식을 갖는데 성공회 여성 사제께서 집전하시고 우리 담임과 침례교회 담임이 각각 배종위원이 된 어느 주일날의 그 성찬식의 감동은 아직도 내 가슴에 진하게 남아있다.

3. 주일 밤 예배: 주일 밤 예배는 세 교회가 로테이션 형식으로 각각 한 달씩 주관한다. 이 예배는 주로 주제를 정하여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이번 달 주제가 ‘특수선교’라고 한다면 교목, 경목 혹은 원목 등을 초청하여 현황을 설명 듣고 토론을 벌인다. 그리고 매주 저녁에 드려진 헌금은 전액 외부의 사회단체나 선교기관으로 보내진다.

4. 연합 토요 기도회: 매주 토요일 10시부터 모이는 데 이 모임만은 침례교회에서 고정적으로 개최되고 있고 기도의 주제는, 세계평화, 지구환경, 반전 및 반테러, 기아문제, 정치, 경제, 교회 등의 큰 문제로부터 개인문제에 이르기 까지 매우 다양하다. 한국식으로 통성기도 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주제에 대해 기도하고픈 이가 자유롭게 한다(난 여태 영국 교인들이 통성 기도하는 것을 못 봤다!).

5. 잡지 발행: 매월 첫 주에 <United>라는 이름으로 발간되는 데 세 교회 담임이 순서대로 권두언을 쓰고 각 교회 프로그램, 광고, 교회 소식, 교인들의 애경사, 수필, 신앙 간증, 퀴즈, 유머, 시 등의 다채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아주 조그마한 월간 잡지이다.

6. Bunker: 세 교회에 출석하는 청소년들이 매주일 저녁 트리니티 교회의 어느 아담한 방 (Bunker)에 모여 여러 활동(실내 축구, 탁구, 배드민턴, 요리, 영화 관람, 시내 야경관광 등)을 벌인다. 이전에는 교인들 중에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지도를 했는데 올 해는 청소년 전문 지도자를 세 교회에서 공동으로 청빙하여 더욱 활기찬 모임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내가 여태 잘 파악하지 못한 여러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데 나는 이런 일들이 하나의 자연스런 문화요 생활이 된 이런 목회를 지켜보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놀라운 일은 이런 연합활동을 전개하면서 교회 간에 혹은 목회자간에 갈등이 일어났다던 지 혹은 부정적인 경쟁심이 발동됐다던 지 혹은 누군가가 다른 교회로 이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 2년 전에는 침례교회 담임이신 마이크 데일 목사께서 세 교회 교인 중 희망자들을 인솔하여 해외로 선교여행을 다녀왔는데 아무도 그 교회로 교적을 옮긴이가 없었다. 그저 아무런 댓가 없이 세 교회 교인들이 주 안에서 한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이 어찌 이리 아름다운고!

내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적인 장면 하나가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약 두 해 전인가 그 침례교회가 주관하는 어느 주일 저녁 예배 때 침례예식이 있었다. 그 교회 교인 한 분이 침례를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 교인 지금은 대학생이 된 여학생 하나도 침례를 희망하였다. 지금은 연합개혁 및 감리교단 소속인 우리 교회를 출석하지만 본래 자신의 가정이 침례교단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그 이유라고 한다.

그 침례교인은 그 교회 담임이신 마이크 목사께서 손수 집전하셨고 (나는 그 때 난생처음으로 침례식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여학생은 우리 교회 담임이신 ‘마틴 캠룩’께서 세례가 아닌 침례를 베푸셨다. 마틴께서 침례를 베푸시며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저는 지금까지 30년이 다되도록 목회를 했지만 침례는 처음 베풉니다. 그러니 혹시 잘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침례광경을 지켜보는 회중들이 이 소리를 듣고 터뜨린 폭소와 함께 베풀어진 그 침례! 그리고 성공회 여성 사제이신 ‘사라 고처’가 베푸신 성호와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린 그날 그 침례 예식 앞에서 나는 그저 넋이 나간 사람마냥 감격에 감격을 거듭할 뿐이었다.

세 지붕 한 가족! 어서 한국 교회도 이런 일이 생활화 될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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