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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갈길 다가도록 (고 정동심 목사 회고록 연재)#17


( 일단 “재간도 조선인협회”가 거대한 기구로 발전하자 영향력 있는

조선인 700여명을 검거하고 그중 90명을 조선으로 이송하여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하고 오늘 12명이 사형집행을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화를 피한 것이다. 연재 #16끝부분)


5. 제 7동 담임 목사-제 2 부


나는 이 소식을 알려준 조선인 간수

“다까야마에이다로(高山永太郞)”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내가 출감할 때가 거의 가까워 진 어느 날,

이 조선인 간수가 나를 자기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동안 비록 나에게 잘 해 주었지만, 출감할 때가 가까이 왔는데

사무실로 불러들이니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내 걱정과는 달리 뜻밖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산주이찌방”과 형무소의 일을 함께 해보니

그 동안 내가 겪은 많은 죄수들과는 달랐소. 그 죄수들 중에서

31번처럼 온순하게 복종하고 다른 죄수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자를

보지 못했소. 또 31번은 학문도 꽤 많이 아는 사람인데

한 가지 이해 못할 것은 우리 한국에도 예부터 내려오는

좋은 유교가 있는데 왜 하필이면 이 예수교에 빠져 들어가서

징역까지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소.”

사실 그동안 이 고산 간수의 은혜가 감사해서 복음을 한 번

전하기를 바랐으나 주제가 넘는 것 같아 자제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를 불러 먼저 이야기를 하니 잘 되었다 싶었다.

“고산간수님! 간수님은 유교를 숭상하시는 것 같은데

유교의 무엇이 그리 좋으십니까?”

고산 간수는 3강 5륜을 설명하고 충효사상의 우월함을 강조하며

한참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주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였으며 그 가정이 한학에 뛰어난 가정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양해를 얻고 예수교를 믿기 시작한 자초지종을

말하기 시작했다.“간수님! 사람은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자기가

현재 가진 것 보다, 또 현재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갖거나 또는 그것을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도 간수님은 유교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유교의 사상에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요 불가회생이 호지시아”라 해서

우리의 몸과 머리털까지 다 부모에게서 받았으니 조금도

상하지 않는 것이 효자라고 했는데 간수님도 머리를 이렇게

깍지 않으셨습니까?” 아무 대답도 없었다.

”간수님은 지금 이렇게 칼도 차셨고, 또 의복도 우리 조선의복이

아닌 것은 시대가 변하면서 그리 된 것이 아닙니까?

나도 한문을 공부하다가 예수교가 좋아서 받았는데

이를 어찌 마다하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유교의 사상을

좋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보니 성경은 유교의 사상

이상이며, 내 개인은 물론, 세계의 앞날에 관한 것 까지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나의 영생까지도 이미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성경의 십계명은 유교의 도덕을 뛰어 넘고 있습니다.”

나의 열렬한 말에 간수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고 간수님! 내가 안식일교회 교인으로 징역 하는 것이

좀 미안 합니다만 저를 이렇게 특별대우를 해 주셔서 너무도

감사 합니다. 허나 간수님께서도 안식일 교회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역시 아무 말도 아니했다.

그런데 눈치를 보니 그가 나를 부른 것은 술을 좀 마시고

조금 취해서 불렀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말에 대답을 못하게 된

이 고 간수는 사무실 밖으로 나오더니 갑자기 “우리 누가 믿는 것이

옳은지 지금 씨름을 해서 결판을 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간수님과 씨름을 하느냐?” 하는데도

계속 나를 붙잡고 씨름을 해서 결판을 내자고 했다.

술김에 씨름을 해서 그런지 간수의 기운도 셌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씨름을 해서 내가 씨름에 이기기는 했다.

그러자 죄수들과 특히 밥 주는 사람들은 ”산주이찌방이 오늘 간수에게

단단히 걸렸다. 오늘 대단히 많이 얻어맞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형무소의 불문율은 물론, 실제 규칙으로도 “죄수가 간수와 붙잡고

승강이를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 인지라 모두들

그리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간수가 술이 좀 취하자 평소에 내가 감옥에 와 있는 것을

안스럽게 생각했던 진심이 나온 것이라 생각 하니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의 모든 일이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일들이 아니며

설명이 불가능한 이상한 일이었다.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보호하심과 기이한 인도와 섭리가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밖에는 달리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원했다 해도,

들어와서 하나님을 전할 수 없는 이곳에 나를 보내셨음을 나는 깨달았고

감사를 드렸다. 출감일이 가까이 되어 가는 7월에 나의 아내가

마지막 면회를 오자, 형무소의 규정에도 없는 특별대접으로

면회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테이블을 놓고 나의 아내를 들어오라 하여

둘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할 말이 별로 없어 “집의 아이들이 잘 있느냐?”하며

아이들 문제로 잠시 이야기를 했다. 그때가 7월이어서 아내는

깨끗한 모시의복을 입고 와서 보기에 좋았고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6. “가쿠리”와 출감


고산 영태랑 간수는 나에게 “곧 31번은 7동에서 격리되어 수용 된다.”는

통보를 해주었다. 말인즉슨 “이 형무소의 관례대로 출감 2일전에는

다른 방으로 옮겨 정말 형무소의 맛을 보인다.”라고 했다.

형무소에서는 이것을 “가쿠리”라고 하는데,

이 말은 “격리 시킨다!”는 뜻이다.

나는 “정말 출감을 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의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나를 특별한 섭리로 인도하신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 동안 지냈던 감옥소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작년 4월11일,

이른 아침에 청양에서 체포되어 홍성을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와서

징역을 살면서 모든 것이 연약한 내가 감당할 만큼 돌보아 주신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그 동안 비록 안식일교회 내에서 처음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으면서도 재판과 항고(抗告)와 복심재판을 통하여

우리교회의 입장과 나의신앙태도를 알릴 수 있었던 것은,

사도바울 선생이 “내가 로마에 가겠다.”고 한 것을 나 나름대로

조금 경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위로가 되었다.

사실 초심, 복심 또는 고등법원을 지나며 형무소생활을 하는 동안 얻은

모든 경험을 통해 나는 지도자의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많이 배웠다.

서대문형무소에 들어와 수백 명이 되는 죄수 앞에서 설교를 하고

또 미성년죄수들 감방에서 이야기도 하고 그 아이들과 상담을 하며

돌볼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귀중한 경험인지라 감사 드렸다.

형무소 내에 장기수에게만 주어지는 밥 주는 일을 하게 하셔서

힘든 음식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배고픈 다른 사람까지

돌 볼 수 있게 인도 하셨다. 감옥 내 전도활동과 특별히

미성년죄수들에게서 얻은 이 경험은 돈을 드려서도 할 수도 없는

귀한 경험으로 나의 목회자로서의 자세를 다시 세워 주었고

많은 말씀의 재료가 될 것이 틀림없어서 오히려 이 징역 생활을

감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석방이 되어 나가더라도 내 호적에는

붉은 줄이 그어져 있어서 어디를 가도 전과자라는 오명을 달고

다닐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 오기도 했지만 믿음의 선구자들이

당한 고생과 견주어 보면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믿음으로 극복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조선인 간수 고산은 나에게 8월 17일, 즉 출감일 이틀 전부터

밥 주는 일도 그만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가면 “정말 징역사는

기분을 한껏 누리게 될 것.”이라 하여 겁이 났다.

그러나 그보다는 300여명의 동료 죄수들에게

“나는 3-4일 후면 나갑니다.”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고 미안했다.

특별히 함께 밥 주던 사람들은 모두가 최고 장기수인지라 나간다고 하는

말을 차마 하기가 미안하고 큰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나는 8월 14일과 15일,

양 일간 47개의 감방을 돌며 “내일 모래 가쿠리로 갑니다!

대단히 미안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모두들 “우리 죄수들에게

봉사 잘 해주던 목사님께서 가시면 이 더운 여름에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받아 마실 수가 없겠구먼!”하고 눈물을 흘렸고

어떤 죄수는 “목사님이 나가면 밥도 공평하게 못 얻어먹겠다!”하며

소리를 내어 크게 울기까지 했다. “이제 성경공부도

더 못하게 되는군요!”하고 너무도 서운한 표정을 짓는

순진한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눈물이 흘렀다.

나는 죄수들과 손을 맞잡고 “여러분! 아무쪼록 잘 순종하여,

주어진 만기일만 잘 채우고 나오도록 하십시오!”라고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47개의 감방을 다 돌면서 인사를 하자니

마치 큰 교회를 담임하다가 떠나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보던 이 조선인 고산 간수가 나를 다시 불러

“이 형무소에서 아직까지 이렇게 한 예가 없지만,

가쿠리에 가서 이틀 밤낮을 지내려면 ”산주이찌방“이

너무 힘들 터이니 나가는 날까지 잠만 그곳에 가서 자고,

낮에는 이리 와서 밥 주는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나와 이야기나 하다가 나가라” 하고 말해 주었다.

나는 건성으로 “감사 합니다!”라고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방을 옮기고 나서야 깨달았다.


1942년 8월 17일, “가쿠리”로 옮겼다.

그곳에 죄수가 20명 있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밤과 낮이 없이

모두들 담배를 계속 피워대는데 그 고통은 말로 할 수가 없다.

그 좁은 감방에 20명의 죄수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인데

한 명도 예외가 없이 줄담배를 피워대니 그 연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끔 간수가 지나가면서

“금연이야, 금연!”하고 고함을 치면

“여기는 가쿠리요, 가쿠리!”하면서 더 크게 받아치곤 했고

간수도 그냥 못 본 척 지나가곤 했다. 평생 담배에 굶주렸던 사람이

소원을 풀려는 듯이 계속 피워댔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나 서로

떠들어 대는지 시장바닥이 따로 없었다. 한 사람도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밤에

잠을 자려고 하니 “아니, 내일 모레 나갈 사람이 무슨 잠을 자냐?”

하면서 계속 내 몸을 이 사람, 저 사람이 쿡쿡 찔러댔다.

하룻밤 사이에 나는 입술이 부르트고 얼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지옥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8일 아침, 조선인 간수 “다까야마에다로”는 내가 배식을 위해

7동으로 가니 “그곳에 간 감상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간수님의 말씀대로 거기가 정말 징역 하는 곳입니다.

내 입술 좀 보십시오!”라고 대답 했더니

“그래! 입술이 다 터졌구먼! 무슨 일이 있었나?”하기에

잠을 재우지 않던 이야기를 하며 어디서 저렇게 담배를

많이 구했는가 물었다. 고산 간수는 가쿠리로 가서

“무슨 담배를 그리 피워대고 왜 잠들은 안 자는가?”고 묻자

모두들 “우리는 내일 모레면 나가는데 무슨 잠을 자느냐?”고

야단들을 하며 “우리는 나갈 사람들이지, 더는 죄인 아니라“고

야단들이었다. 밥 주는 일을 하고 7동에 머물러 있는 것은

천국에 있는 것과 같았다. 8월18일, 그 힘든 곳에서 하루 밤을 더 잤다.

1942년 8월 19일.

아침 해가 이리도 밝을 수가 없었다.

내가 체포 된지 1년 4개월 7일이 지났다.

간수의 인도를 따라 감옥 문을 나서기 전에 그동안 나를 잘 돌보아준

고산영태랑 간수에게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하러 갔다.

고산 간수는 나에게 출감 후에는 절대로 자기에게 어떤 감사의 편지도

보내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행여라도 그분이 나에게 베풀어준

그 혜택에 대하여 내가 편지를 썼다가 검열을 받게 되면

상부에서 그간의 일을 알게 되고 그러면 고산 간수가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을 두려워 한 까닭이었다.

정말 서대문형무소의 생활이 힘은 들었지만 이분의 후의(厚意)로

마치 한 큰 교회를 맡아 목회생활을 한 것 같은 감사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감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느끼는 심정은

기쁨보다는 불안하고 어깨가 무거운 듯한 심정이었다.

다시 이사야 43장 1-3절이 떠오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의 부형(父兄) 모매(母妹)들의 기도의 은덕이라는 생각이 들며

감사한 눈물이 흘렀다.

그 안에서 출감 수속하는 동안 왔다 갔다 하며 가만 생각해 보니

형무소에서는 징역 하는 동안에 “어디서 편지가 오느냐?

얼마나 자주 오느냐?”를 보고 그 사람의 신분이 좋은지 나쁜지

헤아려 보고 또 이 사람이 비록 죄인이지만 사회에서 괜찮게 지내던

사람이로구나 하는 인정을 감옥 내에서 받게 되어있었다.

그동안 내 아내나 내 자녀들, 또 당시 한 다섯 살 먹은 태목이가

이상한 글자로 편지를 해 준 것과 북선대회장이시던 김항모 목사의

엽서 한 장외에는 아무도 서신을 보내 준 것이 없었다.

아마 세월이 험악하니 몸조심하느라고 그랬을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편지로 인정을 못 받는 대신 하나님께서 직접

모든 일에 인정해 주시고 간섭해 주셨음이 너무나 감사했다.

8월 19일, 오전 11시,

그 무거운 형무소 문이 나를 위해 열렸다.

서대문 형무소 문이 열리기에 밖으로 나가려고 내다보니까 우리교회

합회장 최태현 목사가 그 바쁘신 중에 마중을 나오신 것이 보였고

또 내 아내도 문틈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보였다. 위생병원에서

나를 위해 보내준 자동차가 서있는 것을 보니 감개무량했다.

그 큰 형무소문이 철컥 열려서 드디어 감옥을 걸어 나왔다.

나의 아내와 같이 오영섭 목사의 부인도 나와 있었다.

이 분들의 손을 마주 잡는 순간,

“드디어 내가 출감하였구나!”라는 것을 실감하며

정말로 감개무량 했다. 이 순간, 나는 “예수님이 오실 때,

우리가 죄의 감옥에서 구원 받는 순간이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위생병원에서 보내준 차에 나와 나의 아내와,

극구 사양을 하는 오영섭 목사의 부인에게 타시라고 권하여

그 차를 타고 서대문형무소를 떠나 집으로 오게 되었다.

감옥에서의 만 16개월은 참 긴 시간이었다.

청양과 홍성경찰서, 서대문형무소를 거쳐 이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게 된 일을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내 아내가 그 동안 충실이, 정실이, 태중이,

태목이, 경실이, 이렇게 다섯 아이를 데리고서 무사히 지난 것을

생각할 때에 더욱 감사했다. 큰 아들 태혁이는 결혼해서 내가 있는 집

건넌방에서 살고 있었고, 딸 제후는 순안에 가서 공부하고 있었다.

태영이와 진실이는 서울 위생병원 간호원으로 들어가 있었다.

내가 출옥 하던 날,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녹두지짐을 만들어 내 놓았다.

내가 몇 개 안되는 녹두지짐을 금방 먹어 치우고

좀 더 내오라고 하자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당신이 시국을 몰라서 그렇지, 지금 양식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원하시는 만큼 잡수시기에

턱없이 모자라지만 당신이 하도 좋아하기에 겨우 몇 개라도

만들어 나온 것입니다.”라고 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내가 걱정을 할까보아서 눈물도 안 흘리고 어려웠던 일은

한마디도 안 했던 내 아내는 그간의 고생을 조금씩 이야기했다.

내가 옥살이 하는 동안 내게 쌀밥을 차입하느라고 가족들은

쌀 한 톨도 구경 못하고 굶주리며 지낸 것도 알게 되었다.

아내는 내가 홍성경찰서로 넘어가 6개월 징역판결을 받자마자

교회본부에서 내 월급을 절반만 주어서 반(半)월급으로는

도저히 살수가 없어 시조사에 들어가 종이를 접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벌어서 어렵게 지난 일을 눈물지으면서 얘기를 했다.

나는 아내에게 “고생한 것을 다 이해 하지만 합회에서 월급을

절반만 주어서 어렵게 살았다는 말은 다시는 하지 말라.”고 했다. “

그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이만큼 지내 왔으니

감사하면서 지내자.”고 말했다. 내 아내도 “다시는 그런 말을

아니 하고 지내기로 하겠다.”고 했다. 말은 그리 했지만

식구가 많아서 월급전액을 가지고도 힘들었던 형편에 남편도 없이

반 월급을 가지고 생활한 아내에게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목이 메고 할 말을 잃었다. 이 보다는 내가 수감된 동안,

가까이 살고계신 분들 중 아무도 우리 가족들의 곤란함을 보고

찾아와 말이나마 위로해 주는 형제가 없었다는 말이 나를 슬프게 했다.

내가 출옥을 했는데도 찾아 주는 이가 없었다. 전과자를 찾아 왔다가

무슨 화가 미칠까 보아 몸을 매우 사리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면서도

“참 사람의 인심이란 이런 것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 안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는, 멀리 평양교회에 계시던

최매실 여사가 사식차입에 사용하라며 적지 않은 금액을 보낸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감사한 생각을 잊지 않고 있다.

일본이 1941년 11월 8일에 소위 대동아전쟁,

즉 제 2차 세계대전을 시작해서 벌써 9개월 되었다.

모든 백성들이 생활고에 허덕이는 그 속에서 내 아내는

가장(家長)없이 자기 혼자서 일곱 아이 중, 집에만

다섯 아이를 데리고 무척 고생을 했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그만큼 지난 것을 감사했다.

나는 16개월의 감옥 생활동안 터득한 지혜를 따라, 출감을 하면

교회지도자들과 같이 관할경찰서를 찾아가 인사를 해야

교회사업에도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합회에 가서 그 이유를 말씀드리고 우리구역인

동대문경찰서를 함께 찾아 가자고 부탁을 드렸으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합회장님은 물론 총무 일을 보시던 분이나 또는 동역자

그 누구도 경찰서에 가는 것을 몹시도 꺼려하면서 못 가시겠다고 했다.

할 수없이 혼자 동대문 경찰서장과 고등계주임을 찾아서 인사한 즉

“아, 당신이 바로 정 동심이냐?” 물었다.

이미 나의 출감이 해당경찰서에 통보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내가 당신의 경찰서 구역에 살면서

본의 아니게 수감되었다가 이제 출감했습니다.

걱정을 끼쳐서 미안합니다.”라고 인사를 한즉 “아, 사람이

운이 좋지 못한 때에는 그럴 적도 있는 것이오,

좌우간 이렇게 찾아와 주어서 매우 고맙소!

이제라도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오!”하며

뜻밖에도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닌가?

출감하면 왜 관할 경찰서를 찾아가서

출옥신고를 해야 한다고들 말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고등계주임은 “이제 출감을 했으니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하고

형사답게 물었다. 나는 “목회사업을 하다가 이렇게 되었으니

다시 목회사업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더니 “아, 그럴 것이요.

그전에 하던 일이니 나가서 전도사업을 다시 하시오,

그리고 성공적으로 하기를 바라오!”라는 기대하지 않았던

호의적이고 오히려 용기를 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동대문경찰서에 출옥신고를 한지 얼마 후에 나는

교회본부로부터 아래와 같은 통고를 받았다.

“정동심이는 교회 사업에서 제거하라는 통지를

경찰서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복직 시킬 수가 없으니

교회 일을 할 생각을 하지 마시오! 그런고로 복직은 물론

월급도 회복시킬 수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정신적으로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비감(悲感)에 빠지게 되었으나

곧 야고보에 나오는 말씀대로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다시 주님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굳세게 살아가기로 결심을 했다.

출감신고 때에 나에게 생각지 않게 호의적이던 경찰로부터

과연 그러한 통지문이 교회 본부로 왔었는지에 대한 사실여부는

아직도 알 길이 없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관식(官食)을

(형무소 음식)하던 나까지 출감해서 집에 들어와 식구가 하나

더 불어났으니 생활이 말할 수 없이 더 어려운 형편이 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연약한 내 아내는 그대로 시조사에 나가서 접지업

(摺紙業-종이를 접는 일)을 하여 생계를 꾸려갔다.

출감하고 한 달쯤 되어 내 친구 이여식 목사와 손형국 씨가

나의 곤경에 처한 상황을 알고 찾아와 말하기를

“사역자양성소에서 운영하던 목공장이 있으니

정 목사가 맡아서 해 보라.”는 제의를 했다.

사역자양성소는 지금의 삼육신학원의 전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자본이 하나도 없는데 장소만 있다고 목공소를

할 수가 있는가?”하고 이야기 한즉 감사하게도 손형국 씨는

자기가 자금을 얼마간 대어 줄 터이니 해보라고 한다.

이 목공소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경영하던 것으로

“사역자”에서 “사”자와 “양성소”에서 “양”자를 떼어서

“사양목공소”라고 했었다. 그러나 시국이 험하여지자

사역자 양성소를 문을 닫으면서 자연히 사양목공소도

문을 닫았던 것이다. 이 목공소는 선교사 사택 뒤에

작고 허술한 헛간 안에 만들었었다. 두 분 형제의 권유로

경험은 없지만 목공소를 경영해 보겠다고 했으나 목수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이여식 형제는 “원래 그 목공소에 일하던

두 분을 쓰라.”고 하셨다. 나는 “그 분들이 신자인가?” 물으니

대답을 안 하셨다. 그래서 강원도 강릉에 있는 내가 잘 아는

장로의 아들 이기원 군이 목공기술이 있는 것이 생각이 나서

편지를 하니 이기원 군은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와서,

고생이 되지만 우리 아랫방에 있으면서, 원래 일하던

불신자 목수 두 명과 함께 목공소 일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합회장님이 나를 오라 하시기에 찾아뵈었더니

그 목공소를 쓰려거든 먼저 세를 내야 한다고 하셨다.

말씀은 맞는 말씀이신지라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목사님, 한 말씀 여쭙고 싶으니 용서하십시오.

여기에 서양인 선교사들이 살다가 귀국해서 목사님 이하

몇 분들이 선교사 사택을 대신 사용하고 계신데 세를

얼마나 내시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니 아무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계셨다. 선교사들이 모두 귀국하고 선교사들의 사택들이

비었음으로 합회장님 이하 오영섭 목사, 이여식 목사, 김온준 씨,

박창욱 씨 등이 들어가서 살게 되었는데, 중선대회장으로 있던 나에게도

한집 들어와 살라는 의견이 나왔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도자급의 사역자들이 한 구내에 이렇게 갑자기 다 모여 그냥

사는 것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어 사양을 했었다.

그분들이 들어와 계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이 되나

그분들이 집세를 얼마씩 내시는지는 모르지만 내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택을 사용하라는 것은 사양을 했지만, 이제 그 작고

허술한 헛간 같은 목공소는 그간 문도 닫았던 것인데,

이제 형무소에서 나와 생계를 유지할 길이 없어 그 곳을 열라고

하는데 세를 내라 하시니 너무 섭섭해 무례하게 물어 본 것이다.

그러나 못 내겠다고 하기가 무엇해서 좀 기다려 보시면

알아서 해결하겠다고만 말씀을 드렸다.

그 목공소에서 양복장을 7-8개를 만든 후에, 문안에 있는

가구점에 연락하니까 가지고 와 보라고 해서 마차를 하나 얻어

그 양복장들을 싣고 문안에 들어갔다. 그 가구점에 가니

어수룩한 우리들에게 가격을 깎으려고 그러는지 대뜸 칠도 잘 안되고

제품이 잘 안됐다고 받지 못하겠다는 투로 이야기를 해댔다.

우리는 그래도 전화로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가지고 왔는데

어떻게 좀 맡아 달라고 사정을 하니 그럼 내려놓으라 하는데

이 마차꾼이 양복장을 잘 다루지 못해서 한두 개가 땅에 떨어지면서

흠집이 나니 양복장 전부를 받지 못하겠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도로 싣고 나왔다. 도와준 두 형제에게 “대단히 감사하지만

형편이 이래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니 그분들도

“형편이 그러면 어떻게 하겠냐?”고 해서 고생한 보람도 없이

문을 다시 닫았다. 이기원 형제와 불신자 목수 두 분에게도 대단히

미안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그 불신자 목수 두 사람은

밤중에 그 목공소에 들어와 목공 기구들을 전부 도적질 해 갔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한다는 것이 참 힘들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목공소를 그만두고 한 두 서너 달쯤 아내가 벌어오는 것 가지고

일곱 식구가 살아나가기 참으로 어려운 것은 말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기도드리고 합심해서 살자고 아내와 같이 의논하고

믿음으로 조반석죽(朝飯夕粥)이나 하면서 생활해 나갔다.

연말이 다가오기에 내년은 희망이 가득한 새해가 되게 해주시고

금년과 같이 많은 어려움이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 ?
    지경야인 2012.02.09 11:03

    제가 그시대 그곳에 있었어도

    똑같이 비겁한 짓을 했을거 같아서

    너무나 비겁하고  한심한 인간의 모습에

    가슴이 아립니다

  • ?
    김주영 2012.02.09 11:47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11회인가 

    교회 본부의 파당 싸움을 잠시 이야기하신 적이 있는데

    그 자세한 내막을 혹시 알 수 있는지요?

  • ?
    정태국 2012.02.10 05:59

    김주영님


    아버님의 육성 녹음 테이프에 녹음 된대로만 적었을 뿐입니다. '

    그 이상의 설명이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글을 쓰신것도 찾아 보았으나 쓰신글에는 전혀 이런대용조차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혹시 만물 박사이신 노산 장로님 정도라면 뭐 아시는것이 있을랑가 모르겠습니다. ㅎㅎ 

    (노산 장로님..죄송 ㅎㅎ)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
    김주영 2012.02.10 07:50

    알겠습니다. 


    당시로서는 꽤 큰 문제였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더군요. 


  • ?
    명지원 2012.02.14 20:21

    드디어 출소. 그 이후의 삶이 너무도 안타깝군요. 여러 할 말이 많지만, 위의 글의 행간의 의미, 문맥들의 의미를 가슴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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