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이들이 말하고 있는 구원의 근원은 어디서 부터 시작 되는가.
그것은 창세기의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부터 생겨난 용어 일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구원받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아담 하와는 생명과를 먹지않고 선악과를 따먹는것이 죄이기에 그들의 구원은 아주 쉬운 약속만 지키면 된다.
그런데 아주쉬운 구원을 그들은 지키지 못하여 구원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나타난 구원은 새로운 형태의 것이 였다.
이것은 앞으로 나타날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짐승인 양을통해 보여주고 그 모습을 창조주 하나님이 이땅에 올때까지 예식을 행하라는것이다.
구체적인 모습과 배경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체계화되고 변했지만 맨 처음에는 아주 간단한 형태를 취하였다.
죄지은후 맨처음 구원의 시나리오는 양을 잡아 제사드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형태이다.
그리고 자신의 죄로 인해 창조주 하나님이 양처럼 처절하게 죽고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는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유치하고 옛날이야기 꾸며낸 이야기로 보인다.
그런데 이 내용을 깊히 생각해보면 과학적인 철학이 맞물려 믿음을 같게하는 원동력이 생기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실제적 모습과 하나님의 실체적 약속과 이런것들은 믿음이 아니고서는 언제나 의문과 의심으로 영원히 하나님께 항의할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실체적 모습이 나타난다하여 그모습이 참실체로 믿을것인가.
영원한 시간이 그 모습이 아니고 다른 모습으로 나타 난다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항의나 의문으로 싹티우게 될것이다.
믿음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어떤 약속도 사람과 해결되지 않는다는 태초 창조의 질서에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할것이다.
결과 적으로 믿음은 하나의 생명과나 선악과를 대신하는 계명적 열매가 된것이다.
하나님을 믿는자와 믿지 않는자는 자동 적으로 구별되게 되었는데 이것은 죄의 용서를 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구원과 관계는 없지만 선한 모습으로 사는 행위가 나타난다.
이런 선한 모습은 믿음이 있다해도 언제든지 변하여 악한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그러나 믿음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죄를 어떤 형태로든 빌게 된다.
대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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